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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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ㅡ 손홍규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기억을 걷는 사람들의 시간 

ㅡ 
그들은 청년이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 청년이 대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 사랑에 실패하고 원한을 품었던 , 살아보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절망해버렸던 그 청년은 그들의 내부에서 그들과 함게 늙었다 . 그들은 깨달았다.자기 내부를 헤매는 이 불길한 청년과 때때로 조우하며 수십 년을 살아왔음을 . 청년과 그들은 헤어진 게 아니라 함께 거주하며 서로를 증오하고 힐난하고 할퀴면서 수십 년을 견뎌왔음을 . 
(본문 64 쪽 )


말 소리는 없고 흑백의 화면만이 느리게 돌아가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 빛 바랜 주점의 풍경을 을씨년스럽게 훑는 , 시선처럼 감고 도는 필름을 보듯 왼쪽 팔에 상장을 단 청년이 울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지나가고 늙은 노인이 시커먼 구멍같은 입을 뻐끔대듯 움직이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내가 변사 辯士 처럼 풍경에 소리를 입히듯 읽어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무채색이다 . 검고 회색이고 얼룩같은 흰색들이 점점이 벗어 놓은 옷처럼 걸터 앉은 화면의 그림자 뭉텅이에 소리를 나 혼자 입혀 낸다 . 

허깨비 같은 노인의 바람 빠진 무성음을 뒤로 한 시대가 , 한 가정이 천천히 주저 앉는다 . 삶의 터전이 버섯구름을 일으키며 황폐해지는 것만 같고 , 시간은 거꾸로 흘러 더는 날아갈 게 없는 탱화의 낡음처럼 쩍쩍 갈라지고 흩어지는 걸 천천히 지켜보는 심정으로 . 공기중으로 색들이 모두 날아갔다 . 나도 꿈을 꾼 듯 허망하다 . 누군가의 일생이 이토록 가볍고 하찮다니 ... 

반전도 없이 그나 그이나 남자나 여자의 시간이 척박한 생활터에서 과거로 갈마들어가는 걸 숨을 멈추고 지켜본다 . 어디도 새롭지 않은 낯익음이 바로 여기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 죽음과 늙음 , 시들음과 생생함으로 가면 갈 수록 남루한 인간의 낮은 곳을 이렇게 보여주는 구나 하면서 . 느낌만 아련하게 남고 서사는 한마디로 정리하지 못하는 단편 .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사나운 꿈을 꾼 것 같은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 


그는 두려운 눈길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 어머니 , 제가 누군지 아시는 거죠 ? 정신도 멀쩡하신 거죠 ?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시는 거죠 ? 지금 어디 계신지 아시는 거죠 ? 알기 때문에 결국 거기로 가신 거죠 ? 어머니 ...... 저도 데려가 주세요 . 어머니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요 . 여기서 얼마나 더 늙어야 해요 ?
(본문 104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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