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요전 - 대행스님 행장기 법어집, 6판
대행큰스님 지음 / 한마음선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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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요전-대행스님> 이라고 쓰고 보니 앞의 독후감에서 <깨달음-법륜>이라 한 것과

비교 되어진다. <법륜>이란 이름 그 자체만으로, 스님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어색하

지 않은 것은 그 이름만으로 당당하면서 큰 고유명사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 싶다. <법정>

처럼.

법륜스님도 정토회를 운영하고 있고, 대행스님도 한마음 선원을 운영한 분이신데, 법륜스님

을 법륜큰스님이라 하지 않고, 대행스님은 대행큰스님이라 한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이름

으로 불려지게 하는 것일까? 법륜스님은 스님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고, 대행큰스님은

신도들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저 내 추측컨데... 아니면 입적하신 덕망있는 분들

에게는 "큰스님"이란 호칭을 쓰는가...??

<왓칭>을 보지 않았다면 첫머리에 나오는 대행스님의 일대기부터 믿을 수 없다 터부시하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또한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왓칭>은 내 사고의 터닝포

인트같은 책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요전에서는 "주인공"이라 말하고 오직 모든 것을 그

주인공에 놓고 믿어라 한다. 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니

오직 주인공 자리에 놓고 믿으면 나의 불성을 볼 수 있다 한다.

부처님, 부처님 하며 기복신앙으로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불성을 믿으라는 것이 나와 훨씬

계합되는 이치인 듯 하다. 

금불상도 허상이니 그것도 믿을 것 없고 굳이 절에 금불상을 둘 필요도 없다 한다. 내 마음

내는 그곳이 절이니 꺼둘리지 말라 하는데, 중생은 내내 꺼둘리는 존재라 방편으로 금불상도 

있어야 하고, 보시함도 있어야 하고, 신행회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한마음으로서 일배(一拜)를 지극하게 했다면 그것은 삼만배가 넘을 수도 있다하니, 굳이 이 

 

바쁜시대에 백팔배니, 삼천배니를 어떻게 따르겠는가 하는 말은 일면 수긍도 가긴 한데, 

 

그렇다면 그 일배에 담아야 하는 정성이 얼마여야하겠는가를 헤아려볼라치니 부담백배이기도 

 

하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에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죽음이라 말하는데, 여기서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조차 놓아 버렸을 때가 무여열반이라 말한다. 같은 말인가?? 

 

어렵다...

이 요전처럼 실천행을 하고 있는 선원이 있다면 그 곳에서 신심을 한껏 내고 싶다. 

자기계발서 <Secret>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으며,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또한 이 요전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다.






*"어머님이나 나나  주인공이 형성시켰고 그 마음이나 내 마음이 한마음인데 내 마음이 이러하다
면 어머님의 병환인들 낫지 않을 리 없다."고 굳게 믿어 일임하고 놓는다면 그것이 곧 마음 낸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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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내 눈 뜨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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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와 <기도>를 적당히 합한 책인 듯 한데
이 책이 <지금 여기 깨어있기>보다 먼저 출판되었네.

만이천원이나 주고 사서 읽기에는 이 책의 여백이 너무 많고, 
<지금 여기 깨어있기>와 중복이 많으니 
차라리 훨씬 알찬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권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지 않듯이 다른 사람 생각도 무조건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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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내려놓기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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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작고 얇아서 이쁘다.
혼자 집에서 수행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한 시간용 참회수행방법이 나와있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외의 사람들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기 보다는 스님의 다른 책,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권한다.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제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부처님, 세상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이제 그만 안온하게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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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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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 온 몇 권의 금강경 해설책 중 가장 전문적이어서 미리 몇 권을 읽어

보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책 서문에 법정 스님 언급하신 대로 "끝까지 읽으려면

적잖은 인내력을 발휘해야"했을지도, 아니면 아예 가장 나중으로 밀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갖은 고서들을 두루 참고해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열의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사람 눈에는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도올의 불같은 열의에 경탄할 뿐이다. 

설명함에 있어 가장 적절한 예시를 든다든지, 비교화 시켜주면 이해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아는 바, 성경과 아울러 같이 비교 설명해 주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특히 색신과 법신에 대한 불교와 기독교와의 비교설명은 여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교설명이어서 더없이 흥미로웠다.

<금강경>을 접한지 이제 고작 세 달이라, 채 백 번도 안 읽어보긴 했지만, 반복되는 문구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말들로 인해 아리송하기만 할 뿐 다른 느낌을 받을 새는 없었는데

도올은 아름답다는 표현도 하더라.  아, 이 충격! 나는 무엇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날로 비대해져 왕국화 되어 간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종교 건물들에 대한 그의 질타

에는 속이 다 후련해지더라!

다소 강력한 표현들이나, 한자의 독음없이 그냥 한자만 적어 둔 부분은 아쉬웠으나,

염려마시라! 다른 부분들이 이 정도의 아쉬움은 충분히 덮어준다.

도올의 한글 금강경을 노트에 사경하며 이 책을 기쁘게 마무리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종교가 제각기 인류를 구원한다고 선포하면서, 종교야말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평화로운
해결이라고 선전하면서, 종교야말로 인류를 억압하고 대규모의 잔악한 실상을 자행하는
명분이 되었으며,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무지하게 만드는 모든 끔찍한 죄악의 온상이
되었으며, 질투와 배타와 저주의 원천이 되어왔다는 이 인류사의 파라독스야말로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무명의 소치인 것이다.

*종교란 본시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종교에 대해 일원적인 논의
를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훌륭한 종교의 교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제
각기 다른 종교의 형태를 발견해주는 것입니다. 마치 옷이 사람마다 그 취향과 색감과 크기가
모두 다르듯이...

*돈이란 돈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에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돈을 번다. 돈을 벌어서 또 돈을 버는데만 열중한다. 그들의 돈을 버는 노력이 아무리
진실한 것이다 하더래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창출
하지 못한다. 돈의 허상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돈의 확대재생산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과장에서 생기는 돈을 기원(기수급고독원)에 까는 가치로 환원시키는 자세가 바로 그 사회의
돈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깊게 깨닫고 있지를 못하다.

*기독교의 문제점은 법신(法身)예수를 모르고 색신(色身)예수에게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문제점은 색신 붓다를 너무 무시해버리고 법신붓다만을 진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두 종교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색신과 법신에 대한 명료한 구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색신의 신화화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모든 위대한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그 인간이 설하는 법에 있어야 한다는 만고불변
의 철학를 논구하고자 함이다. 나 색신을 괴롭히지 말라! 길거리에 걸어가는 나 도올을 놓고 
쑥떡꿍 쏙딱꿍거리지 말라! 나는 매일 울고 웃는 초라한 인간이니까. 붓다도 예수도 그러했
을 것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려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 뜻을 잡으면 말은 버랴야 한다
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나는 언제 그런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번뇌가 곧 보리다!

*내가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면(그 말씀을 내 방과 내 마음에 모시면) 곧 내 방이 
부처님의 사리탑이 되고 법당이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내 책상에 꽂아두면 바로 그
책상이 베드로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이 살아계신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참신하고 과격하고 진실한 사상인가? 동포들이여! 앞으로 오는 세기에는 이제 불필요한 
건물들 좀 그만 짓자! 건축업자들을 달리 먹여 살릴 방도를 좀 생각해보자! 필요한 교회
와 법당은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교회와 법당이 사라져간다면 예수님과 부처
님의 도적같고 벼락같은 지혜의 말씀을 내 마음에 안치함이 없이 공허한 건물만을 짓는
다면 그깟놈의 연보돈내 뭔짓하고 있단 말인가!

*제 14분(分)이야말로 여태까지의 우리의 논의를 전체적으로 반추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분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재미있는 점은 그 묘사가 매우 감성적이
라는 것이다.

*단지 내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담을 수 있고 남의 말들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주어담을 수 있을 뿐이다.

*야곱이 돌배개를 쌓은 곳이 어디 시멘트 건물속이었던가? 예수가 사탄의 시험을
받은 고난의 간증처가 바로 훠훠 벌판 광야가 아니었던가? 세례 요한이 대승의 구원을
외친 곳이 그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요단강이 아니었던가? 사막의 이사야 선지자는 
그 미세한 주님의 음성을 어디서 들었는가? 드높은 고딕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울림통
에서라도 들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교회로만 가는가? 어찌하여 허리띠 졸라매어 연보돈만 
내는 것이 신앙이라 생각하는가? 조선의 순결한 심령들이여! 그대들의 푸른 화단에 그대들의 
성경 한 구절을 심으라! 그 곳이 곧 드높은 교회당 보다 더 드높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회당이 되리니.

*지혜는 지식의 단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성의 교만이나 오만을 
불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강경>의 지혜로 영원히 입문힐 수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불행
하게도!

*우리는 현실적으로 재물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념적으로 재물보다 더 귀한 깨달
음의 지혜를 사회적 가치의 우위로 두지 않는 사회는 곧 부패하고 패망한다. 이것은 역사의
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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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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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서 책을 주로 빌려 읽다 보면, 빌려 읽기 잘했다 싶은 책이 있는 반면, 어떤 책은 정말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다. 책 표지가 빨간 색 천으로 된 이 이쁜 책은 정말 사고 

싶은 책이다. 상(相)을 내지 말라 그리 이르건만 과연 법륜 스님이다 싶은 상을 도저히 내지 

 

않을 수가 없다.ㅎㅎ 

<지금 여기 깨어있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오히려 좋더라. 예전에  <지금 여기 깨어있기>

를 읽을 땐 연거푸 3번을 내리 읽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이해가 

쉬운 것은 <금강경>과 함께여서인가 싶다. 내 공부가 조금 더 깊어졌나? 설마..ㅎㅎ

학창시절 선생님들도 지루하거나, 무섭기만 하거나, 성의 없거나, 열정만 있거나 등등 다양한

분들 속에서 꼭 잘 가르치는 확실한 선생님들이 간혹 있었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해설을 보니 

그 시절 확실했던 잘 가르치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런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며, 평생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올해 5월 말 경에 <금강경>을 처음 읽었는데, 제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부터 딱 걸리더라.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고 빛나는, 그리 훌륭한 경(經)의 시작이 고작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탁발하는 모습이며, 발을 씻고 자리에 앉는 모습만이라니, 이것이 제 1분(分)이라니, 참 어이

 

가 없었다. 그 유명한 경의 시작이 고작 배경 설명 뿐이란 말인가? 아닐텐데... 내가 모르는 

 

것이 뭘까 싶어서 금강경 해설서를 찾아 읽다 보니 법륜 스님의 금강경까지 오게 되었고, 이 

 

책을 만난 것이 무척 감사하다. 

 

제 1분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에 최고의 도(道)가 있으며, 1분에서 이 의미를 깨달으면 나머지

 

뒷 부분은 보충 설명에 불과하다는 해설을 그간의 몇 권의 해설서를 보고 나니 이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계(五戒)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대부분의 책들은 불살생(不殺生) 등등으로 표현하지만 법륜

 

스님은 "첫째, 생명을 가진 존재는 그 누구라도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원하므로 함부로 살생

 

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이유에 대한 언급까지 같이 엮어 두어서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상(相)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설명에 대해서는 이 책보다 더 잘할 수는 없지 싶다. 

꼭 필요한 용어설명이나, 예시로 든 이야기들, 경의 풀이가 지루할 사이가 없으며 과연 다음

 

분(分)의 해설은 어떻게 해 두셨나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더라.

 
다음엔 도올의 <금강경 강해>를 읽을 참인데 과연 이보다 더 재밌을까 너무 궁금하다.

이 책의 제목이 <금강경 강의>이니, 내가 이 강의를 수강한 학생이라면 A+는 따 놓은

당상이다. 실천적인 면에서야 과락일지 모르겠으나 지식적인 면에서는 아주 쉽고 재미있으면

 

서도 훌륭한 강의여서 제차 공부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명상법 가운데 시계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시간을 잊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명상법은 나를 둘러싼 온갖 틀과 관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

습니다.

 

*아상(我相)은 남과 구분된 나라는 존재를 고집하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한 것을 말합

니다. 그러므로 친구는 말할 것 없고 부부나 부모 자식조차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상으로부터 다시 두 가지 망상이 일어납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我所)과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我執)입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은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 이렇게 자아에 대한 개념을 아상이라 한다면 영혼에 대한 개념

을 인상, 존재에 대한 개념을 중생상, 생명에 대한 개념을 수자상이라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는 상의 범위를 구분 짓는 경계에 따라서 나와 너를 구별하는 아상,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는

인상, 생명과 무생명을 구별하는 중생상, 존재와 비존재를 구별하는 수자상으로 분류하기도 합

니다.

 

*상대에게 베푸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마음,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없이 행하는

보시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며 번뇌를 소멸하는 길입니다. (...) 상을 버린 보시는 베풂을 받는

상대가 아니라 베풂을 행하는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물합니다. 내 기쁨을 위해 베풀고 있음을

자각하고, 내 베풂을 받아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보시해야 합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그들이 보기에 내 모습이 불쌍해야 합니다. 그러니 도움 받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사람은 자기 존재를 불쌍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내는 것이 행복

으로 가는 길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해

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도움 받으려 하지 말고 도움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보살핌 받으려 하지 말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악을 멀리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첫째, 생명을 가진 존재는 그 누구라도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원하므로 함부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누구나 자기 물건

을 잃어버리면 괴로워하므로 상대가 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누구나 원

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강요 받으며 괴로워하므로 삿된 음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누구

나 남에게 속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맑은 정신으로 살아

가려면 술이나 마약 같은 중독성 물질에 중독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계(五戒)입니다.

 

*그런데 무주상보시의 공덕이 엄청나다는 말을 듣고는 보시를 하면서 한사코 이름을 밝히지 않

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름을 내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게

좋은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무주상보시의 참뜻은 이름을 내고 안 내고에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큰길가에 이름을 내걸었다 해도 돌아올 복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 않으면 그것

이 오히려 무주상보시입니다. (...) 복이라 할 게 없음을 아는 것이 복 중에 가장 큰 복입니다.

 

*열 번 해서 안 되고 스무 번 해서 안 되고 백 번 해서 안 되다가도 어느 순간 불현듯 될 때가

있습니다. (...) 한 번 깨닫기만 하면 그 순간 모든 게 완벽한 경지에 이르게 될 거라는 생각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깨달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한 번이라도 깨달음

의 맛을 본 사람은 그 힘이 다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깨달음의 맛을 보고 나면 '확실히 이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면 더 이상 아무 참을 것이 없는 행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욕

바라밀입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행이 보시바라밀이며, 하고 싶고 하기 싫다는 모든 욕망을 끊어버림

으로써 계율을 지킨다는 생각 없이 계율을 지키는 것이 지계바라밀이고, 노력한다고 할 것이

없는 행이 정진바라밀입니다. 고요하려는 생각이 없는 행이 선정바라밀이며, 깨달음을 얻겠다

는 생각이 없는 행이 지혜바라밀입니다. 인욕바라밀이 여래가 인욕바라밀을 말함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라고 한다는 가르침이 그런 이치입니다. 모든 상을 떠남으로써 더 이상

참을 것이 없는 행이 참다운 인욕바라밀입니다.

 

*무슨 일로든 화가 잔뜩 났을 때의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 마음은 '내가 옳다' '상대가 잘

못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또 비록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그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또 남을 탓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자책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화내는 것 역시 '나는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아상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내가 옳다는 상을 내려놓으면 상대의 생각과 입장이 눈에 들어오고, 상대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

하면 그것이 바로 상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나에게는 내 입장이 있듯이 상대에게는 상대의 입

장이 있다는 그 사실만이 유일한 객관입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해 설한다는 것은 금강경의 참뜻을 마음에 새겨 일체의 상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그를 위하는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그를 해치는 일인 것 같지만 미워하는 마음으로 괴로운 사람은 나 자신이고

결국 나에게 더 큰 해악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게 부처님의 가피인 줄 압니다. 하지만 나쁜 일

이라는 것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피인 줄 아는 이 경지에 이르면 일체가 다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이 열립니다.

 

*"내가 네 덕에 요새 기도를 해서 마음이 편하고 절도 해서 운동도 잘하고 있구나. 얘야, 고맙다."

 

*그런데 사실 중생의 사량 분별로는 복과 재앙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구

하는 복이라는 것이 실은 재앙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쥐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말입

니다.

 

*작은 우물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온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 살던

개구리가 그 우물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물에 살던 개구리가 물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살다 왔다고? 그 바다라는 게 얼마만 해?"

"굉장히 커."

"굉장히? 저기 있는 돌덩이만 해?"

"어림도 없지. 훨씬 더 커."

"그럼 이 우물 반쯤?"

"아니, 도저히 비교가 안 돼."

"아니 그럼, 이 우물만 하다는 거야?"

"에이, 이 우물은 어림도 없지."

"야, 거짓말 마! 세상에 이 우물보다 큰 게 어디 있어?"

우물 속에서 평생을 산 개구리는 바다에서 온 개구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겠지요.

사실을 알면 마음이 곧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건 이런 정도의 비유를 말합니다. 

 

그럼 여우처럼 의심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하루는 여우가 숲 속을 지나가는데 고깃덩어리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 수고

없이 공짜로 고기를 먹게 된 여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먹이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꾀가 많은 여우는 문득 불안해졌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이런 고깃덩어리가 왜 여기에 떨어져 있는 걸까? 사람들이 독을

넣어서 미끼로 떨어뜨려 놓은 게 분명해!"

여우는 집었던 고깃덩어리를 내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산모퉁이

를 돌아갈 때쯤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독을 넣은 미끼라면 그렇게 아무렇게나 던져 놨겠어? 그릇이나 나뭇잎에 잘 싸서 올려두었겠지.

땅에 떨어져 흙이 묻었다는 건 우연히 떨어졌다는 증거야. 다른 동물들은 독이 들었을까봐 겁이

나서 못 먹겠지만 지혜로운 나는 먹을 수가 있지."

여우는 다시 고기가 놓인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고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기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다시 또 의심이 들었습니다.

"아니지, 음식을 얌전히 잘 올려놓으면 독이 든 음식인 줄 알아차리고 먹지 않을 테니 우연히 떨

어진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땅에 던져놓은 게 아니겠어? 다른 동물들은 어리석어서 이런 생각

을 못 하고 덥석 물겠지만 나는 절대 안 속아."

그리고 고깃덩어리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섰습니다. 여우는 그 뒤로도 아홉 번이나 산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의심과 망설임을 되풀이했습니다. (...)

여우 마음은 아홉 번 바뀌었다지만 사람 마음은 백 번도 더 흔들립니다.

그런데 아홉 번 의심하던 여우는 결국 그 먹이를 먹었을까요, 먹지 않았을까요? 독이 든 고기라면

먹었을 테고, 독이 들지 않은 고기라면 먹지 못했을 겁니다. 깨달음의 지혜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잔꾀를 부리면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게 마련이니까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괴로움에서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실은 벗어나거나 사라질 괴로움이란

실체가 있는 게 아닙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괴로움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지 지금 내 마음

이 더 이상 괴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괴로운 이유는 괴로움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다만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다람쥐가 어떻게 도토리를 찾습니까? 그냥 찾으러 다닙니다.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냥 벗어나면 됩니다. (...)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꽉 움켜쥐고 있는

자기 생각만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좋은 것도 내 인생이고 나쁜 것도 내 인생입니다. 바라는 대로 되는 것도 내 인생이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도 내 인생입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사실 내 속에서 순간순간 일어나는 분별을 일컫는 다른 이름

입니다.

 

*'바보같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하고 자책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큰 괴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

일입니다. 남을 시비하는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별을 일으켰던 자기를 탓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똑같은 어리석음을 짓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부처님, 저는 놔두시고 다른 사람을 돌봐주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제가 알아서 돌볼 테니 걱정 마세요.'

'우리나라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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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2016-09-06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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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근육장애인분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고 있어요
이분은 24시간 호홉기를 착용해야만 하는 최중증 장애인이신데요
어머니마저 암에 걸리셔서 돌보시기 힘든 상황이라 아주 상황이 안 좋습니다

매우 좁은 집은 곰팡이가 슬고 화장실도 너무 열악해요
최근에는 약먹다가 약이 기도에 걸려서 119 불러서 을지병원 응급실 다녀왔어요
몸이 너무 안 좋은 상황에다가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네요

추석이 다가오지만 이 장애인분에겐 쓸쓸한 명절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해피빈 모금함을 만들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참 쉬운 게 아니란 걸 깨닫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하고요 괜찮으시면 도움 부탁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