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행복 - 2016년 1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조해진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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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진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고 , 일상과 감정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요 . 라오슈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  하지만 라오슈 , 하루하루가 특별한 감각 없이 머릿 속 망각의 창고 안에 쌓여가고 있는데 , 나라는 존재 하나 해석할 수 없어 생산성과는 완전하게 무관한 산책이나 하며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 ,  이런 제가 어떻게 제 세계의 둘레를 벗어나 전진할 수 있을까요 . 해변의 버려진 종이상자처럼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 뿐입니다 .

라오슈 ,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했고 책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라오슈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 」

 

ㅡ 본문10쪽 중에서 ㅡ

 

독일에서 유학중인 메이린의 독백같은 일기와 부름 , 고백이 있고 ,  M시에서 시간을 견디며 보내질리가 없는 답을 또 독백처럼 혼자 할 뿐인 라오슈가 있다 . 접점이라면 한때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강의를 받던 학생과 교수였던 사이라는 것 .

 

그런 교수의 신분에서도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냥 고학력의 백수가 될 뿐 , 자격증이나 기술 따위는 없는 , 지식인의 하루 아침이 이렇게나 허무하다 . 누군가의 결제도장 하나로 과 (科) 하나가 생기고 없어지고 하면서 생기는 실업자와 노동자라니 , 엄청나단 생각을 했다 .

 

이 책 이전에 막 끝낸  조남주작가의  82년생 김지영ㅡ이란 글 말미에 보면 정신과 닥터인 남편이 수학천재인 아내의 이야길하는데 , 잘나가던 회사 연구부원이던 아내가 아이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 앉아 아이와 가사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없으니 , 그 해방구로 초등수학 문제집을 미친듯이 풀어 매번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는다는 이야기였다 .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결과값이 딱딱 나오는 일이 수학문제집을 풀어 나오는 정답을 맞추는 것 뿐이라는 말에 얼마나 절망적인 몸짓이 보이던지 내가 다 미칠 것만 같았다 .

 

병든 어머니와 생계를 위한 일로 할 수있는 일이 고작 편의점에 서서 새벽을 지키는 것 뿐인 여자 , 혹시라도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젊은 사람들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경직되어버리는 몸 , 철학을 가르치며 노동은 신성하니 자유를 지키는 한 가난 속 , 인간의 품위 운운하던 기억은 현실에선 철크렁 쇳소릴 내며 쫓아오는 검은 개나 마찬가지일 뿐 .

 

그러니 , 이 책의 주 제목인 산책자의 행복은 메이린이 이미 죽은 이선을 생각하고 , 라오슈를 걱정하며 자신은 지금 겪지 않는 미래의 일을 오직 고민 할 뿐인 달콤한 슬픔이기에 행복인 것이라는 다소 냉정한 말을 해야겠다 . 먹고 사는 치열한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면 그처럼 라오슈에게 연연해 편지나 보낼 시간 따윈 없었을테니 ,  그러니 메이린은 행복한 산책자인 것이 맞다고 . 아직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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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3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1-03 03:34   좋아요 1 | URL
ㅎㅎㅎ천천히 하셔요...저 무서워서~ 체하잖아요! 새해 복은 많이 쟁여 두셨죠? 마구 풀어 쓰시고 남으면 저도 좀 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