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산책 -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용준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은영은 분명 검은색 그랜저라고 했다 . 검은 색 그랜저가 새벽 두시에서 세시 사이에 다섯 번이나 읍산요금소를 통과했다고 했다 . 그녀는 은영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 아주 간혹 그렇게 시간 차를 두고 연속해서 읍산요금소를 통과하는 차들이 있었다 . 기껏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해 내달리다가 사정이 있어서 되돌아온 차들이었다 . 읍산요금소 앞으로 뻗은 도로는 칠백 미터 지점쯤에서 두 갈래 길로 갈라진다 . 고속도로 상행선 , 하행선 . 통행료는 통과할 때마다 지불해야 한다 . 통과하는 횟수가 백 번일 경우 백 번 다 .

뫼비우스의 띠라고 했던가 . 차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부스 밑에 설 때마다 그녀는 , 자신이 들어 앉아 있는 부스가 뫼비우스의 띠의 시작이자 끝인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

 

ㅡ 본문 260 쪽에서 ㅡ

 

이 부분을 이 책의 백미라고 잡아 놓고도 한참이나 망연하게 모니터를 쳐다만 보고있었다 .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단편은 너무 너무 , 너무하다 . 끔찍하게 삶을 짓누른다 . 글 속의 여자는 심상하게 요금소의 일과를 서술하지만 읽어들이는 나는 잘못 읽힌 바코드기기처럼 삑삑 소릴 내게 된다고나 할까 ?

너무 아무렇지 않으면 , 그 앞에 슬픔을 표현 할 길이 없어지잖나 ? 먼저 울어야 같이 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니 너무한 소설이다 .

 

뭘 불러와 이 단편을 표현해야 가장 와 닿을지를 고민했다 . 머릿 속엔 너는 상행선 , 나는 하행선 하는 유행가도 휘리릭 지나 간다 . 아니다 . 그 노랜 , 길 위에 있으니 길을 테마로 머릿 속의 이것저것을 불러와 본다 .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 이 길이 옳은지 . 다른 길로 가야 하는지 , 가로막힌 미로 앞에 서 있어...하는 김윤아의 길 "을 불러다 놓는다 . 그러고 보니 시그널 테마 곡이다 . 그렇지 , 이 드라마에서 김혜수 (차수연 역)는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무작정 달리다가 죽음에서 겨우 비껴나지 .

 

이 글의 주 무대인 읍산은 황량하다 . 모두 빠져나가고 텅빈 황량함이 아니라 장례식장을 앞에 두고 요양원을 앞에 둔 생의 마지막 같은 그런 황량함이 꽉 차있다 . 그 길목 어디 쯤을 지키고 섰는 요금정산의 계약직 직원인 여자는 한 밤에 그랜저를 몰고 , 계속 되돌아와 같은 장소를 묻는 남자를 공포심에 곰곰 생각한다 . 저 이가 의도적으로 되돌아 오는건 아닌가 ..하고 ,

 

길 위에서 자꾸만 같은 위치를 묻는 남자와 대거리에 지친 여자가 , 나중에 생각해 내는 일은 아예 폐쇄된 옛날의 요금소를 일러줄까 , 하는 소소한 악의다 . 그러다 요금소 소장이 알려준 그 요금소 이름이 읍산 요금소라는 말에 ,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읍산요금소 인데 ,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묻지만  이전의 폐쇄요금소와 지금의 요금소가 같다는 말을 듣곤 황망해진다 . 대체 ,  잘못된 곳에 잘못 서 있는 건 자신이 아닌가 하면서 ......

 

마치 빛이 보이는 곳이라 무작정 뛰었는데 어디선가 꼬여 다시 그 길로 돌아가는 달음박질을 하는 김혜수를 보는 것 같아서 , 내가 다 철렁 해진다 . 무미건조한 글에 이런 생의 막장같은 공포라니 역시나 김숨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을 하게된다 . 으~ 어쨌든 너무 너무한 소설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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