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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책의 초반에는 법정스님의 글인 듯 느껴진다.
책을 덮을 즈음, 법정스님과 헤르만 헤세의 다른 점이 보인다.
스님의 사물을 보는 마음과 헤세의 사물을 보는 마음은 거의 같은 맥락이나, 스님은 인생사와
연관지어 많은 조언을 곁들였다면 헤세는 그냥 자연예찬으로 만족한다. 어쩌면 스님은 소로우와
헤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남성의 감수성은 여성의 그것보다 때로는 월등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나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라 자처하는 나도, 사십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아홉 순정"
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아직 가슴 흔들리는 나도 스님이나 헤세의 감수성엔 턱없이
미치지 못하단 걸 알겠다.
'번역'이란 걸 또 새겨본다.
우리는 '땅 한 조각', '하늘 한 조각'이란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구름 한 조각'이란 말은 흔하게 들어도 '하늘 한 조각'은 낯설다. '하늘 한 조각' 대신 '하늘
한 켠'이나 '하늘 저편' 정도로, '땅 한 조각'보단 '땅 한 평', '한 뙈기의 땅'정도가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한다.
"화가들이 '그림 같은'이라는 말을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는'으로 쓰지 않는다면, 나는 그 같은
대기의 모습에 '그림 같은'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군."- 이 문장 역시 참 애매하지 않나?
뭘 말하려는 것인지 서너 번 읽어 보아도 내겐 애매하기만 하다.
번역이란 있는 그대로 작업 하는 것 보다는 그 나라의 정서에 가장 적당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듬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책이 번역본임을 금새 알아차리지 않게
하는 것이 훌륭한 번역가가 아닐란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무를 존경한다는 헤세를 보며 나도 그러하다는 걸 알게된다. 나도 그러하지만 나타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높다랗게 쭉쭉 곧게 뻗은 소나무는 기상과 절개를 일깨워 주고,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세월과 인내, 연륜을, 낙엽송들은 아름다운 계절을, 집 앞 공원의 나무들은
휴식을...... 그렇게 나의 주변에 늘 있어 온 수많은 나무들이 일깨워 주는 걸 새겨 보면서,
글로써 나타내지 못한 그들로 향한 나의 존경과 감사는 늘 내 안에 있어 온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이렇게 말 할 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나는 나무가 스스로의 목숨이 다해 죽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얼마 전 환경학교에서 들은 설명에 의하면 그들도 목숨이 다하는 때가 있더라.
소나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오면 솔방울을 많이 맺는단다.
소나무의 본능이 그러할 때, 그럼 그에 걸맞는 죽음에 대한 나의 본능은 무엇일까?
"만약 나에게 정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
나는 나무를 존경한다.
나는 또한 헤세를 존경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