엄마 수업 - 법륜 스님이 들려주는 우리 아이 지혜롭게 키우는 법
법륜 지음, 이순형 그림 / 휴(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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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너 살이었을 때 사범대 나온 사람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지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무척 혹했으나 아들을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한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 주저 앉았던 때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아들 중3 되면서 또 한번 다니던 학원을 접었다. 저녁을 챙겨 먹일 수 있는 시간이 딱 1년

 

밖에 없구나...싶으니 결정하기도 쉽더라.

 

어쩌다 한두 번 다른 길을 갔을 나를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지금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님 말씀처럼 오로지 내 손으로 양육 한다해서 그 또한 전부일 것 같지는 않다.

 

훌륭한 선생님이면서 훌륭한 엄마이기도 한 나의 베프를 예로 들자면,  전적으로 엄마의 손에

 

양육 되어진 나의 학생이었던 녀석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었던가를 본다면 말이다.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어둑해 질 무렵인 5시 쯤, 어린이 집 가방을 메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 비번을 누르는 모습에 그 아이의 어린 생활이 얼마나 팍팍할까 싶어 가슴이

 

멍한 때가 있었다. '종일반'이라는 것 만큼 아이에게 팍팍한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나

 

답답하던지...

 

점점 아이들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양육 되어지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님의 말씀처럼 출생 후 3년간 만이라도 엄마가 양육해야 한다는 법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게

 

옳은 건지도 모를일이다. 나의 베프 같은 엄마는 무척 드문 경우이니...

 

아이를 키우면서 큰 흐름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책이다.

 

나는 지금 껏 어떻게 잡고 왔을까?

 

고1인 아들과 아직도 뽀뽀하는 나를 보시면 강아지 마냥 이뻐해서는 안된다고 하실려나?

 

침대정리, 책상정리, 양치질하라는 소리까지 해대는 내게 더 냉정해야 한다고 하실려나?

 

토일요일 컴 앞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는 아들 보며 속 끓이면 게임이라도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시겠지?

 

열공해야 한다, 열공해야 한다 강조하는 날 보시면 남편에게 먼저 참회의 기도를 하라시겠지?

 

.............................................................................................................................

 

가끔 불교tv에서 즉문즉설하시는 법륜스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스님의 말끝은 왜 항상 존칭이지

않을까? 분명 연배가 스님보다 훨 높은 분들도 많이 계시는 자리건만 스님은 왜 가끔씩 말끝을

내릴까? 평화방송의 황창연 신부님도 그러하다. 왜 그럴까?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여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

는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그 마음을 지지대 삼아 잘 자랍니다.

 

*'세상 사람이 다 안 믿어 줘도 우리 부모만은 나를 믿어 준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문제 삼아도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자식이라면 이렇게 부모를 탁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빠 없이 자란 아이가 문제아가 되었다면, 그것은 아빠가 없기 때문이 아니에요.

남편이 없다고 아내가 방황하고, 엄마가 방황한 탓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지, 아빠가

없는 데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아무리 좋은 것을 해주어도 부모가 화목한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부모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세상에 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자식이 자립해야 할 시기에 내버려두지 않고, 연애할 때 연애 못하게 하고, 방황해야 할 시기에

방황을 못하게 한 부모 탓입니다. 그 과보로 자식은 나약해지고, 부모는 늙어서까지 그 대가를

치를는 거예요.

 

*우리나라 엄마들은 헌식적인 사랑은 있는데 지켜봐 주는 사랑과 냉정한 사랑이 없어요. 이런

까닭에 자녀 교육에 대부분 실패합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서 어떤 일이든지

희생할 각오를 하고 기도하면 아이는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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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Paperback)
Nearing, Helen / Chelsea Green Pub Co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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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우미의 장점, 원서도 마음껏 빌릴 수 있다는 것, 비록 몇 안되는 원서들이지만!ㅎㅎ

 

그녀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무척 흥미를 가졌었기에 자신있게 이 책을

 

빌려왔다.

 

그. 러. 나...

 

어렵네. 모르는 단어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이 안될 때가 가장 난감하다.

 

내용을 대충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책이 손에 기꺼이 잡힐 리 만무하고, 그러고저러고... 뺑뺑 돌기만 하다가 결국

 

반납기일을 얼마나 얼마나 넘기고, 한 학기의 마무리 시점이 코 앞이니......

 

20장 정도 읽었나?ㅠㅠ 반납하자고 결정하고 어제 책을 덮었다.

 

애재라~ 애재라~~

 

어떻든 끝까지 읽어지는 소설책과는 달리 이 책은 끝까지 읽기가 무척 어렵네.

 

영어...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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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14-03-2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원서로 된 책 어디서 빌리셨는지 여쭈어도 될런지요? ^^
답은 죄송하지만 하기 메일 주소로 부탁드리옵니다.제가 여기 회원이 아닌지라...
birdy119@naver.com

Grace 2014-03-24 08:38   좋아요 0 | URL
알라딘 회원 아니어도 읽기, 쓰기 되지 않나요?ㅎㅎ

아들 고등학교의 도서실에서 도서도우미를 했어요.
그곳에서 빌린 책이었구요.

문화원이나 시청같은 곳에서도 도서도우미를 모집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쪽 사이트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도서도우미의 최고 장점은 단연 모든 책을 스스럼없이 빌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덕분에 평소엔 전혀 관심없는 분야의 책들도 볼 수 있었
다는 것은 큰 소득이었답니다.^^

앨리스 2014-03-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그리고 저도 영어공부하는 후배입니다.
원서를 읽고 싶은데 도서 도우미라는 제도가 어떤건지 힌트좀 주실수있으신지...
그럼 좋은 하루되시구요.

감사합니다.^^

Grace 2014-03-23 14:20   좋아요 0 | URL
'영어공부하는 후배'ㅎㅎ
앨리스님이 선배고 제가 후배일지도...ㅋㅋ

시립 도서관이나 근처의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시면 원서를 빌려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로알드 달('챨리와 초콜렛공장'저자)의 동화책들은 알라딘에서
사오천원이면 살 수 있으니 가끔은 이렇게 싼 원서들은 사보기도 해요.

hnine님의 서재에 가시면 재미있는 원서 소개가 더러 있어요.^^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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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애간장 녹이는 사무치는 절절한 그리움들이 그의 편지글 전부이다.

 

이렇듯 사무치는 절절한 그리움으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연이어 거듭거듭 반복되는 그의 애절한 편지글들이 나의 가슴을 조아오는 것만 같아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의 편지글들은 마무리 되고 그의 아내의 편지글들로 2부가 시작되니

 

얼마나 다행스럽던지...(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경우는 '외면'이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임을

 

나는 알고 있다)

 

편지글들과 함께 실린 그의 그림들은 그리움으로 가득찬 그의 내면이나 고달픈 생활고와는

 

상반되게 상당히 경쾌하고 힘차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소는 그의 그림들처럼 그리 굳세거나

 

강렬한 힘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소의 눈만큼 유순하고 선한 눈동자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그의 그림처럼 힘찬 소들은 본 적이 없다. 그런 소에게 그가 그런 강렬함을

 

부여하는 까닭은 필시 그의 강한 희망이나 꿈을 실고 싶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가족그림들이나 아이들의 그림 또한 매우 경쾌해 보인다. 모두가 내 시각으론 그의 간절한 소망들

 

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욱 애잔해 보이는 그림들이다.

 

그의 아내의 편지글들 뒤로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들이 실려 있고 그 후에 그의 동료, 구 상이

 

말하는 '이중섭의 인품과 예술'에 대한 글이 나온다.

 

다음은 그 일부분이다.

 

"(...)

그는 전화(戰禍)의 조국과 그 속에서 허덕이는 이웃들을 등지고 저 혼자서만 전후 재빨리 부흥과

안정을 얻은 일본으로, 막말로 먹을 것과 처자식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그의 예민한 양심으로

도저히 못 할 짓으로서 자기를 스스로가 용서할 수 없었다. 오직 그림을, 그것도 조국의 현실을

제재(題材)로 삼아 그려가지고 돌아온다는 그 조건하에서 내심(內心)의 자기 허락을 했던 것이다.

(...)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남들은 세상가 자기를 위하여 저렇듯 열심히 봉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그림만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며 이게 무슨 짓인냐?"

"내가 동경에 그림 그리러 간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남덕이와 애들이 보고 싶어서 그랬지."

중섭은 그날부터 일체 음식을 거절하고 병원에 드러누웠다가도 외부에서 자동차나 사람들의

소리가 크게 들려오면, 그의 말대로 세상이 열심히 활동하는 기척만 들리면 쓸고 걸레로 닦고

어떤 때는 밖에 나가 노는 아이들을 끌고 와서는 세면장에서 얼굴과 손발을 씻어주며, 이제부터는

자기도 세상에 봉사를 좀 해봐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 동경행 계획은 처자에게 향한

개인적 욕망이었으니 그때까지 한 주일도 거르지 않던 가족과의 교신을 단절할 뿐 아니라 그 후

도 연달아 온 부인의 서한을 아무리 전해주어도 개봉을 않고 나에게 돌려 주며 반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두 자학 증세 중 하나인 식음거부의 이유에 대해서는 좀 설명을 덧붙여야 이해가 잘될 것 같다.

중섭은 평양에서 얼마 멀지 않은 평원군의 부농의 막내로 태어나 앞서도 말했지만 그의 형이 그

자산을 원산으로 옮겨다 사업에 투자하여 더욱 크게 성공했었으므로 해방 전까지는 의식주 그리운

줄 모르고 살았을 뿐 아니라 언제나 물질적으로도 베푸는 처지에 있었으며 해방 후에도 1.4후퇴

까지는 남에게 손 벌려보지는 못하고 지냈었다. 그러던 것이 월남한 그날부터 어쨌거나 남의 신세,

남의 덕, 남의 호의에 얹히고 기대서 생활해야 했고, 또 실지 그랬으므로 그가 데데하게 우는 소

리나 내색은 안했지만 그의 내면에선 얼마나 그게 '에고'가 상하고 자기혐오와 열등감에 휩싸여

지냈을 것인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

"나는 세상을 속였어! 그림을 그린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놀고 다니며 훗날 무엇이 될 것처럼

말이야."

그가 심신의 막다른 피로와 절망 속에서 쓰러졌을 때 나온 이 말의 배경에는 그의 저러한 말 못할

고통이 스며 있었고 또 그래서 그 결론으로 식음을 전폐하는 절단에 나아간 것이다. 자학이라면

무서운 자학이요, 도전이라면 무서운 도전이었다. 막말로 하면 그림으론 세상이 먹여주지 않으니

안 먹겠다는 것이요, 이 현실엔 그림은 소용없으니 안 그린다는 것이요, 이런한 자기 예술에 대한

순도(殉道)에는 처자도 불가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병적(病的)이었다고밖에 달리 표현하

지 못하지만 이를 결행한 그에게 있어서는 정연(整然)한 이로(理路)와 완강(頑强)한 자기진실이

아닐 수 없었고, 또 외길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구 상의 글을 읽고 그가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안 간 것이었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다시금 난해한 '예술가'의 기질을 떠올려 본다. 천재는 이렇듯 난해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 난해한 부분이 창조의 원천인가 보다.

 

아니면 고인이 되어버린 천재에 대한 살아 있는 자들의 주관적인 재해석일라나......

 

그의 그림에서는 손발이 다소 크게 그려져 있으며 아이들은 대부분 옷을 입지 않고 있다.

 

특히 하체가 노출인 그림이 많으며 그 하체는 대부분 튼실해 보인다. 궁핍하던 그 시절이라면

 

이렇듯 튼실할 리는 없는데 이또한 그의 소망이라 여긴다.

 

먹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궁핍했던, 암울했던 우리 조상들의 그 시절에 다시금

 

숙연해지기도 하면서, 그렇지만 그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밝은 미소는 이 중섭의

 

소망이 아닌 온전한 그들의 것이었음을 확신한다.

 

 

너무 짧은 그의 인생이 애석하다. 가족의 품에서 떠나지 못한 그의 불운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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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12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져 지냈어도 늘 마음으로 만나고 보았으며 그렸기에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리라 느껴요.
늘 가까이에서 보더라도 마음으로 안 만나고 안 보고 안 그리면
아무런 그림도 못 그릴 뿐 아니라,
거짓 그림만 남겼겠지요...

Grace 2013-11-14 17:25   좋아요 0 | URL
"(...)
마음으로 만나고...

(...)
마음으로 안 마나고..."

마음으로
마음으로
마음으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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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반에는 법정스님의 글인 듯 느껴진다.

 

책을 덮을 즈음, 법정스님과 헤르만 헤세의 다른 점이 보인다.

 

스님의 사물을 보는 마음과 헤세의 사물을 보는 마음은 거의 같은 맥락이나, 스님은 인생사와

 

연관지어 많은 조언을 곁들였다면 헤세는 그냥 자연예찬으로 만족한다. 어쩌면 스님은 소로우와

 

헤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남성의 감수성은 여성의 그것보다 때로는 월등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나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라 자처하는 나도, 사십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아홉 순정"

 

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아직 가슴 흔들리는 나도 스님이나 헤세의 감수성엔 턱없이

 

미치지 못하단 걸 알겠다.  

 

'번역'이란 걸 또 새겨본다.

 

우리는 '땅 한 조각', '하늘 한 조각'이란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구름 한 조각'이란 말은 흔하게 들어도 '하늘 한 조각'은 낯설다. '하늘 한 조각' 대신 '하늘

 

한 켠'이나 '하늘 저편' 정도로, '땅 한 조각'보단 '땅 한 평', '한 뙈기의 땅'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한다.

 

"화가들이 '그림 같은'이라는 말을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는'으로 쓰지 않는다면, 나는 그 같은

 

대기의 모습에 '그림 같은'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군."- 이 문장 역시 참 애매하지 않나?

 

뭘 말하려는 것인지 서너 번 읽어 보아도 내겐 애매하기만 하다.

 

번역이란 있는 그대로 작업 하는 것 보다는 그 나라의 정서에 가장 적당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듬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책이 번역본임을 금새 알아차리지 않게

 

하는 것이 훌륭한 번역가가 아닐란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무를 존경한다는 헤세를 보며 나도 그러하다는 걸 알게된다. 나도 그러하지만  나타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높다랗게 쭉쭉 곧게 뻗은 소나무는 기상과 절개를 일깨워 주고,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세월과 인내, 연륜을, 낙엽송들은 아름다운 계절을, 집 앞 공원의 나무들은

 

휴식을...... 그렇게 나의 주변에 늘 있어 온 수많은 나무들이 일깨워 주는 걸 새겨 보면서,

 

글로써 나타내지 못한 그들로 향한 나의 존경과 감사는 늘 내 안에 있어 온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이렇게 말 할 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나는 나무가 스스로의 목숨이 다해 죽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얼마 전 환경학교에서 들은 설명에 의하면 그들도 목숨이 다하는 때가 있더라.

 

소나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오면 솔방울을 많이 맺는단다.

 

소나무의 본능이 그러할 때, 그럼 그에 걸맞는 죽음에 대한 나의 본능은 무엇일까?

 

 

"만약 나에게 정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는 또한 헤세를 존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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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는 넋 고이 이으시면
나무가 따사로운 숨결 살뜰히 나누어 주겠지요~

Grace 2013-11-01 19:03   좋아요 0 | URL
"겨울아 네가 휭휭 찬바람 불어 이 땅 쉬게 해 주어야 다시 봄이 되겠지."
 
바닷가 마지막 집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5
전경린 원작, 이원희 그림 / 이가서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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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분 정도면 휘리릭 볼 수 있는 만화 책이다.

 

도서도우미 하다 보면 여러가지 장점들이 많은데 그 중 제일 즐거운 것은 학생들 반납하는

 

책 중에서 하나씩 건져 올 때더라고.

 

이 녀석은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질문하는 도중, 못 들었는지 녀석은

 

휙~ 가버렸다.ㅎㅎ 학생들과 자신이 빌린 책들에 대해 잠시잠시 이야기 나누는 것도 내겐

 

제법 쏠쏠한 재미거리다.

 

만화가 좀더 사실적이었더라면 흥미가 배가 되었을텐데... 이런 만화 실력으로도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낙향한 아버지, 우울증 엄마, 도시로의 갈망으로 가득 찬 동생, 무기력한 나...

 

갑갑하고 답답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전반에 깔려 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왜 남자친구를 따라 나서지 않았을까? 왜 벗어나지 않는 것일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이 부모를 위한, 자신을 위한 최선인 것일까? 지나 갈 한 시절일 뿐이겠는가?

 

작가는 왜 그녀를 그 시골에 묶어 둔 것일까? 그것이 희망인 양 마무리를 하는 듯 보여

 

과연 그것이 모두를 위한 희망이 될 수 있을것인가라는 회의가 인다.

 

"이제 안 된다고 생각할 때에도 언제나, 어디선지 모르게 한줄기 빛이 비쳐온다.

그 작은 빛을 바라보면 다시 용기가 솟구친다. 그리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솟구친다."

-'생의 수레바퀴'중에서

 

수많은 반딧불이 그녀의 빛이기를, 그래서 부디 지나 갈 짧은 한 시절일 뿐이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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