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 요전 - 대행스님 행장기 법어집, 6판
대행큰스님 지음 / 한마음선원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마음 요전-대행스님> 이라고 쓰고 보니 앞의 독후감에서 <깨달음-법륜>이라 한 것과

비교 되어진다. <법륜>이란 이름 그 자체만으로, 스님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어색하

지 않은 것은 그 이름만으로 당당하면서 큰 고유명사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 싶다. <법정>

처럼.

법륜스님도 정토회를 운영하고 있고, 대행스님도 한마음 선원을 운영한 분이신데, 법륜스님

을 법륜큰스님이라 하지 않고, 대행스님은 대행큰스님이라 한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이름

으로 불려지게 하는 것일까? 법륜스님은 스님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고, 대행큰스님은

신도들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저 내 추측컨데... 아니면 입적하신 덕망있는 분들

에게는 "큰스님"이란 호칭을 쓰는가...??

<왓칭>을 보지 않았다면 첫머리에 나오는 대행스님의 일대기부터 믿을 수 없다 터부시하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또한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왓칭>은 내 사고의 터닝포

인트같은 책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요전에서는 "주인공"이라 말하고 오직 모든 것을 그

주인공에 놓고 믿어라 한다. 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니

오직 주인공 자리에 놓고 믿으면 나의 불성을 볼 수 있다 한다.

부처님, 부처님 하며 기복신앙으로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불성을 믿으라는 것이 나와 훨씬

계합되는 이치인 듯 하다. 

금불상도 허상이니 그것도 믿을 것 없고 굳이 절에 금불상을 둘 필요도 없다 한다. 내 마음

내는 그곳이 절이니 꺼둘리지 말라 하는데, 중생은 내내 꺼둘리는 존재라 방편으로 금불상도 

있어야 하고, 보시함도 있어야 하고, 신행회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한마음으로서 일배(一拜)를 지극하게 했다면 그것은 삼만배가 넘을 수도 있다하니, 굳이 이 

 

바쁜시대에 백팔배니, 삼천배니를 어떻게 따르겠는가 하는 말은 일면 수긍도 가긴 한데, 

 

그렇다면 그 일배에 담아야 하는 정성이 얼마여야하겠는가를 헤아려볼라치니 부담백배이기도 

 

하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에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죽음이라 말하는데, 여기서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조차 놓아 버렸을 때가 무여열반이라 말한다. 같은 말인가?? 

 

어렵다...

이 요전처럼 실천행을 하고 있는 선원이 있다면 그 곳에서 신심을 한껏 내고 싶다. 

자기계발서 <Secret>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으며,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또한 이 요전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다.






*"어머님이나 나나  주인공이 형성시켰고 그 마음이나 내 마음이 한마음인데 내 마음이 이러하다
면 어머님의 병환인들 낫지 않을 리 없다."고 굳게 믿어 일임하고 놓는다면 그것이 곧 마음 낸 것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