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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이범, 공부에 反하다>, <공부 9단, 오기 10단 (박원희)> 등의
공부에 대한 책을 수 권 읽었었다. 그 때 읽었던 수 권의 공부에 대한 책들의
결정체, 정수가 바로 이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가 될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뭔가 거대한 어떤 것 앞에서 경이로움에 찬 나머지
꼼짝없이 그 거대함만 마주 보고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겨하는 사람만 못하다.
무엇을 하든 이러한 마음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해 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베스트셀러였을 때 읽지 못하고 20여년 이상이나
훌쩍 지난 지금 읽게 된 것은 분명 지금이 이 책과 나와의 시절인연인 것이지 싶다.
그 때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고맙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고맙다. 훌륭한 사람을, 훌륭한 본보기를 알게 되어서 참 고맙다.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여기서 쉬웠다는 것은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에 선천적인 자질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으니까. 쉬워서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 공부에 매달리
다보니 쉬워졌다.
'쉽다'는 것의 원인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있으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쉬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공부가 하기 싫어도 시험은 잘 치고 싶고 대학은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죽기보다 싫은 공부에 무작정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일단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급선
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 재미를 느까는 분야의 일을 할 때
남들보다 열심히 하게 되고 또 그만큼 능률도 오르게 마련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다른 아이들이 자율학습하는 시간에 당구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왜 그랬을까? 공부는 재미가 없는 반면, 친구들하고 어울려 당구를 치는 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보니, 그때까지 내가 재미있다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정말로 공부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해
보았다. 아예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유예 기간을 두어서 그 동안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실컷 한번 해보게 내버려
두면 어떨까 하고. (...)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재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미지의 세계를 하나하나 알아 가는 과정이
주는 재미와 기쁨이다. (...)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살아가면서 우연히 부딪히게 되는 일들을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뿌듯한 느낌 또한 공부가 주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데카르트 연역의 제1원리이다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존재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연역적 사고를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나는 수학을 공부하며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인생에 대한 지혜까지 깨닫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는
뜻으로, 학문을 열심히 탐구하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때는 무슨 일이든 공사판에서 삽질할 때처럼, 입시 공부하고 시험 치를 때처럼 하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에 충만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그 모든 것이 한낱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지난 5년간 입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장래에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고 내가 넘어야 할 한계도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하리라.
이제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