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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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마지막 페이지, 이덕무가 몸져 눕고, <아, 정말이지 이제 나도 늙었는가, 감기가 쉬이 낫지를

 

않는다.>로 마무리를 하는데... 내 마음 속에선 설마 그럴리가... 안된다...란 생각이 피어오르

 

자 마자 눈은 벌써 그 옆 페이지의 <뒷이이야기 - 1793년 1월 25일 아침, 이덕무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쉰세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를 순식간에 훑는 순간,

 

뜨뜻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왜일까... 내가 왜 이러는 것일까... 이 눈물은 왜 이렇게

 

그치지 않는 것일까?...

 

서자로 인한 신분제의 부당함을 가슴 아프도록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그의 애국 애족, 君을 향한 그의 충절, 붕우를 향한 우정과 신뢰, 후세에 대한 염려와 희망,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그의 삶에 나는 한없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의 가난을 보니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부자였다. 정말로 지금의 우리는 죄스러울 정도로

 

흘러 넘치고 있다.

 

이덕무가 벼슬 길에 오르니 그의 아버지는 임금이 계시는 곳을 향하여 절을 한다. 지금 이

 

시대와 너무 비교되지 않나! 공무원이 된 자식에 대해 대통령에게 감사해 하는 마음을 가지

 

는 부모가 있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이덕무가 몸져 누웠으니 손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위로하는 모습도 가히 우리시대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민족의 뿌리가 되어야 할 충과 효가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이 너무 안타까

 

웠다. 나부터 충효를 가정교육의 근본으로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더라.

 

역사에 대해선 젬병이다. 밑줄 그으라기만 하던 국사시간이 그렇게 재미없었다. 그 때문이던가,

 

지금도 사극은 아예 비켜간다.

 

그러한 내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들은 서자 출신이며, 그 시절 서자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며, 박지원, 홍대용과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실학사상의 근본을 쉽고 재미있게 접해 보며, 모짜르트의 시대와 비교도 해보니

 

'역사'가 그리 재미없지는 않게 된다. 학교 수업 시간에 그렇게 지루했던 역사가, 책들은 어쩜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이게 보여 주는지, 우리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못하는지, 애재라~

 

이렇듯 이 시대의 언어로 쉽고 재미있게 엮어 준 저자, 안소영님이 그리 감사하다. 이러한 책들이

 

더 많이, 더 더 많이 나온다면 좋겠다.

 

우리시대의 모든 역사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이렇듯 재미있게 풀어 주면

 

나처럼 역사에 젬병인 사람들이 많이많이, 아주 많이 줄어들 것이다.

 

또 한 권의 훌륭한 책을 접하게 되어 연일 즐겁다.

 

 

 

 

 

 

 

 

*이 방의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친구 집에서 16권의 책을 빌려 왔다.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책상 위에 쌓아 둔 이 책들을 보니 이 구절이 꼭 내 마음인 듯 반갑다.>

 

*책을 읽을 때도, 날이 추울 때도, 먼 곳에 계신 아버님이 그리울 때도, 온전히 햇살만을 의지

하며 보낸 날들이 있었다. 그날처럼 햇살은, 하얗게 서리가 내린 내 머리를, 주름진 내 얼굴을,

붓대를 하도 쥐어 굳은 살이 박인 손가락을 차례로 쓰다듬어 주었다.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나는 또한 그림을 보듯 책을 본다.

어떨 때는 책에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간혹 주의를 물리고 돌아앉아 긴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뵐 때마다, 내 마음은 몹시 아려 왔다.

내가 맡은 일만이라도 차질 없이 하여 전하를 기쁘게 하고, 조금이라도 쉬게 해 드리고 싶었다.

 

*늘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던 아버님은, 내가 고을 수령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

을 흘리며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셨다.

 

*아버님의 시대보다 나의 시대가 더 나아졌듯, 나의 아들들의 시대는 좀 더 나아지리라. 머지않

아 태어날 나의 손자의 시대는 더욱 그러하리라.

 

*틈나는 대로 유득공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역사는 책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

보다, 팔딱팔딱 뛰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리해야 한다고 여기는 그였다.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옛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들,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산과 들을, 내 안에 스며 있는 그 시간들을

느낄 때면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간 이런 마음이었을텐데 하며 겪어 보지 못한 아득한 옛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샘솟듯

흘러 나오는 건, 내 안에 이미 그 시간이 스며든 까닭일 것이다.

 

*어린 손자의 근심스런 얼굴이 눈앞에 다가왔다. 자그마한 손의 따스한 기운이 아직도 이마에

남아 있다. 눈을 뜨자 아이의 얼굴에 반가움이 활짝 피어나면서도, 얼핏 눈에 물기가 어렸다.

"할아버지......"

아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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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역사를 만나다 - 신고전주의에서 후기인상주의까지 명작으로 본 사회사
우정아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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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그 붓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크레파스는 물론 물감과 색연필등등 미술도구의 응용을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내가 어느날,

 

크레파스를 손으로 문지르며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서 받은 충격은 큰 것이었다.

 

어머나, 저렇게 그려도 되는구나...ㅎㅎ아마도 대학교때나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어서 미술이

 

재미있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버린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이나 오주석의 책을 읽고 난 후의 감동은 큰 것이었다.

 

그 몇 권의 책으로 그림보는 방법을 배우고, 작가를 이해하고 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이 책은 그런 도움이 전혀 못된다.

 

우선 책속에 있는 그림들이 너무 작다. 발밑의 고양이를 보라는데 첫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적어도 책의 크기가 지금 크기의 2배는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의 형태를 빌어 이 책을 만든 것 같은데... 너무 고전을 골랐다.

 

또한 작가나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요소가 거의 없고, 설명도 무척이나 부족하다.

 

명작이 역사를 만난다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역사에 대한 설명까지도 부족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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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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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성인들인데 삶이 이리도 다르다.

 

박종호, 황병기의 책들을 막 읽은 터여서 당연하게 비교 되어졌고, 그 전에 읽은 홍세화의 삶과도

 

점철되어졌다.

 

나랏일에 온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청춘같은 20년의 시기를 감옥에서, 또는 추방이란 것으로 나라

 

를 떠나야 했으니... 내가 아무리 어려운들 이들보다야 살만하지 않겠는가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한들 이들보다야 하겠는가 말이다. 자그마치 20년이다. 20대 후반에 입소해서

 

40대 후반에 출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를 주장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고,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은 감사한 것이며, 사람을 키우는 일로 더 나은 미래를 바라

 

보는, 양심이야말로 사람의 가장 가치있는 근거라고 이르는 그들은 분명 이 사회의 지성인들

 

임에 분명하다.

 

추천글이 많았던 황병기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그것이 없다.

 

여백이 엄청나게 많았던 황병기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여백조차도 없어서 빽빽한 글씨

 

들이 처음엔 부담스럽기까지 했지만, 나중엔 다 읽어 가는 것이 여간 아깝지가 않았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은 어렵더라.

 

학교에서는 다만 암기만 했다. 공자-仁, 맹자-성선설, 노자-성악설등등으로. 시험을 위한 이런

 

짝짓기 암기 외에는 더이상의 설명도 선생님은 없었다. 궁금했었다. 노자는 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했을까... 잠시 생각해봤었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 악한걸까, 그렇다면 나의 본성에는

 

악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제사 알게 된다. 노자가 성악설을 주장한 근거를! 그 惡은 교육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노자가 주장한 것은 성악설의 중요성이 아니라 바로 교육의 중요성이란 것을!

 

참으로 안타깝지 않나! 우리시대의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무능했던가 말이다. 수업시간에 책

 

읽고 중요하다며, 아주 중요하다며 밑줄 그으란 말 외에 그들은 무슨 말을 더 했더란 말인가!

 

공자의 논어에 대한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이, 이 현대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다가는 바보소리

 

듣기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고전>이란 필요한 것일까?...답답하다...였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읽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러한 현대이기때문에 여전히 <고전>은 이 시대의 지침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서는 본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1부와 달리 책장이 어찌나

 

잘 넘어가는지 다 읽어 버릴까봐 안타까웠다.

 

훌륭한 책을 또 한 권 읽어서 몹시 기쁘다. 저자의 홈피도 가보고, 말하는 것도 보고, 목소리도

 

들어 보았다. 책과 같은 느낌이어서 다행이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말씨와 외모를 꾸미는 것은 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귀곡자는 반대로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마련

입니다. 귀곡자는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기 않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통틀어서 占이라고 하지만 相, 命, 占이 각각 다릅니다. 상은 觀상, 足상, 手상으로,

이미 정해진 운명을 엿보는 것입니다. 命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이라는 것은 사주팔자입니다.

타고난 운명, 이미 정해진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점은 정해진 운명을 읽으

려는 것이 아닙니다. 점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판단을 돕기 위해 하는 최후의 행위

입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이고 근본은 同의 논리입니다. 열린 사고가 못

됩니다. 통일은 민족의 悲願입니다. (...) 그것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입니다. 統一이 아니라 通一로써 충분한 것입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불러들인 재앙은 결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과학은 진리를, 종교는 善을 지향합니다.

 

*그릇으로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즉 그릇의 속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의

쓰임이 생긴다. (...) 방으로 만드는데, 그 없음으로 해서 방으로써의 쓰임이 생긴다. 물건으로

가득 찬 방은 방으로써의 쓰임이 없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신뢰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거나

창산유수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말을 진정성 있게 맏아들이게 하는 경우가 大辯임은

물론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

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노동은 생명이 세상에 존재하는 형식입니다. 그것을 기계에게 맡겨 놓고 그것으로부터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계의 효율을 통하여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여가를 즐기게 된다면 그것으로써 사람다움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동 경감과 소비

증대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의 정체성은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노동'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영위하는 삶에 의해서

자기가 형성되고 표현됩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롸 사고를 바꾼

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

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

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가 그렇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렇습니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

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

이란 모순된 조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증오의 대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욱 괴롭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향한 부당한 증오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 먹물들은 자기의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합니다. 못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 행위만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가

피한 사연이 있으리란 춘풍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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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천년, 탄금 60년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황병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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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의 가야금 버젼 케논을 오랫동안 들었다. 가야금을 이렇게 연주하니 지루하지 않고

 

좋구나, 아름답구나 싶었다. 그런 어느날, 숙대 가야금 연주단의 케논을 듣고는 가슴이

 

벌렁거렸다. 가야금에, 힙합 썩인 케논인 것이다. 이건 뭐라 해야 할까, 상식을 넘어선다 해야

 

할까...우와~ 음악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퓨전이란 말이 이런것이구나...

 

무척 잘 어울렸으며 또한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실컷 듣고 오랫동안 가야금버젼 케논과는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오늘 이 책과 만난다.

 

제목이 너무너무 근사하다.

 

오동 천년, 탄금 60년이라!! 이 속에 그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그가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니, 참 똑똑한 사람이었구나!

 

유명인이 되면 유명인을 만나기가 무척 쉽다는 것을 또 실감하며 읽었다.

 

글로 봐서는 감정이 박종호처럼 굉장히 섬세하고 깊은 분은 아닌 것 같다.ㅎㅎ

 

사실에 입각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이다.

 

탄금 60년,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존경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나에게 배운 지식을 어딘가에서 써먹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법 특이한 시험 방식을 쓰고 있다. 우선 학생들에게

A4용지를 1/4 크기로 잘라서 이른바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오라고 한다.

 

*나는 거창한 인생 계획이 없다. 북아현동 집에서 아들 내외, 손녀와 함께 밥을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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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색 - 죽창수필 선역
운서 주굉 지음, 연관 옮김 / 호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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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승의 스님들에 대한, 혹은 사부대중들에 대한 잠언 정도라 하면 될라나.. 그런 책이다.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성경의 창세기를 읽어 보는데, 어린

 

새끼양을 왜 그렇게 매번 잡아서 제물로 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는 인간

 

사의 소원을 이루려고 짐승을 잡아 기도의 제물로 삼는 일을 가장 그른 기도라 한다.

 

우리의 제사문화도 그러하다. 조상을 기리기 위해 왜 우리는 소와 돼지, 닭을 잡고 조기와 명태를

 

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못 먹던 농경시절, 제사 때와 명절 때나 육고기와 생선등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조상들의

 

배려쯤으로 생각하려해도 뭔가 석연찮다. 

 

말라리아의 원인인 모기를 없애는 것에는 살생이란 말을 붙일 필요가 없겠으나, 동물을 잡아서

 

제물로 올리는 것에는 살생이란 말이 합당해서, 우리는 이 책의 스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좀은 

 

조심하고 삼가해야 하지 않을라나.  

 

두 세달 전이던가, 집 근처의 절에 날마다 108배를 하러 잠시 다녔다. 그러다 수능 100일 기도

 

라는 안내를 보고 아들 이름을 올려볼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것에는 항상 돈이 들어간다.

 

그럼 스님은, 부처님은 돈을 낸 사람의 기도는 날마다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안해

 

준단말이더냐...라는 옹색한 생각을 늘 가지고 있던 나는 이런 기도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한 번 내어 볼 작정으로 큰 맘먹고 접수처에 가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 금액을 물어보는데, 세상에나! 몇 만원이 아니고 30만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큰 금액을 낼 수는 없어서 친구와 나는 그만 두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대자 대비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정직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가 신神일진대,

어찌 뇌물에 이끌리어 복을 내리실 리가 있으랴."

 

이 구절을 읽는데 '그럼 그렇지!'하고는 편안해했다.ㅎㅎ

 

 

 

 

 

 

 

 

*천지는 생물로써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니, 갖가지 곡식이나 과일, 채소 수륙의

진미 같은 것이요, 사람은 또한 온각 지헤를 써서 이것으로 떡을 만들거나 경단을 빚고,

소금과 식초를 치며, 삶기도 하고 굽기도 하여 참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

데도 무엇이 모자라서 다시금 사람처럼 혈기가 있고, 자식이나 부모가 있으며, 지각이 있어서

아픈 줄도 알고 슬픈 줄도 알며, 죽는지도 사는지도 아는 생명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뼈를 씹는단 말인가! 이것이 대체 무슨 경우인가!

 

*경전은 반드시 전체적이고도 폭이 넓게 읽어야만 비로소 융통하여 한쪽으로 치우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대체로 경전은 이 곳에서 내세운 말을 저 곳에서는 버리고, 이 곳에서

버린 말을 저 곳에서는 내세우곤 하니, 그것은 어떤 상황이나 법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

었을 뿐, 한 가지 법만을 고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근본에 계합하여 한 번 믿으면 영원히 믿어 다시는 여러 가지 번잡한 이름이나 모양에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매실이 잘 익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법에, 두타 비구는 걸식하여 먹고, 헌옷을 기워 입으며, 무덤 곁이나 나무 아래에서

자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대중들은 신도의 공양을 받아 옷과 음식이 풍부하고 따뜻한 처소에서

지내면서도, 더 맛있고 화려한 것을 요구한다. 이 무슨 심사인지 알 수가 없다.

발우를 네 번 꿰매 쓰고, 신 한 켤레를 30년 동안 신었다는 옛 큰스님의 풍습이 사라지려 하도다.

 

*옛 선덕 가운데 어떤 분은 집을 따로 지어 어머니를 모시기도 하였으며, 어떤 분은 늘 어머니를

등에 업고 걸식하기도 했으나 은애에 얽힌 적이 없었으니, 이것을 어찌 부모와의 애정을 끊은

것이라 하랴.

그러나 시주의 집과 교분을 맺고 끊임없이 음식이며 물품을 주고받거나, 부모나 형제보다 제자

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부모가 없으면서 부모가 있는 것이요, 하나의

애정에서 벗어나 또 다른 애정 속으로 빠져든 것일 뿐이다. 어찌 이렇게 경우가 뒤바뀌었는가.

자기 자신은 세상의 시주의 공양을 받아 배부르고 따뜻하게 살면서, 부모님이 주리고 추위에

떨면서 외롭게 지내시는 것을 못 본 척하고도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세상 사람들은 갖가지 소원을 이루려고 기도를 한다. (...) 이러한 갖가지 인간사의 소원을

이루려고 기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그른 것은 짐승을 잡아 기도의 재물로 삼는 일이다.

이런 짓은 '나쁜 소원'이라고 할 만하니, 업만 지을 뿐 아무런 공덕도 이루지 못할 것이요, 비록

소원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좋은 일은 그저 잠시일 뿐으로, 곧 고통의 과보가 뒤따를 것이다.

옷이나 깃발을 바치거나 전당을 지어 올릴 것을 약속하거나, 기물을 갖출 것을 다짐한다 한들,

비록 앞의 냄새나는 제사와는 같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대자 대비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정직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가 신神일진대, 어찌 뇌물에 이끌리어 복을 내리실 리가 있으랴.

설사 소원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운명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소원을 들어

주신 것은 아니다. 사실은, 소원을 이룸은 오직 널리 선업善業을 짓는 데에 따라온 결과일

뿐이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가난한 이를 돕고 노인을 불쌍히 여기며,

재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를 구하고, 살생을 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 주는등, 갖가지

음덕과 방편으로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힘써 행하며, 좋은 공덕이 감응하여 반드시 상서로운 일이

뒤따를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천명天命에 돌리거나 숙연宿緣에 맡기고, 원망하거나

탓함이 없이 선행을 더욱 힘써 지어 결코 물러서거나 후회해서는 안 된다.

 

*스님이 되고자 함은, 번뇌를 깨뜨려 없애고 지혜를 얻어, 위로는 불과佛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예는 의義로써 행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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