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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드 보통의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니 그의 글의 특징이 보인다.
그는 결코 문장을 단순하게 적지 않는다.
꾸며주는 말이 너무 많아서 정작 주어, 동사에 집중해야 할 시선을,
길고 긴 꾸며주는 말에 더 집중시키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 문장을 다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몰라서 그의 책이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이 이런 식이라면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에세이가 이렇다 보니 매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희망, 긍정, 공감, 뿌듯함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이 오히려 멍하니
텅 비어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그의 철학이 어떠한 것인지는 책의 마지막 장 몇 페이지에
대한 것이 전부인 듯 싶다. 그 외에는 화물선,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 상담, 로켓 과학,
(그의 책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그림, 송전 공학, 회계, 창업, 항공 산업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담 정도의 이야기들이 수 많은 꾸며주는 말들과 함께 들어있다.
유튜브의 그의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 중 일부이다.
"The world needs more thinkers such as Alain de Botton."
"I wish this dude was my best friend."
"What a truly intelligent man."
"I feel like everyone would be a little bit calmer, confident and more mindful
if they watched Alain's Ted talk series."
"What an intelligent insightful speech."
"Absolutely genius indeed."
내가 그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이런 댓글들 때문이었는데,
지금까지 읽어 온 그의 책들을 통해서 그의 지적인 부분에서는 흠모의 마음이 이나,
다른 부분에서는 위의 댓글들처럼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어서
다시금 나의 간절한 소망, 영어 listening에 대한 애가 단다.
*물류 단지의 특징인 좌고우면하지 않는 일 처리는 밤 시간에 가장 투명하게 드러난다.
어느새 떠오른 달은 아래를 굽어보며 우주적인 관점에서 효율적인 택배업의 의미를
묻는 듯하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14세기 말에 지어진 늘씬한 교회 첨탑이 검디검은
화살의 모습으로 영원의 관점에서 같은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계속해서 어류를 죽이는 바람에 바다는 창백한 바다 유령들로 숨이 막힐 지경
이라는 것이다.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와이와이 인디언이 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유사 신화적인
방식으로 기계를 볼 수밖에 없었다.
*늘 복잡하고 연극 같은 이 지역 날씨는 과학자들의 특별한 관심사였다.
(날씨를 연극에 비유하다니!!!)
*과학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리 부족한 것이 많다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이 이룬 모든 성취는
우주의 장대함에 비추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 장치에서는 그들보다 축복을 받았을지 몰라도 세계관에서는
그들보다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똑똑하고, 정확하고, 맹목적이고, 도덕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동료 인간들 외에는 달리 딱히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망,
불안, 오만의 느낌들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조용하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 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
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