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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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성인들인데 삶이 이리도 다르다.

 

박종호, 황병기의 책들을 막 읽은 터여서 당연하게 비교 되어졌고, 그 전에 읽은 홍세화의 삶과도

 

점철되어졌다.

 

나랏일에 온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청춘같은 20년의 시기를 감옥에서, 또는 추방이란 것으로 나라

 

를 떠나야 했으니... 내가 아무리 어려운들 이들보다야 살만하지 않겠는가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한들 이들보다야 하겠는가 말이다. 자그마치 20년이다. 20대 후반에 입소해서

 

40대 후반에 출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를 주장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고,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은 감사한 것이며, 사람을 키우는 일로 더 나은 미래를 바라

 

보는, 양심이야말로 사람의 가장 가치있는 근거라고 이르는 그들은 분명 이 사회의 지성인들

 

임에 분명하다.

 

추천글이 많았던 황병기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그것이 없다.

 

여백이 엄청나게 많았던 황병기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여백조차도 없어서 빽빽한 글씨

 

들이 처음엔 부담스럽기까지 했지만, 나중엔 다 읽어 가는 것이 여간 아깝지가 않았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은 어렵더라.

 

학교에서는 다만 암기만 했다. 공자-仁, 맹자-성선설, 노자-성악설등등으로. 시험을 위한 이런

 

짝짓기 암기 외에는 더이상의 설명도 선생님은 없었다. 궁금했었다. 노자는 왜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했을까... 잠시 생각해봤었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 악한걸까, 그렇다면 나의 본성에는

 

악함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제사 알게 된다. 노자가 성악설을 주장한 근거를! 그 惡은 교육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노자가 주장한 것은 성악설의 중요성이 아니라 바로 교육의 중요성이란 것을!

 

참으로 안타깝지 않나! 우리시대의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무능했던가 말이다. 수업시간에 책

 

읽고 중요하다며, 아주 중요하다며 밑줄 그으란 말 외에 그들은 무슨 말을 더 했더란 말인가!

 

공자의 논어에 대한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이, 이 현대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다가는 바보소리

 

듣기 딱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고전>이란 필요한 것일까?...답답하다...였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읽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러한 현대이기때문에 여전히 <고전>은 이 시대의 지침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에서는 본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1부와 달리 책장이 어찌나

 

잘 넘어가는지 다 읽어 버릴까봐 안타까웠다.

 

훌륭한 책을 또 한 권 읽어서 몹시 기쁘다. 저자의 홈피도 가보고, 말하는 것도 보고, 목소리도

 

들어 보았다. 책과 같은 느낌이어서 다행이었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말씨와 외모를 꾸미는 것은 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귀곡자는 반대로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와의 대화가 기쁜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성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게 마련

입니다. 귀곡자는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기 않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통틀어서 占이라고 하지만 相, 命, 占이 각각 다릅니다. 상은 觀상, 足상, 手상으로,

이미 정해진 운명을 엿보는 것입니다. 命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이라는 것은 사주팔자입니다.

타고난 운명, 이미 정해진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점은 정해진 운명을 읽으

려는 것이 아닙니다. 점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판단을 돕기 위해 하는 최후의 행위

입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이고 근본은 同의 논리입니다. 열린 사고가 못

됩니다. 통일은 민족의 悲願입니다. (...) 그것이 대박처럼 갑자기 다가올 때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입니다. 統一이 아니라 通一로써 충분한 것입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불러들인 재앙은 결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과학은 진리를, 종교는 善을 지향합니다.

 

*그릇으로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즉 그릇의 속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의

쓰임이 생긴다. (...) 방으로 만드는데, 그 없음으로 해서 방으로써의 쓰임이 생긴다. 물건으로

가득 찬 방은 방으로써의 쓰임이 없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신뢰하게끔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거나

창산유수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말을 진정성 있게 맏아들이게 하는 경우가 大辯임은

물론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

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노동은 생명이 세상에 존재하는 형식입니다. 그것을 기계에게 맡겨 놓고 그것으로부터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계의 효율을 통하여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여가를 즐기게 된다면 그것으로써 사람다움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동 경감과 소비

증대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의 정체성은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노동'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영위하는 삶에 의해서

자기가 형성되고 표현됩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롸 사고를 바꾼

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

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

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가 그렇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렇습니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

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

이란 모순된 조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증오의 대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욱 괴롭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향한 부당한 증오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개 먹물들은 자기의 사정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변명까지

합니다. 못배운 사람들은 변명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짧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 행위만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가

피한 사연이 있으리란 춘풍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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