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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색 - 죽창수필 선역
운서 주굉 지음, 연관 옮김 / 호미 / 2005년 3월
평점 :
한 고승의 스님들에 대한, 혹은 사부대중들에 대한 잠언 정도라 하면 될라나.. 그런 책이다.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성경의 창세기를 읽어 보는데, 어린
새끼양을 왜 그렇게 매번 잡아서 제물로 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는 인간
사의 소원을 이루려고 짐승을 잡아 기도의 제물로 삼는 일을 가장 그른 기도라 한다.
우리의 제사문화도 그러하다. 조상을 기리기 위해 왜 우리는 소와 돼지, 닭을 잡고 조기와 명태를
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못 먹던 농경시절, 제사 때와 명절 때나 육고기와 생선등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조상들의
배려쯤으로 생각하려해도 뭔가 석연찮다.
말라리아의 원인인 모기를 없애는 것에는 살생이란 말을 붙일 필요가 없겠으나, 동물을 잡아서
제물로 올리는 것에는 살생이란 말이 합당해서, 우리는 이 책의 스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좀은
조심하고 삼가해야 하지 않을라나.
두 세달 전이던가, 집 근처의 절에 날마다 108배를 하러 잠시 다녔다. 그러다 수능 100일 기도
라는 안내를 보고 아들 이름을 올려볼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것에는 항상 돈이 들어간다.
그럼 스님은, 부처님은 돈을 낸 사람의 기도는 날마다 해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기도는 안해
준단말이더냐...라는 옹색한 생각을 늘 가지고 있던 나는 이런 기도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한 번 내어 볼 작정으로 큰 맘먹고 접수처에 가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 금액을 물어보는데, 세상에나! 몇 만원이 아니고 30만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큰 금액을 낼 수는 없어서 친구와 나는 그만 두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대자 대비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정직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가 신神일진대,
어찌 뇌물에 이끌리어 복을 내리실 리가 있으랴."
이 구절을 읽는데 '그럼 그렇지!'하고는 편안해했다.ㅎㅎ
*천지는 생물로써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니, 갖가지 곡식이나 과일, 채소 수륙의
진미 같은 것이요, 사람은 또한 온각 지헤를 써서 이것으로 떡을 만들거나 경단을 빚고,
소금과 식초를 치며, 삶기도 하고 굽기도 하여 참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
데도 무엇이 모자라서 다시금 사람처럼 혈기가 있고, 자식이나 부모가 있으며, 지각이 있어서
아픈 줄도 알고 슬픈 줄도 알며, 죽는지도 사는지도 아는 생명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뼈를 씹는단 말인가! 이것이 대체 무슨 경우인가!
*경전은 반드시 전체적이고도 폭이 넓게 읽어야만 비로소 융통하여 한쪽으로 치우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대체로 경전은 이 곳에서 내세운 말을 저 곳에서는 버리고, 이 곳에서
버린 말을 저 곳에서는 내세우곤 하니, 그것은 어떤 상황이나 법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
었을 뿐, 한 가지 법만을 고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근본에 계합하여 한 번 믿으면 영원히 믿어 다시는 여러 가지 번잡한 이름이나 모양에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매실이 잘 익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법에, 두타 비구는 걸식하여 먹고, 헌옷을 기워 입으며, 무덤 곁이나 나무 아래에서
자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대중들은 신도의 공양을 받아 옷과 음식이 풍부하고 따뜻한 처소에서
지내면서도, 더 맛있고 화려한 것을 요구한다. 이 무슨 심사인지 알 수가 없다.
발우를 네 번 꿰매 쓰고, 신 한 켤레를 30년 동안 신었다는 옛 큰스님의 풍습이 사라지려 하도다.
*옛 선덕 가운데 어떤 분은 집을 따로 지어 어머니를 모시기도 하였으며, 어떤 분은 늘 어머니를
등에 업고 걸식하기도 했으나 은애에 얽힌 적이 없었으니, 이것을 어찌 부모와의 애정을 끊은
것이라 하랴.
그러나 시주의 집과 교분을 맺고 끊임없이 음식이며 물품을 주고받거나, 부모나 형제보다 제자
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부모가 없으면서 부모가 있는 것이요, 하나의
애정에서 벗어나 또 다른 애정 속으로 빠져든 것일 뿐이다. 어찌 이렇게 경우가 뒤바뀌었는가.
자기 자신은 세상의 시주의 공양을 받아 배부르고 따뜻하게 살면서, 부모님이 주리고 추위에
떨면서 외롭게 지내시는 것을 못 본 척하고도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라!
*세상 사람들은 갖가지 소원을 이루려고 기도를 한다. (...) 이러한 갖가지 인간사의 소원을
이루려고 기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그른 것은 짐승을 잡아 기도의 재물로 삼는 일이다.
이런 짓은 '나쁜 소원'이라고 할 만하니, 업만 지을 뿐 아무런 공덕도 이루지 못할 것이요, 비록
소원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좋은 일은 그저 잠시일 뿐으로, 곧 고통의 과보가 뒤따를 것이다.
옷이나 깃발을 바치거나 전당을 지어 올릴 것을 약속하거나, 기물을 갖출 것을 다짐한다 한들,
비록 앞의 냄새나는 제사와는 같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대자 대비하신 분이 부처님이시고
정직하여 치우치지 않는 자가 신神일진대, 어찌 뇌물에 이끌리어 복을 내리실 리가 있으랴.
설사 소원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운명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소원을 들어
주신 것은 아니다. 사실은, 소원을 이룸은 오직 널리 선업善業을 짓는 데에 따라온 결과일
뿐이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가난한 이를 돕고 노인을 불쌍히 여기며,
재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를 구하고, 살생을 하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 주는등, 갖가지
음덕과 방편으로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힘써 행하며, 좋은 공덕이 감응하여 반드시 상서로운 일이
뒤따를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천명天命에 돌리거나 숙연宿緣에 맡기고, 원망하거나
탓함이 없이 선행을 더욱 힘써 지어 결코 물러서거나 후회해서는 안 된다.
*스님이 되고자 함은, 번뇌를 깨뜨려 없애고 지혜를 얻어, 위로는 불과佛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다.
*예는 의義로써 행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