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요전 - 개정판
한마음선원 출판부 엮음 / 한마음선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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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의 종교 생활을 다지기 위한 '신행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신행요전'의

 

'신행'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등이 한글 풀이와 함께 있으며, 예불의식, 선법가, 보왕삼매론등이

 

수록되어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밀'의 한자를 이 책에서는 '密'로 되어 있지만 여타의 다른 책들에

 

서는 '蜜'로 되어 있으며, '열반' 또한 이 책에서는 '반'의 한자를 '般'으로 쓰고 있으나 다른 책들

 

에서는 '槃'으로 보았다. 별 차이가 없는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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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요전 - 대행스님 행장기 법어집, 6판
대행큰스님 지음 / 한마음선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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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요전-대행스님> 이라고 쓰고 보니 앞의 독후감에서 <깨달음-법륜>이라 한 것과

비교 되어진다. <법륜>이란 이름 그 자체만으로, 스님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어색하

지 않은 것은 그 이름만으로 당당하면서 큰 고유명사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 싶다. <법정>

처럼.

법륜스님도 정토회를 운영하고 있고, 대행스님도 한마음 선원을 운영한 분이신데, 법륜스님

을 법륜큰스님이라 하지 않고, 대행스님은 대행큰스님이라 한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이름

으로 불려지게 하는 것일까? 법륜스님은 스님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고, 대행큰스님은

신도들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저 내 추측컨데... 아니면 입적하신 덕망있는 분들

에게는 "큰스님"이란 호칭을 쓰는가...??

<왓칭>을 보지 않았다면 첫머리에 나오는 대행스님의 일대기부터 믿을 수 없다 터부시하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또한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왓칭>은 내 사고의 터닝포

인트같은 책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요전에서는 "주인공"이라 말하고 오직 모든 것을 그

주인공에 놓고 믿어라 한다. 천지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요, 태양의 근본도 내 한마음이니

오직 주인공 자리에 놓고 믿으면 나의 불성을 볼 수 있다 한다.

부처님, 부처님 하며 기복신앙으로 기도하기 보다, 자신의 불성을 믿으라는 것이 나와 훨씬

계합되는 이치인 듯 하다. 

금불상도 허상이니 그것도 믿을 것 없고 굳이 절에 금불상을 둘 필요도 없다 한다. 내 마음

내는 그곳이 절이니 꺼둘리지 말라 하는데, 중생은 내내 꺼둘리는 존재라 방편으로 금불상도 

있어야 하고, 보시함도 있어야 하고, 신행회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한마음으로서 일배(一拜)를 지극하게 했다면 그것은 삼만배가 넘을 수도 있다하니, 굳이 이 

 

바쁜시대에 백팔배니, 삼천배니를 어떻게 따르겠는가 하는 말은 일면 수긍도 가긴 한데, 

 

그렇다면 그 일배에 담아야 하는 정성이 얼마여야하겠는가를 헤아려볼라치니 부담백배이기도 

 

하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에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죽음이라 말하는데, 여기서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조차 놓아 버렸을 때가 무여열반이라 말한다. 같은 말인가?? 

 

어렵다...

이 요전처럼 실천행을 하고 있는 선원이 있다면 그 곳에서 신심을 한껏 내고 싶다. 

자기계발서 <Secret>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으며,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또한 이 요전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다.






*"어머님이나 나나  주인공이 형성시켰고 그 마음이나 내 마음이 한마음인데 내 마음이 이러하다
면 어머님의 병환인들 낫지 않을 리 없다."고 굳게 믿어 일임하고 놓는다면 그것이 곧 마음 낸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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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내 눈 뜨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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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와 <기도>를 적당히 합한 책인 듯 한데
이 책이 <지금 여기 깨어있기>보다 먼저 출판되었네.

만이천원이나 주고 사서 읽기에는 이 책의 여백이 너무 많고, 
<지금 여기 깨어있기>와 중복이 많으니 
차라리 훨씬 알찬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권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지 않듯이 다른 사람 생각도 무조건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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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내려놓기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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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작고 얇아서 이쁘다.
혼자 집에서 수행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한 시간용 참회수행방법이 나와있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외의 사람들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기 보다는 스님의 다른 책,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권한다.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제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부처님, 세상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이제 그만 안온하게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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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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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 온 몇 권의 금강경 해설책 중 가장 전문적이어서 미리 몇 권을 읽어

보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책 서문에 법정 스님 언급하신 대로 "끝까지 읽으려면

적잖은 인내력을 발휘해야"했을지도, 아니면 아예 가장 나중으로 밀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갖은 고서들을 두루 참고해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열의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사람 눈에는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도올의 불같은 열의에 경탄할 뿐이다. 

설명함에 있어 가장 적절한 예시를 든다든지, 비교화 시켜주면 이해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아는 바, 성경과 아울러 같이 비교 설명해 주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특히 색신과 법신에 대한 불교와 기독교와의 비교설명은 여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교설명이어서 더없이 흥미로웠다.

<금강경>을 접한지 이제 고작 세 달이라, 채 백 번도 안 읽어보긴 했지만, 반복되는 문구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말들로 인해 아리송하기만 할 뿐 다른 느낌을 받을 새는 없었는데

도올은 아름답다는 표현도 하더라.  아, 이 충격! 나는 무엇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날로 비대해져 왕국화 되어 간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종교 건물들에 대한 그의 질타

에는 속이 다 후련해지더라!

다소 강력한 표현들이나, 한자의 독음없이 그냥 한자만 적어 둔 부분은 아쉬웠으나,

염려마시라! 다른 부분들이 이 정도의 아쉬움은 충분히 덮어준다.

도올의 한글 금강경을 노트에 사경하며 이 책을 기쁘게 마무리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종교가 제각기 인류를 구원한다고 선포하면서, 종교야말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평화로운
해결이라고 선전하면서, 종교야말로 인류를 억압하고 대규모의 잔악한 실상을 자행하는
명분이 되었으며,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무지하게 만드는 모든 끔찍한 죄악의 온상이
되었으며, 질투와 배타와 저주의 원천이 되어왔다는 이 인류사의 파라독스야말로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무명의 소치인 것이다.

*종교란 본시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른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종교에 대해 일원적인 논의
를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훌륭한 종교의 교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제
각기 다른 종교의 형태를 발견해주는 것입니다. 마치 옷이 사람마다 그 취향과 색감과 크기가
모두 다르듯이...

*돈이란 돈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에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돈을 번다. 돈을 벌어서 또 돈을 버는데만 열중한다. 그들의 돈을 버는 노력이 아무리
진실한 것이다 하더래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창출
하지 못한다. 돈의 허상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돈의 확대재생산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과장에서 생기는 돈을 기원(기수급고독원)에 까는 가치로 환원시키는 자세가 바로 그 사회의
돈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깊게 깨닫고 있지를 못하다.

*기독교의 문제점은 법신(法身)예수를 모르고 색신(色身)예수에게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문제점은 색신 붓다를 너무 무시해버리고 법신붓다만을 진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두 종교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색신과 법신에 대한 명료한 구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색신의 신화화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모든 위대한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그 인간이 설하는 법에 있어야 한다는 만고불변
의 철학를 논구하고자 함이다. 나 색신을 괴롭히지 말라! 길거리에 걸어가는 나 도올을 놓고 
쑥떡꿍 쏙딱꿍거리지 말라! 나는 매일 울고 웃는 초라한 인간이니까. 붓다도 예수도 그러했
을 것이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려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 뜻을 잡으면 말은 버랴야 한다
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나는 언제 그런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번뇌가 곧 보리다!

*내가 이 <금강경>을 내 방에 꽂아두면(그 말씀을 내 방과 내 마음에 모시면) 곧 내 방이 
부처님의 사리탑이 되고 법당이 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내 책상에 꽂아두면 바로 그
책상이 베드로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이 살아계신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참신하고 과격하고 진실한 사상인가? 동포들이여! 앞으로 오는 세기에는 이제 불필요한 
건물들 좀 그만 짓자! 건축업자들을 달리 먹여 살릴 방도를 좀 생각해보자! 필요한 교회
와 법당은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교회와 법당이 사라져간다면 예수님과 부처
님의 도적같고 벼락같은 지혜의 말씀을 내 마음에 안치함이 없이 공허한 건물만을 짓는
다면 그깟놈의 연보돈내 뭔짓하고 있단 말인가!

*제 14분(分)이야말로 여태까지의 우리의 논의를 전체적으로 반추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분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재미있는 점은 그 묘사가 매우 감성적이
라는 것이다.

*단지 내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담을 수 있고 남의 말들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주어담을 수 있을 뿐이다.

*야곱이 돌배개를 쌓은 곳이 어디 시멘트 건물속이었던가? 예수가 사탄의 시험을
받은 고난의 간증처가 바로 훠훠 벌판 광야가 아니었던가? 세례 요한이 대승의 구원을
외친 곳이 그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요단강이 아니었던가? 사막의 이사야 선지자는 
그 미세한 주님의 음성을 어디서 들었는가? 드높은 고딕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울림통
에서라도 들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교회로만 가는가? 어찌하여 허리띠 졸라매어 연보돈만 
내는 것이 신앙이라 생각하는가? 조선의 순결한 심령들이여! 그대들의 푸른 화단에 그대들의 
성경 한 구절을 심으라! 그 곳이 곧 드높은 교회당 보다 더 드높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회당이 되리니.

*지혜는 지식의 단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성의 교만이나 오만을 
불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금강경>의 지혜로 영원히 입문힐 수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불행
하게도!

*우리는 현실적으로 재물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념적으로 재물보다 더 귀한 깨달
음의 지혜를 사회적 가치의 우위로 두지 않는 사회는 곧 부패하고 패망한다. 이것은 역사의
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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