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 - 해피 모지스마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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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위기에 처한 것 같다.

이제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엄청난 홍수, 폭염, 불.....  대 재앙이다.


이런 시기에 이 책의 그림들은 청결한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어 어쩐지 울컥한다.

다시는 이런 자연스런 자연을 볼 수 없을 듯 하다.


온 마을사람들이 시럽을 얻기 위해 공동작업을 하고

담 대신 울타리가, 자동차 대신 말과 마차가 있는 동네,

천지가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동네, 

따뜻한 인간미까지 느껴지는 그림들이 참 좋다.


발명에 발달과 발전이 순식간에 이어져 와서 

이제는 고은시인의 말처럼 더이상 발명, 발견 말것을 소리치고 싶지만

그마저도 너무 늦어버린 듯해 세상살이가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러나 76세에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시작해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인물'로 칭 받았으며,

100번째 그녀의 생일은 세상에나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이 되었단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삶을 살아가는거네,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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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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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에노 치즈코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읽고 반해서

이 책을 포함해 그녀의 책 4권을 더 빌려 왔는데 

아뿔사!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다른 책을 잡기가 너무 부담이 된다. 


<불쾌함을 느끼며 책을 쓰고 

불쾌함을 느끼며 독서해야 하는 책을 쓴 것은 어째서일까?>라는 저자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도 있지만,


아이구, 

끝까지 읽기는 읽었지만 저자의 말대로 불편함을 느끼며 독서해야 하는 책이었다. 





책 소개에 있는 이 문장 정도의 수위가 내게는 딱 적합하고 편안하다.


<저는 남녀가 평등해지기 위해서 여자가 남자만큼 완력이 세진다든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진다든가, 경제적으로 힘이 세진다든가, 이런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싸우면 지죠, 그리고 맞서면 얻어맞습니다. 그것을 더 싸우려고 달려들면 더 많이 맞습니다. 

그러면 약하다는 것은 악일까요?


저는 페미니즘이 여자가 남자만큼 강해지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약한 사람이 약한 그대로 존중받는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천황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실질적으로는 '황실'이라고 하는 이름의 간판을 짊어진 패밀리에 속한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황실을 '로열패밀리'라 부르며 가족의 모델로 삼고 있는 한, 일본 사회는 황실 깊숙이 박혀있는 여성 혐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그런 여성이 있다면)에게는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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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역사 - 죽음은 어떻게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앤드루 도이그 지음, 석혜미 옮김 / 브론스테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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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팅턴병이나 파킨슨병과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며병은 단백질이 응집되는 질병이다. 원래는 정상 작동하던 단백질이 뭉쳐지면서 독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디에서 단백질이 뭉쳐서 어떤 세포를 훼손하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근육을 통제하는 뇌세포가 손상되면 파킨슨병이 된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의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해마)에서 시작한다. 


* 인간이 사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협동이다. 하지만 사냥에 실패하는 일은 매우 잦았고 큰 사냥감을 잡는 데 성공해도 작은 집단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축제의 형태로 이웃과 전리품을 나누는 풍습은 서로 이득이었다. (...) 협동 행위는 수천 세대 동안 이어져왔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정의와 공정의 감각이 생겼다. 실제로 인간은 수치심과 죄의식이라는 감정으로 나쁜 행동에 대해 스스로를 벌한다. 이 감정은 너무나 강력해서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 거울을 보면서 '이 사람이 나를 죽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해보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합친 것보다 나 한 사람이 나에게 더 위험하다. 인간은 유일하게 스스로 삶을 끝내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고 폭력을 쓰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 자살 충동은 대부분 순간적이다.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 하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살이 왜 나쁜 것인가? 내 몸을 원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이 문제에 대한 공리주의적 답변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자신의 고통을 끝낼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장기적인 고통을 초래한다. 자살이 유발하는 고통의 총량으로 보았을 때 자살의 순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다. 안타깝게도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아무도 본인에게 관심이 없다거나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오해하며, 사라지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거라고 느낀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쉽게 하지 못한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스스로를 해치게 만든다. 


* 전염병은 주요 사망원인이 됐다. 전염병에 승리를 거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시고 중요한 아이디어들 덕분이었다. (...) 중요한 아이디어의 첫 번째는 바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다. (...) 의료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고의 혁명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유기체가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세균유래설이다. 세균유래설은 왜 깨끗한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옷을 빨고, 생활공간을 청소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고, 멸균 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했다. (...)  과학은 현대 인간이 역사상 가장 건강하고 풍족하게 사는 중요한 이유다. 


* 가장 중요한 변화는 치매로 인한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 알츠하이머병은 현재 세계에서 경제 자원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질병이다. (...) 앞으로도 몸은 움직일 수 있으나 정신은 정상이 아닌 노령 인구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 전염병과 기는 등의 재앙에 대처하려면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농사가 실패하거나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면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 어느 정부나 무능력해 보이기 싫어서 이웃 국가에 경고하는 대신 문제를 부정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겠지만, 문제가 엄청난 재앙으로 커지기 전에 빨리 대응하려면 숨겨서는 안 된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일부 정치인을 편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변호하지 말고, 문제를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 


* 인간은 대단한 파괴자다. 지구상에 땅을 대부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며 다른 종을 위해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몇 종 안 되는 생물(벼, 닭 등)을 퍼뜨리고 나머지를 멸종으로 몰고 간다. 인간이 왜 환경 피해를 초래하는지 생각해보면 결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서다. 인구를 줄여 환경 피해를 멈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 나머지 방법은 인간이 지구에 주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 새로운 의학의 혁신이 일어나 인간이 죽는 방식이 달라질까 하는 질문은 흥미롭다. 현재의 사망 원인이 극복되어 출산 합병증, 홍역, 흑사병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 사망 원인의 변천사를 다루는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의학을 주로 논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료를 찾을수록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의료가 아니었다. 법률, 정책, 공학, 통계, 경제학이 발전했을 때, 또는 의욕과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사회의 저항을 이겨내고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를 실현했을 때 진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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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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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으로~

죽음을 근사하게 표현했네...


저자의 죽음의 장소는 비록 병원이었으나

숨결이 바람이 된다는 표현처럼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묘사 되었다. 


의미없는 연명치료는 스스로 거부했고

온전한 정신세계의 유지를 원했던 그는 

삶을 사랑했지만 죽음도 수용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던 듯 하다.



옮긴이는 

"칼라니티의 죽음이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그가 가나안 땅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막상 그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이 책의 출판으로 인해 그는 가나안 땅을 밟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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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 홀로 죽어도 외롭지 않다
우에노 치즈코 지음, 송경원 옮김 / 어른의시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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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사는 노인이 집에서 홀로 죽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서서히 몸이 약해져 걸을 수 없으면 그대로 집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고독사라는 건 그 전부터 고독하게 살던 사람의 얘기다. 혼자 살아도 고독하지 않으면 고독사가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홀로 맞는 죽음'이다. 


* 임종을 지킨다는 것은 죽는 순간에 곁에 있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때까지의 모든 시간이 임종의 과정이다. 최선을 다해 과정을 겪은 사람들은 "내가 집에 없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각오는 되어 있다"고 말한다. 


* 지금의 가정임종은 누구나 자기 집에서 죽었던 옛날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 가족들이 도맡았던 간병은 의료 수준이 낮아서 거동을 못하는 환자는 쉽게 욕창이 생겼다. 위생 수준이나 영양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욕청은 점점 악화되었고 거기에 잡균이 들어가서 감염증으로 사망하기도 햇다. 집에서 하는 간병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간병 부담이 커진 것은 간병 수준이 올라가고 기간도 길어지고부터이다. 바꿔말하자면 간병이 꼭 필요한 중증 상태가 되어도 수준 높은 간병으로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간병력이 있는 가족과 같이 살면 당연한듯이 집에서 환자를 돌보았다. 그 간병자원은 바로 며느리이다. 시부모의 간병은 자연히 며느리에게 맡겨졌다. 싫든 좋든 울며 겨져먹기로 며느리들은그 일을 해왔다. "'선택할 수 없는 간병'은 강제노동이다"라고 말한 것은 평소 거침없기로 남 못잖은 나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메리 데일리가 한 말인데 그녀의 말대로 강제노동은 강제수용소에만 있지 않다. 가족 내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며느리들이 간병자원으로 쓰이는 일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히구치씨는 간병력으로서의 며느리는 이미 '절멸한 종'이라고 선언햇다. 


* 병원은 환자보다 의료인의 사정에 맞춰 만들어졌다. 환자는 회복하고 싶은 간절함과 기간한정이라는 조건에 매달려 어떻게든 병원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 병원에 입원하면 내 생활은 모두 병이 되어 버린다. 집에 있으면 병운 잔지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 집과 가깝거나 교통편이 편리한 조건 좋은 보육원이 있어도 몇몇 곳을 더 돌아보고서 자기 마음에 드는 보육원에 아이를 맡긴다. 보육원에 대해서는 질을 중요시 한다. 

그런데 노인시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몇 군데를 비교하면서 질을 따져 보려고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간병 부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 시설에 맡기고서 안심하고 싶다는 가족의 이기심이 엿보인다. 시설이 누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있는 것인지 내가 깊은 의문을 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지금의 노인들에게는 자기 소유의 집이 있다. 게다가 주택도 남아돈다. 동거가족만 없다면 나가 달라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자택에서 그대로 숨을 거둘 수 있다면 시설을 늘릴 필요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너무 많이 지어 버린 탓에 앞으로 유지관리비가 들어갈 일만 남았다. 


* 긍정적으로 보자면 싱글인 시바타 씨는 친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기 직전까지 '가정호스피스'를 실현했다. 죽기 이틀 전 익숙한 환경을 떠나 미지의 공간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니, 인간의 생활은 오늘처럼 내일이 이어지는 관성의 선물이다. 그것을 순식간에 바꾸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  시바타 씨를 보면서 집에서 홀로 죽는 데에는 '확고한 의사는 필요 없다. 그저 하루하루 우물쭈물 조심조심 지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시바타 씨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죽어가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생명의 배턴'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 준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숨을 거두는 순간에 함께 한 사람은 그 생명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나라들의 노인복지 역사를 더듬어보면 노인복지는 간병이 필요한 세대의 요구가 아니라 간병을 하는 세대의 요구에 의해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 젊은이들이 "부모님이 쓰러지셔서 모시고 살려고 합니다만"이라든가, "본가에 들어가서 부모님 간병을 해야 할까요?"라고 상담을 해올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의사를 결정하는 사령탑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간병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다. 만약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모 집 근처에서 따로 사는 것을 권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집에 간병이 필요한 노인이 있으면 집은 간병일을 하는 직장이 되고 만다. 심지어 숨 한 번 돌릴 틈도 없는 365일 24시간 근무체재이다. (...) 그렇지 않아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가족간병이다. (...)  가족이 따로 산다고 해서 가족이 아닌 건 아니다. 파트타임 가족이 뭐가 큰 문제가 될 것인가. 


* 당신의 노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당신 자신 뿐이다. 부모도 형제도 아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가장 큰 효도는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이 안 계셔도 나는 잘 살 테니까 안심하고 먼저 가세요'라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죽는 게 순서니까.


* 그래서 나는 부모에게 같이 살자고 하는 자식의 제안을 '악마의 속삭임'이라 부르는 한편, 부모에게는 설령 거기에 '노'라고 대답하더라고 자식 신세는 안 진다는 밉살스러운 말은 하지 말라고 조언해왔다. 여차할 때는 부탁하는 게 좋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노후니까.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먹여주고 온 마음을 다해 길러줬는데 부모가 곤경에 빠지면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자식의 생활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는 게 조건이다. 



*부모가 먼저 죽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아버지, 어머니. 안심하고 먼저 가세요. 저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잘 지낼 수 있어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복지가 있는 게 아닐까?


* 튜브영양을 할지 말지,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지 어느 한 쪽을 편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때그때 망설이고 휘둘리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다. 만약 그런 가족이 없다면 주위 사람이 본인과 함께 망설이고 고민학 생각하면 된다. 나는 살고 죽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나 태어나는 방식도 선택할 수 없었듯이 죽을 때나 죽는 방식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선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서로를 비난하는 가족에게 오가사와라 씨는 "옆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를 정도로 본인은 평온하게 떠났다는 뜻이겠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 (...) 자신이 연구한 대로는 흘러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 퀴블로 로스도 죽음 앞에서 버둥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한 명의 인간이구나 하고.


*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다만 언제 어떤 식으로 죽는지는 모른다. 살고 싶어 버둥버둥 발버둥 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죽는 방식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죽음은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임종기에 대한 연구에서 내가 얻은 큰 성과는 이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다. 그것을 컨트롤하려는 마음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손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일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를 비롯해 가족이 있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종교가가 아닌 사회학자로서 저세상을 구원으로 여길 게 아니라, 이 세상의 일은 이 세상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 내가 품고 있는 실천적인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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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2023-07-10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보봐르의 노년과 장 켈레비치의 죽음을 번갈아 읽느라 정신이 없네요^^

Grace 2023-07-17 11:22   좋아요 0 | URL
보봐르의 노년과 장 켈레비치의 죽음??
아이구 궁금하네요.
그들의 노년과 죽음이 어떠한지 필리아 님의 서재에 가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