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F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ㅡ 제임스 홀리스 , 김현철 옮김 , 더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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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 또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저울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 내 이름은 카이로스 . 지금이 바로 기회다 "
[ 이태리 토리노 박물관의 카이로스 석상에 쓰인 문구 ㅡ라고 한다 . ]

남자는 눈을 감고 음울한 톤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 지금 자신의 감정이 어떠냐는 의사의 물음에 그 나직한 목소리는 울컥한 분노의 감정을 삭이며 모멸된 자아를 되씹는다 . 한 그룹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 있는 남자이지만 그는 텅비어 간다 . 아니 늘 비어 있었다 . 
또 한 남자는 쇠락한 풍경의 배경처럼 앉아서 혼자 소주를 들이켜며 , 돌이 킬 수 없는 지난 날의 시간을 허공에 외친다 . 자신은 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남은 건 못한 삶뿐이라고 자식들이 , 아내가 그를 몰아붙이고 원망하기에 스스로 지쳐 분노한다 . 분노하느라 자신을 텅 비우는 중이다 . 

아마 [ 황금빛 내인생 ]이라는 극속의 그들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설정이 되있을 거다 . 각각의 가정안에서 첫 아이들이 30대 초반 정도인 걸로 나오니까 말이다 . 하지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제야 마흔이라는 중간항로에 섰음을 본다 .  연대기적 나이( 크로노스의 시간) 가 아닌 다층적 시간 속의 나이( 카이로스의 시간)를 겪느라 생물학적 나이를 한참 지나서야 맞는 상징적 나이 마흔 .  그들의 마흔은 풍랑이 일고 , 물보라가 흩날리며 하늘이 가깝게 떨어지는 혼돈의 시간이다 . 

그리고 나는 , 이 책 <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를 읽으며 매 문장의 마침표가 끝날 때마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끝없이 재생되었다 . 그때마다 내 삶의 새로운 유언장을 갱신하느라 어지럽고 복합적인 시간을 보냈었다 . 그 많은 문장의 끝마다 나를 세워놓고 나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고치는 일 . 그게 이 독서의 실험적 경험이었다 . 그러면서 초조하였다 . 자 , 어서 가서 저 어린 날의 , 혹은 실패했다 느낀 시간속의 너를 데려오렴 . 나는 이 다리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하지만 다시 돌아와 기회의 시간 앞에 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면 다시 태어나는 지점으로 돌아가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 피닉스처럼 죽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한 시간의 내가 , 나는 어디 있냐며 헤매고 다녔다 . 

나에게 마흔이란 중간항로는 영원히 오지 않을 고도같았다 . 그 시간을 살았던 나는 내가 아니었다 . 아무것도 아무도 아니었기에 시간속에 있을 수 조차 없는 자아 . 나도 드라마 속의 그 남자들처럼 텅비어 있다 . 이런 고통에 아파야하는데 아프지도 않아서 더욱 좌절스럽다 . 속절없이 눈물이 나지만 우는 나는 빈 그릇이고 , 껍질일 뿐이다 . 우는 모습을 본떠 만든 인형일 뿐이다 . 

중간항로에서 겪는 가장 강력한 충격 중 하나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우주와 맺었던 계약  ,  다시 말해 우리가 옮게 행동하고 선의를 지니면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릴 거라는 생각이 무너지는 것이다 . 우리는 우주와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며 , 자신의 몫을 다하면 우주 또한 이에 응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유감스럽게도 , < 성경 >의 [욥기] (어찌하여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 하는 문제를 다룬다 ㅡ옮긴이 ) 에서처럼 고대 이야기의 상당수는 그런 계약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중간항로를 거치는 모든 사람은 이를 깨닫는다 .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꼽자면 아마도 ' 자아의 우월함 ' 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일일 것이다 . ... 자아의 붕괴는 자신이 삶을 통제하지 못함을 뜻한다 . 니체는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이 얼마나 당황하고 경악하는지에 관해 묘사했다 . 그 경험은 사실 우리가 자신의 삶마저 제대로 꾸리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융도 자신이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전율이 어떤 것인지 강조했다 . 충격 , 혼란 , 공포를 제외하고도 중간항로에서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우리는 겸손해진다 . 

성장하여 스스로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삶은 무자비하다 .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 성장은 중간항로에서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요구 사항이다 . 이는 결국 타인의 중재 없이 자신의 의존성 , 콤플렉스 , 공포를 직면해야 한다는 뜻이다 .
(본문 86 , 87 , 88 쪽 ㅡ 온전한 인간이고 싶다 ㅡ편 에서 )

극속의 남자는 아직 흔들리는 중이지만 , 결국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나직한 음성의 남자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 뛰쳐나간 아들을 묵묵히 지켜주며 , 자신은 결코 못했던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을 하는 아들에게 말없는 응원을 보낸다 . (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않았지만 , 그런 것으로 보인다 ) 또 한 남자는 자신의 삶 속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에서 영원한 휴식을 준비한다 . ( 그런 걸로 보인다 ) . 완벽한 공포에서 이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정을 함으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확인하는 그들을 본다 . 

울고 있던 나의 페르소나는 조금 울었으므로 후련하다 .  눈가를 닦고 자신의 감정에 새로운 적응기를 적어내야 한다 . 그림자를 달래서 함께 어두워진 길을 돌아 집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 

이 책 속의 마흔은 사회가 만든 성공적 이미지의 삶을 사느라 애쓴 모든 이에게 , 지금의 감정이 어떠냐고 묻는 의사의 목소리이다 . 듣지 않았다면 몰라도 들어버린 이상 그 질문에 성실하게 숙고를 해봐야하는 , 내면을 돌보라는 지시문 . 덕분에 나의 시간은 진자처럼 과거와 미래로 , 왔다 갔다 하느라 매우 바빴다 .

오늘도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은 텅빈 기분으로 울적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 이제 중간항로에 도착하였으니 멀미약을 준비하란 메시지를 전하면서 미숙한 인간의 삶도 , 혼자를 기르는 법도 어느 설명서에도 없으니 그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라 ,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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