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새벽까지 희미하게 ㅡ 정미경 작가 편

 

좁혀지지 않은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처럼 ,

 

   그러니까 선글라스를 낀 채로 모과나무를 안고 있던 송이 .

기억의 멀고 가까움이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강렬함으로 정해지는 거라면 그건 아마도 가장 가까운 기억이겠다 . 새벽까지 희미하게 달이 떠 있던 놀이터는 줄이 한량없이 긴 괘종시계의 추처럼 예고 없이 스윽

나타나곤 했다 . 날것의 밑바닥을 누군가에게 들켰다고 느끼는 순간 , 무릎이 꺽일 만큼 힘든 순간 , 어떤 석연치 않은 순간 , 그리고 또 ...... 그 새벽에 송이는 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까 ? 자신은 ? 잘 모르겠다 . 다만 그 새벽에 유석이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

   근데 얘들은 똥 묻은 팬티를 찾아 어디까지 가고 있는거야 ? 도로도 없는 어디 황량한 사막 ,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는 지프를 타고 . 앞 유리는 왕창 깨져 달아나버렸는데 , 비는 쏟아지는데 . 조수석에 앉은 토끼는 깜깜한 선글라스를 끼고 대가 긴 우산을 바깥으로 펼쳐 들이치는 비를 막아주고 있었다 . 근데 사막에 비는 또 왜 와 ? 유석은 송이 옆에 있는 것처럼 뚱하게 중얼거렸다 . 그야 시적 허용이죠 . 옆에 있었다면 언제나처럼 또 잘난 척을 했겠지 .

옆에 있었다면 언제나처럼 또 멀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겠지 . 새벽까지 희미하게 떠 있던 달 만큼이나 .

ㅡ 본문 377 / 378 족에서 ㅡ

 

저녁 잠을 깨서는 아이와 자릴 바꾸고 거실로 나왔다 . 도깨비 했겠다 . 그리곤 오늘치 드라마를 돌려놓고 불려놓은 쌀을 볶아서 죽을 만들고 , 틈틈히 드라마의 대사가 귀에 걸리면 눈을 잠깐 주다가 가스렌지 위에 끓고 있는 죽을 눌러붙지 말라고 젓고 , 물을 조절하고 불을 줄이고 키워가면서 토요일 밤이 깊어 갔다 .

 

이 책의 단편들을 읽기는 엊그제 쯤  다 끝내놓고 , 머릿속이 출장간 듯 텅비어서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좀 충격적인 뭔가가 걸려지기를 바라면서 무턱대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이틀 .

너무 좋으면 좋아서 , 너무 쉬우면 어쩐지 뭔가 덜 캐낸 원석이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생각의 발효가 필요한 때가 있지 않겠냐는 듯이 , 아니면 정말 글줄기만 따라 읽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슬슬 걱정하면서 일단 모니터 앞에 앉은 새벽 , 역시나 좋은 글임에도 뭘로 풀어가야겠는지 모르겠고 그냥 줄거리만 주워삼켜 보자 , 그런다 .

 

친분이 있던 형 밑에서 게임산업 일을 하던 유석은 이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독립을 한다 . 형처럼 승승장구하길 꿈꾸며 낸 사무실은 늘 적자에 허덕이고 대로변의 사무실에서 더 싼 임대료의 건물로 옮겨가게되며 사무실 이사하는 날 한 외판원인 송이라는 여자를 알게되고 잡일꾼으로나 부려야지 하던게 어느새 송이의 위치가 사무실에서 없어선 안되는 위치로 변해가도 같은 업종의 자격증을 가지지 않았단 이유로 그녀의 능력을 모른척 무시하며 사골 우리듯 부린다 .

 

혼자서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던 사업은 늘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역시 형의 권유로 새 사업 아이템에 참여하게 되는데 , 송이는 그때 자신의 아이디어로 게임을 만들어 내고도 정당한 이유도 없이 동료들의 따돌림에 회사를 나간다 . 유석은 송이 아이템으로 사업이 잘 풀리고 , 다시 형 밑으로 들어가면서 있던 사무실을 닫는다 .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보게된 한 잡지의 인터뷰를 통해 벌써 세 번째 동화집으로 상을 받은 송이의 글을 보게되고 그녀에게 받은 것과 함께한 시간들을 돌아보는데 , 늘 뜬금없는 말들로 긴장되고 힘든 일의 와중에도 힘을 넣어주던 그녀라는 존재에 대한 마음과 또 , 끝내 사과도 못한 죄책감 등을 진실을 비켜나서 미화하며 회상한다 . 송이는 각종 재료로 만든 아트디자인으로 이야길 기획하는 작가인데 그게 묘하게 현실적이면도 독특한 상품들이라 인기인것 같다 . 그녀가 내보인 작품중엔 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사무실 식구들이 그려져있고 , 언젠가 그 때일을 이야기로 풀어내보고 싶다는 말에 , 변명처럼 그런 힘든 일 중에도 자신이 위롤 받았듯이 그녀도 그랬었기를 바라는 심정을 보여준다 .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 드는 정미경 작가의 글 , 처음의 다른 작가들 작품이 마음에 들어 왔다가 나갔다가 한다 .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의 전체 작품을 놓고 순위를 매기면 나는 이 작품을 권여선 작가 다음으로 놓을 수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  확연히 이야길 풀어내는 방법이나 주제가 젊은 작가들과는

차별이되는 기존 작가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쓰는 힘에 대해서도 어떤 믿음같은게 생긴다고나 할까 .

 

글 속의 유석 표현대로 남루하고 신파스러울 수있는 자신의 치부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송이 .  힘든 밤의 작업 때는 놀이터 근처의 모과나무 둥치를 안고서서 선글라스를 쓴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충전중이라고 하던 송이 . 지나쳐도 이상할 게 없는 사소한 정보들을 , 먼 곳의 이야기 마냥 가져와 떠들곤하던 송이 . 그렇게 깊은 인상을 받은 송이와 나누던 누가 더 불쌍한가 내기라도 하듯 주고받던 당시의 자신을 둘러싼 힘겨움들 . 그래도 아무리 자신을 따라와도 일정 간격을 유지하는 달에 빗대서 얘길 풀어내는 정미경 작가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하던가 그런 마음이 읽히는 단편 였다고 적는다 .

 

날이 밝은 일요일 아침 . 오늘은 또 뭘 읽고 이 텅빈 머릿속을 긁어내나 ...괜한 걱정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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