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도암 지음 / 의증서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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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몇 권의 금강경 해설서와는 시각차이가 있다.

내 안의 불성을 발견하는 것이 불교라는 것과는 달리, 반야는 지혜가 아니라 절대신이라

말하며, 그 신을 의지하지 않거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절대 해탈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

한다. 또한 불자들이 해탈하여 부처가 되려면 먼저 오늘날 깨달으신 바른 스승이나 생불

을 찾아서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모든 종교가 기복신앙화 됨으로 해서 만사형통이나 운수대통만을 바라며, 종교인들은 

신도들이 바라는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는 부분에선 현각스님이 떠올랐

다. 오래 전, 그의 책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으며,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제목만으로 그가 얼마나 신심있게 종교생활을 하는지 우러러 봐 졌는데, 

25년 후, 그는 이 나라의 종교인이기를 거부하고 떠나겠다시니, 우울한 대한민국의 한

단면인 듯 보여, 이 모두가 욕심을 채우기 위한 집착심때문이라는 이 책 저자의 언급에 

상당한 공감이 갔다.

<선으로 읽는 금강경-김태완>에서는 말에 속지 마라 한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데

우리는 어리석어 자꾸만 그 이면을 해석하려 든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금강경> 속에

화두가,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하며, 저자의 이 책을 정독하면 감추어져 있던 수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라 한다.  내 생각엔 다이아몬드 같은 이런 훌륭한 경이라면 모두가 

쉽게 알아서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법을 설한 자의 마음 아닐까 싶다. 굳이 이 경 속에 

비밀을 숨겨 두어서 이 경을 접하는 자들이 모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말에 속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던 <선으로 읽는 금강경>쪽에 내 마음은 더 쏠린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살생의 의미는 모든 생물을 죽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살인, 즉 사
람을 죽이지 말라는 뜻인데, 살인도 사람의 육신보다 영혼을 죽이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
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이나 사람을 죽인 죄 보다 사람의 영혼을 죽인 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제아제는 "너도 가고 나도 가자"는 자리와 이타, 즉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의 세계는 상구보리를 성취한 자가 가는 곳이며, 바라승은 하화중생을 행한 자가 들어 
가는 곳이다.

*보리사바하는 불자들을 향한 부처님의 기도이며 간절한 소망입니다.

*방생을 하면 마음이 기쁘고 편안해지고 온유해져서 남에게 베푼 만큼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
으로 변하고 선한 마음이 복이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행을 통해서 마음이 
선하게 되면 선한 민큼 천성이 바뀌고 천성이 바뀌면 팔자가 바뀌고 팔자가 바뀌면 복을 받게
되어 행복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자들이 하고 있는 방생은 죽어 가는 생물을 살려주려는 자비심보다 방생을 하면
자신이 전생에 지은 업을 씻고 현생에서 복을 받아 잘 살 수 있다는 욕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 육신의 복을 받기 위한 목적이나 욕심으로 하는 방생은 오히려 악업을 쌓게 되는 것입
니다. (...) 베푸는 마음은 선이지만 취하려는 마음은 욕심이며 죄이기 때문입니다.

*신행생활을 복을 받겠다는 욕심으로 한다면 마음이 점점 강퍅해지고, 교만해지고, 악해
져서 선한 마음이 점점 악한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 불자들은 신행생활을 통해서
항상 남에게 베풀고,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신행생활이란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며 취하려는 마음을 베푸는 마음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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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2 Watching 2 - 시야를 넓힐수록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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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년 전 쯤에나 이 책을 읽었다면 전혀 믿을 수 없다 치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인생수업>, <사후생>을 읽었을 때 처럼. 

그러나 지금은 안다. 모든 것은 믿음, 확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또한 모든 것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워야 자연스럽게 온다는 것을!

내가 믿으면 있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없는 것이니, 내 보기엔 먼저 100% 확신을 전제로 

 

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Secret>에서 말하는 바 임을 이 책을 보고 나니 알

 

아진다. 말처럼 100%확신이라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굉장히 어렵다. 그러하다고 딱 믿어

 

야만 온 우주는 우리의 확신을 위해 움직여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금강경을 보니 한결 수월하다. 좌선할 때 심안(心眼)으로 공간을 바라보고자 

 

집중하니 잡념도 덜해지며, 올라오는 생각들을 바라본다는 것, 왓칭이 어떤 것인지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의 사고에 있어서의 전환점 역할을 해 준 왓칭1,2. 무엇보다 방법론적인 입장에서 나와 

 

계합이 잘 되어서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일렁이는지! 

 

텅 빈 공간을 보고 싶다. 나도 찬란한 빛을 보고 싶다.ㅎㅎ

 

 

 

 

 

 

*에너지 장을 보면 몇 년 후에 어떤 질병에 걸릴지르 미리 알 수 있다.

 

*시야를 넓혀 전체를 다 볼수록 운이 좋아진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마음속에서 그 문제와의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늘리는 게 좋다.

"만일 내가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부터 50년 후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

내 마음의 공간을 천 킬로미터 밖까지 넓히면 그 만큼 많은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내 마음

의 공간을 천 년 후까지 늘려도 그만큼 많은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 마음의 공간을 넓힐수록

'나'는 무한히 퍼져 나간다.

 

*내 아이들은 10년 후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 인생을 어떻게 되돌아 볼까?

100년 후에는 사람들이 나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렇게 시간적 시야를 넓힐수록 '나'는 더욱 커진다. 그러면 나 자신을 더욱더 정확히 보게

되고, 헛발을 내딛지도 않게 된다.

 

*상대와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상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라. 절대로 손해나는 일이 아니다.

그래야 나의 공간이 상대에게까지 확장된다. 그러면서 상대는 마법처럼 내 의도대로 움직이

게 된다. 공간을 넓힐수록 기적이 일어난다.

 

*한꺼번에 몰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잘게 쪼개 조금씩 공부하는 것이 오래 기억된다.

 

*현실세계는 고통의 바다이다. 나 스스로 시공간상으로 시야를 좁혀 '나'를 육신의 공간 속에

가둬놓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시야를 넓혀 텅 빈 공간의 고요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자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 이렇게 조용한 걸!'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시끄러운 소리

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커졌다. 거꾸로 텅 빈 공간의 고요에 초점을

맞추자 고요함이 점점 깊어졌다.

 

*시야를 완전히 넓혀 텅 빈 공간과 하나가 되면 코가 얼얼해지거나 눈 주변, 이마 등 얼굴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기도 한다. 가슴이 쿵쿵 뛰기도 한다. 내 몸을 움직이는 건 두뇌가 아니라

텅 빈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텅 빈 공간은 만질 수도 있다. 양 손바닥을 벌려 서로 가까이

했다 멀리했다 해보라. 손바닥 사이의 공간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밀면 밀리고 당기

면 끌려온다. (...) 텅 빈 공간과 하나가 되면 완벽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빛의 물결이 흐르는 것처럼 가뿐하고 섬세한 음악같은 소리만 감지될 뿐이다.

텅 빈 공간은 지혜로 가득하다.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왓칭을 하고 나면 갑자기 답

이 떠오른다. 텅 빈 공간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세파에 절은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고 위로

해 준다.

 

*육신 속의 나는 '개체 나'이다. 무한한 빛의 공간은 '전체 나'이다. '개체 나'가 점점 커지면

'전체 나'가 된다. 거꾸로 '전체 나'가 점점 작아지면 '개체 나'가 된다. 그래서 '전체 나'와

'개체 나'는 하나이다. '개체 나'가 시야를 넓히면 '전체 나'가 되고, '전체 나'가 시야를 좁히

면 '개체 나'가 된다. 그렇다면 '개체 나'가 소멸될 땐? '전체 나'로 완전히 돌아간다. 사람들

은 '전체 나'를 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체 나'와 신은 별개의 존재일까? 아니다. 신과 나는

하나이다. 신을 나와는 별개의 존재로 분리시키면 신의 무한한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시야를 넓힐수록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각이 만들어내는 환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만일 내가 과거에 큰 죄를 지었다면? 지금 진심으로 뉘우치면 죄가 완전히 사라질까? 당연한

일이다. 단 조건이 있다. 아무런 주저함이나 의심도 끼어 있지 않은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이

다. '진심'일 때만 텅 빈 공간과 접속되기 때문이다. 텅 빈 공간은 이처럼 시간과 거리를 초월

해 요술을 부리는 빛 알갱이들로 가득하다. 자연히 내가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나'의 공간

이 넓어져 그만큼 더 많은 요술이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인생이 장애물로 가득한 미로처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육안으로만 바라보면

아무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물질인 육안은 시야가 짧다. 반면, 마음의 눈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모든 걸 다 본다. 시야가 무한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모든 방향, 모든 시점에서 다 본다. 정말 출구가 안 보일까? 만일 출구가 없다면 그건 설계가

잘못된 미로이다. 인생의 모든 시련도 마찬가지다. 벗어나지 못할 시련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영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설계해놓은 시련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인생의 가장 귀중한 기회가 최악의 시련을 가장해서 나를 찾아왔은을 깨닫게 된다.

 

*내 육신은 감정과 생각의 공간에 같혀 있다. 감정과 생각이 내 육신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게

진실일까? 시야를 좀더 넓혀보면 영혼이 감정과 생각, 육신을 움직인다. 시야를 완전히 넓혀

보면 텅 빈 공간이 감정과 생각, 육신, 영혼을 움직인다. 내가 생각의 공간에 같혀 있으면 생각

이 육신을 움직인다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야를 완전히 넓혀 전체를 보면 텅 빈 공간이

그 공간 속의 모든 현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각이 내 몸을 돌아가게 한다'고

믿으면 나는 생각과 한 덩어리가 된다 생각의 노예가 된다.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반면, 무한한 텅 빈 공간이 내 몸을 돌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무한한

공간과 하나가 된다. 자연히 내 몸은 무한한 공간 속에 잠시 떠 있는 환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소용돌이도 잠시 스쳐가는 현상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설레는 마음은 '이럴까, 저럴까?', '될까, 말까?' 등과 같은 잡념을 품고 있지 않다. 오로지

문을 활짝 열어놓고 결실을 맞이하길 기다릴 뿐이다.

 

*새로운 생각을 깔려면 낡은 생각부터 놓아주어야 한다. 텅 비워야 한다. (...) 생각만 완전히

텅 비우면 텅 빈 공간이 내 속마음을 읽고 알아서 이뤄준다.

 

*'이젠 완전히 끝났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놓아버리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져 시야도 투명해

진다. 전체가 보인다. 마찬가지 이치로 문제가 이미 완전히 풀린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전체가 훤히 보인다. 미래의 시점을 멀리 잡을수록 더 크고 투명한 눈으로 볼 수 있다.

 

*의지로 무의식에 깔려 있는 부정적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무의식은 의지보다 백만 배나 더

강하다. 그 속에 가둬놓고 짓누른다고 부정적 생각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그보다는 마음의

공간을 넓혀 부정적 생각이 스스로 자유를 찾아 떠나도록 도와주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진심으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근원적인 진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 몸을 포함한 우주만물

은 죄다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잘 치겠다는 생각을 멈추고 공과 몸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몸이 스스로 알아서

공을 쳐준다.

 

*몇 년 전 시골에 내려가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빈 방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왓칭을 시작

했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다니는지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라보고, 

또 떠오르면 바라보고... 생각은 바라보면 사라졌다.

'다음 생각은 어디서 떠오를까?'

텅 빈 공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숲 속의 올빼미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이 떠오르길 지켜

보듯. 얼마나 지났을까?

'어?'

갑자기 양손과 팔이 마치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너무나도

황홀한 무한한 공간이 활짝 펼쳐졌다. 아름다운 투명한 빛이 가득한 바다였다. 너무나도 순수

하고 명징한 의식만 남았다.

'아, 드디어 고향을 찾았구나.'

공허하던 마음이 난행처음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내가 그토록 하늘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과거 마음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릿속은 들여다보는 순간 텅 빈

공간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하!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 떠오른다'고 말하는구나!'

마음의 공간에 울타리가 있을까? 다음 생각은 어디서 떠오를까?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가만히

살펴보면 아무 울타리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각이 사라지면 그냥 무한한 공간이다.

육안으로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들여다보는

순간 저절로 공간 속을 들여다보게 되고, 생각도 역시 저절로 사라진다. 생각은 들여다보면

꺼지는 거품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왓칭하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졸음도 쏟아지고 잡념까지 끼어들기 때문이다. 왓칭과 졸음, 잡념이 서로 숨바꼭질을

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마음의 공간은 점점 더 커지고 맑아진다. 그러면서 쉬워진다.

 

*모든 생각은 에너지의 물결이다. 장기간 흘려보내지 않은 채 품고 있으면 마음속에 틀어 박힌

다. 정체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깊이 틀어박힌다. 나중엔 넓은 공간에 나가는 게 두려둬진다.

약을 먹어도 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를 생각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머릿속에 든 생각을 어떻게 분리시키지?'

분리시키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마음의 눈으로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들여다보는 순간 생각과 '나' 사이엔 거리가 생긴다. 거리가 생기면서 생각과 '나'는 저절로

분리된다.

 

*어두운 생각은 들여다보지 않으면 틀어박힌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사라진다. 들여다보면

꺼지는 허상의 거품이기 때문이다.

 

*텅 빈 공간은 모든 말을 알아듣는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면 상대의 내면도 알아차린

다. 단 어떤 주저함도 섞이지 않은 진심이어야 한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마음이 완전히 열리

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에게 잘못을 저질렀든 안 저질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만일 상

대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상대의 시각에선 그게 옳다. 따라서 무조건 용서를 비는 게 해결책이

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화가 내 몸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화는 내 몸속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독이 된다.

하지만 '나'는 몸에 갇힌 존재인가?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무한히 퍼져나가는 존재

이다. 그래서 화가 몸 밖으로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면 실제로 퍼져나간다.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시간도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

생각이 먼저 사라져도 텅 빈 공간이 되지만, 텅 빈 공간을 먼저 상상해도 생각이 사라진다.

 

*눈 뜨고 왓칭하려면?

1. 시야를 최대한 넓혀 넓은 공간 전체를 바라본다. 육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힘도 완전히 뺀

다.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고 상상한다.

2. 시야를 넓히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져 갇혀 있던 생각들이 풀려나간다.

3. 텅 빈 공간에 또 어떤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지 지켜본다. 지켜보고 있으면 안 떠오른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은 어디 있을까? 안구 바로 뒤의 두개골 깊숙한 곳에 송과선이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데카르트가 '영혼의 자리'(seat of the soul)라 불렀

던 곳이다. 육신의 세계와 영적 세계를 이어주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왓칭할 때 '난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 혹은 '마음의 눈에서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간다.'라고 상상하면 왓칭이 편안해진다.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를 알면 신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닦아

시야가 무한해지면 무한한 신과 하나가 된다.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모든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설계된 수업이다. 지구는 거대한 학습

장이다. 이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는 무한히 넓어진다. 모든 걸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구는 육신의 옷을 걸친 무수한 영혼들이 연기를 펼치는 연극무대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연기

자들이다. 연극의 이야기도 각자의 영적 성장을 위해 짜인 각본대로 전개된다. 때로는 각본에

정해진 나의 매역이 너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배역을 맡은 연기자는 연기자일 뿐이

다. '진정한 나'는 연극 전체를 멀리서 지켜보는 무한한 마음이다. 시야를 넓혀 멀리서 큰 눈으

로 내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개체 나'들이 한 무대 위헤서 다 함께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내가 중간에 배역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연극을 무

사히 마치도록 해준다.

견디지 못할 시련은 존재할 수 없다. 왜야하면 나 스스로 써놓은 각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겪는 가장 힘겨운 시련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선무이 될 수 있다.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생각은 '나'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럼 생각은 '나'와 분리돼  스스로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지면 무한한 공간이 열린다. 무한한 사랑과 평화가 흐르는 공간이다

그곳이 나의 진청한 안식처이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지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마음속을 들여다보라는 신호이다. 들여다

보면 고통을 일으키는 온갖 생각이 사라진다. 슬픔은 스쳐가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신호이

다. 들여다보면 슬픔을 일으키는 생각도사라진다.

내 힘으로안 될 땐 너무 애쓰지 마라. 내 팔다리의 힘도, 내 몸뚱이의 열정도, 내 두뇌의 생각도,

나를 휘감는 온갖 감정도 사실은 바깥세상에 속한 것이다. 바깥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건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 바깥세상은 착가의 세계이다. 그 속에서의 몸부림을 멈추고, 대신 마음 속

을 들여다 보라. 들여다보면 무한한 공긴이 열린다. 시야가 무한해진다. 내가 그토록 매달리던

것도, 붙들고자 했던 것도, 얻으려 애쓰던 것도, 죄다 스쳐가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한한 공간 속에 사랑으로 가득한 무한한 존재가 들어 있다. 그 존재와 분리될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그 존재와 하나가 될수록 나는 점점 커진다. 그 존재 앞에 나의 모든 아픔과 두려움

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맘껏 눈물을 뿌려라. 나에 대한 모든 비판과 심판을 내려놓아라.

나를 완전히 열어놓고,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무한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안식을 얻게 된다. 참다운 안식 속에서 모든 새로움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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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Watching - 신이 부리는 요술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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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던  코엘료의 <연금술사>,

소원은 100%의 확신으로 믿고 행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던 <Secret>, 

티벳의 라마승이었던 <롭상람파의 가르침>,

나를 죽이고 우주를 보라던 <마음수련>,

그리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의 <금강경>.

<금강경>을 날마다 읽기를 두 달이지만, 그에 대한 해설서 보기를 몇 권이지만 여전히 

감도 잡지 못한다. 슬픔과 기쁨이 하나라니, 법을 설한 적이 없다니, 보는 모든 것이 다 

상(相)인데 상이 없다니, 그것이 공(空)이라니, 그 공까지도 이름일 뿐이라니... 

나의 정신은, 마음은 너무나 꽉 막혀있기만 해서 끝내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금강경>과 같은 말을 한다. <연금술사>와 <Secret>처럼 말한다. 

나의 간절함은 우주가 알고 도우는구나. 의심없는 믿음은 소원을 이루게 하는구나. 

 

정말이지 모든 것은 허상이고 상(相)이 상이 아님을 보게 되면 여래를 보는구나. 

 

깨달음은 분명 있는 것이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나도 할 수 있기를 저자가 간절히 바라는

 

구나. 아, 정말 그런거구나!

이젠 모른다해서, 믿지 않는다해서 틀린게 아니란 걸 잘 알겠다. 예를 들면, 만약 사후생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후생이 있다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지능, 몸, 물질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이유는 

 

미립자때문이며, 그 미립자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기때문이다. 마음 속의 수다를 잠재우고, 

 

고요한 마음으로, 의지보다 강한 이미지를 이용하면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아미그달라, 부정적 감정은 5세 유아 수준이며, 겨우 90초의 수명이니 거울처럼 비춰주면 

 

저절로 꺼진다는 것, 과정을 바라볼 때 잘게 쪼개면 가벼워진다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나는 마음 속의 수다가 많은 사람이다. 흔히들 생각이 많다라든가, 번뇌망상이 많다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고요 속에 자신을 두고 싶지만 나에게 맞는 방법이 찾아지지 않더라. 

 

여기서는 생각 덩어리를 상상 속의 스크린이나 백지에 투사시켜 가만히 바라보라 한다. 

 

신기하게도 스크린이 상상 속에 나타나더니 나의 잡념이 모두 그 스크린으로 떼어져 나가고 

 

나니,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는 그야말로 고요더라. 아무것도 없더라. 원래가 그런 모습인데 

 

수많은 생각들로 내가 덮여 있는 거였구나. 그래서 우리 몸은 육신을 덮어 쓴 여래라 했구나!!

이처럼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 두어 고마웠다. 마침 그러한 것들이 

 

나와 딱 계합되는 게 있어 더욱 고마웠다. 관건은 연습이다. 꾸준한 연습만이 일취월장하게 

 

하리라.

선행은 몇 곱절로 돌아오며, 베품은 건강으로 되돌아 온다는 제 3부에서 이 책의 완벽함을 본다.

역시 <금강경>, <롭상람파의 가르침>등과 상통한다. 선하고 진실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올바른 깨달음이란 없는 것일지도!

시기적절하게 이 책이 내게 와 주어서 감사하다. 

이 책을 권해 준 미애에게 깊은 감사를! 
마침 대출해서 가지고 있었던 함에게 깊은 감사를!

 

 

 

 

 

 

*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몇 가지는 있다.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

 

*기도가 반복될수록 그 효과는 점점 더 강해진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덩어리들을 상상 속의 스크린이나 백지에 투사시켜 가만히 바라

보는 것이다. 바라보면 바라보는 의도를 읽어내고 저절로 물러간다. 하지만 곧 또다른 생각

이 피어오른다. 그럼 또 바라본다. 또 사라진다. 이렇게 몇 번 되풀이하다가 이번엔 이런 질문

을 속으로 되뇌어보라.

"다음 생각은 어디서 나올까?"

고요한 마음으로 다음 생각이 피어오르는 걸 기다려보라.

1초, 2초, 3초...

이렇게 몇 초가 흘러가도 아무 생각도 피어오르지 않는다. 텅 빈 공간만 보일 뿐이다. 신기한 일

아닌가? 억누르려 들면 기승을 부리며 더욱 피어오르던 생각이 어서 나오길 기다리며 지켜보면

청개구리처럼 오히려 냉큼 나오지 않는다. 이게 생각의 속성이다.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기 전 그의 웃는 얼굴을 그려본다. '좋다, 싫다, 될 거다, 안될 거다'등의

어떤 가치판단도 없이 상대의 웃는 얼굴을 짧은 순간 몇 차례 떠올린다. 길게 떠올리면 내 의지

나 의심이 스며든다. 그런 다음 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다.

 

*나를 남이라고 상상하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이미지가 더 선명해진다.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작게 쪼개서 생각하면 쉬워진다.

 

*'난 머리 나쁜 사람'이라는 편견을 상기하는 것 자체만으로 성적이 크게 떨어진다.

 

*우주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가능성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심신의 온갖 질병도 즉

각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지능은 내 머릿속에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요,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두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바라볼 때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난 그런거 안 믿

어.'하고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관찰자 효과에 따라 지능도 닫혀버린다.

 

*머릿속 5세 유아(아미그달라)는 생존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빨간불을 켠다.

빨간불이 켜지면 머릿속에서는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생존을 위해 상상가능한

온갖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병이 된다. 하지만 위험이 사라졌

다고 판단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쉽게 꺼진다. 그러나 위험 해제 신호가 이처럼 명백하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럴 땐 5세 유아를 달래줘야 한다. 달래주는 최선의 방법은 바라보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내 생존을 위해 생겨나는 것인 만큼, 그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두뇌야, 고마워. 내 생존을 위해 이런 소용돌이 감정을 만들어 내다니, 어차피 몇 분 만에 사라

지겠지? 나에게 오늘은 어떤 깨달음을 주려고 이런 감정을 선사하는 거니?"

 

*부정적 감정의 자연적 수명은 90초이다.

 

*놀이터에 놀러가도 돼?

 안 돼. 아직 숙제도 안 했잖아.

 

놀이터에 놀러가도 돼?

그럼, 숙제하고 가면 되지. 

 

엄마, 나 친구 집에 놀러가도 돼?

안 돼, 5분쯤 있다가 점심 먹어야 해.

 

엄마, 나 친구 집에 놀러가도 돼?

그럼, 물론이지. 5분 뒤 점심 먹고 실컷 놀아라.

 

*할 수 없는 건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걸 찾는 데서 기쁨을 얻도록 유도했다.

 

*행복은 환경, 운, 머리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한다.

 

*톨스토이가 죽은 뒤 그의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방 안에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실패작들을

보고 놀랐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세익스피어도 평생 154편의 시를 썼는데 성공한 몇 편만

빼고는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또 다윈은 <진화론> 말고 평생 119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프로

이트는 평생 무려 650편이나 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음악 신동의 대명사인 모차르트도 평생

무려 600편이나 되는 곡들을 발표했지만, 대부분이 작품성이 형편없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이렇게 심혈을 쏟아 만들어낸 작품들의 99% 이상이 졸작으로

사장되고, 겨우 나머지 1% 정도만이 인정받아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둠 속에 숨겨진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춰놓고 몰입했다. 그러다

보면 밝은 면이 점점 커져서 어두운 면을 완전히 덮어버리게 된다.

 

*장점만 바라보면 장점이 점점 더 커진다.

 

*진실에 초점을 맞추면 독설은 들리지 않는다.

 

*영혼은 두뇌의 밖에 있다. 관찰자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넓게 바라볼수록 지능이

높아지는 것도, 지능이 우주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모두 완벽한 지능을 가진 영혼이 두뇌 밖의

우주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육신 속의 당신은 육안이 볼 수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에 퍼져 있는 당신, 즉

당신의 영혼은 모든 걸 다 볼 수 있다. 당신의 육신을 10000미터 상곡에서도, 우주 저 끝에서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상상을 깊이 하면 할수록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런 명상을 깊이

하면 할수록 당신은 영혼의 존재를 그만큼 깊이 깨닫게 된다. (...) 무한한 상상력도 우주에

퍼진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혼이 그리는 이미지가 점점 선명해지면 당신

은 실제로 볼 수 있다. 그걸 보지 못하는 건 뿌리 깊은 의심과 잡념때문이다.

 

*선행은 몇 곱절로 되돌아온다.

 

*베품은 건강으로 되돌아온다.

 

*나를 텅 비우면 오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많은 연습을 통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마음대로 장시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에겐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별의별 오묘한 일들이 꼬리를 물로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그 텅 빈 공간, 즉 영점공간에는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능력의 크기는 단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결정짓는다. 내 모든 능력은 내 육신 속에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나는 우주만큼 무한한 존재'라고

바라보면 능력도무한하게 쏟아져 나온다. 단순한 시각의 차이로 인생이 갈린다.

 

*영혼에 눈뜨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남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나를

남처럼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텅 빈 무한한 공간, 우주에 퍼진 영혼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는 순간 영혼은 저절로 눈뜨기 시작한다. 영혼을 거대한 우주 거울

로 삼아 나를 남처럼 비춰가며 살면 영혼이 지닌 양심, 사랑, 평화, 연민, 지능,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우리는 깨어 있는 인생의 90~95%를 아무 쓸모도 없는 부정적인 생각에 허비하는 것이다. 자신

의 마음을 거울처럼 바라보지 못하고 그 속에 파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소모적이고 불행

한 일인가?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은 내 안에 들어 있다. 내 마음속의 관찰자가 바로 그 거울이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관찰자는 변함없이 따뜻한 어머니처럼 언제나 미소 지으며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

준다. 유혹에 흔들리고 있을 때 바라보면 그 유혹이 떨어져 나간다. 끙끙 앓던 문제도 실마리가

풀린다. 무엇보다도 우주만큼 넓고 깊게 바라보게 해준다. 나만의 이득에 집착하기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삶도 그만큼 넓고 깊고 풍성해진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짊어지는 모든 고통과 고민은 바라봄으로써 해결된다. 단지 이 왓칭 요술은

바라보는 만큼만 일어난다. 깊이 바라보면 깊이 일어나고, 얕게 바라보면 얕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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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영계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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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어떤 재앙이 닥칠 때 우리들은 그 재앙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그 재앙이 우리들의
감각에 미치는 결과를 변화시킴으로써 그 재앙을 벗어날 수 있다. 재앙의 이익은 아마도 나중에야 비
로소 명백하게 될 것이라고 재앙을 선으로 해석함으로써 재앙을 벗어날 수 있다.

*시인들 또한 인간적인 삶을 가볍게 하려고 하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비참한 현재로터 눈을 돌리거나
아니면 그들이 과거로부터 빛나게 만드는 빛을 통해서 현재가 새로운 색깔을 띠도록 돕는다.

*만일 부부가 함께 살지 않는다면, 훌륭한 결혼이 더 많을 것이다.

*가장 고귀한 위선자-전혀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매우 고귀한 위선이다.

*불쾌감은 나중에 불쾌감의 원인이 이미 제거되었다고 해서 결코 치유되지 않는 신체적 질병이다.

*아름다운 것은 서로 침묵하는 것,
더 아름다운 것은 서로 웃는 것,

*가장 나쁜 독자들은 약탈하는 병사들처럼 행동하는 독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는 끌어내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헝클어버리며 전체를 비방한다.

*훌륭한 저술가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경탄하는 것보다는 이해되는 것을 더
좋아하며 예리하고 지나치게 날카로운 독자들을 위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 천재들이 동시대인일 경우 천재는 천재들에 대해서 가장 불공정하다. 한편으로 천재는 천재들이
필요하다고 믿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그들은 쓸모없다고 여긴다. 왜냐면 천재는 다른 천
재들 없이도 천재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천재들의 영향은 그의 전류 작용을 가로 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는 다른 천재들을 해롭다고 말한다.

* 침묵-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에 관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 만일 말한다면 사람들은 우정의 감정
을 잘못 말한다.

* 식인종의 나라로부터-고독한 자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다 먹어치우며,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많
은 사람들이 그를 먹어치운다. 자, 선택하라.

* 무엇으로 지혜를 측정하는가-지혜의 증가는 쓴 분노의 감소에 따라서 정확히 측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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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 심상사성, 성공학으로 읽는 금강경
우승택 지음 / 장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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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떻게든 한심한 과거를 타파하고 싶었습니다. 

참회하고 싶었고 그래서 <금강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금강경>은 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을 위해 한 것이 단 한가지도 없었던 것입니다. 

 

다 나 좋자고 남을 위했던 것이지, 

<금강경>의 말씀대로 남을 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금강경>에 매달리는 이유도 위의 저자의 말과 매 한가지다. 읽을수록 동안 내재

해 오던 내 삶의 물음에 대한 답들이 이 경(經) 속에 분명 있는 것 같다. 

<금강경>은 또한 숱한 자기계발서들의 귀결이자 그 이상으로 보인다(이런 언급조차 너무나

외람되지만). 

'성공학으로 읽는 금강경', '심상사성(心想事成)-마음 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라는 글이 

표지에 있다. 스님이나 불교 전문분야의 사람이 아니라 금융업 종사자인 일반인의 시각으로 쓴

책이여서인가, '붓다의 치명적 농담'보다도 훨 쉽고 명쾌해서 무척 열심히, 메모하면서 읽었다.

 

무엇보다 용어 설명이 잘 되어 있고, 자신의 일과 연관지어 이해를 돕는 부분도 무척 명쾌하며

 

금강경의 각 분(分)에 대한 해설도 쉽고 분명해, 내 보기엔 초발심자가 읽기에 안성맞춤 아닌가

 

싶다.

영어기초에 대해 스님이 설명하시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어 나도 그 스님께 꼭 과외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더라.ㅎㅎ






*인도 사람들은 오른손은 신성한 손이고, 왼손은 부정한 손이라고 믿는데, 양손을 합치면 인
간 내면의 신성하고 부정한 양면이 합쳐져서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믿는다. 따라서 합장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서 보여주는 것으로, 상대
방에 대한 호의와 공경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부모가 자식한테 잘하는 것은 부모에게 하나의 공덕도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엄청난 선행이라고 합나다. 그 이유는 내리사랑을 올리사랑(치사랑)으로
바꾸는 것이라서,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금강경> 혹은 사구게 한 구절이라도 잘 따라서 생활하면 되지 꼭 절이나 포교

당에 가야 부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있는 그 자리, 사는 그 자리에서 

잘하면 부처가 돕고 하늘도 돕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법률적으로 사망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심장의 사망과 뇌의 사망입니다. 뇌가 죽어도 사람은 삽니다. 그러나 심장이 

죽으면 모든 것이 죽습니다. 그래서 장기이식은 뇌 사망을 기점으로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됩니

다. 그러한 사실은 마음이나 생각이 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뇌는 단

지 유통경로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 경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주되 받지는 않는 종교입니다. 단 주고 난 그 자리에 무엇인가 자동으로 채워집

니다. 그러기에 주는 것에는 아무런 상이 없어야 하며, 그래야 들어오는 것도 걸림없이 들어오

게 됩니다.

*'무소유'는 집착이 없는 상태입니다. 집착은 들러 붙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집착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맡고 있는 것일 뿐, 소유하겠다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재물을 나누어 주는 재시(財施),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가 그것이다. 보시에는 조건이 있는데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주고받는 물건의 셋이 모두 깨끗해야 한다.

*대통령이 부럽다거나 밉다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씨앗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부럽

거나 밉다면 당신은 부자가 될 씨앗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부럽다면 당신

은 공부 잘 할 수 있는 씨앗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부럽다면 당신은 국회의원이

될 씨앗을 갖고 태어난 것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이루어집니다. (...) 여러분들 마음의 씨앗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부러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싸우는 대상이나, 그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마음 속에서 출렁이는 것! 그것이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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