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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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ㅡ파블로 네루다, 「遊星」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

수를 미끌어져 가고 ,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

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

그럼 나는 그애보고 메뚜기라 한다 .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

을 걸치면 ,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 벼랑의 붉은

꽃 꺽어 달라던 水路夫人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 내게

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 절

해고도의 섬처럼 , 파도 많이 지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

절해처럼 .

 

(26쪽)

이성복 시집 ㅡ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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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돌아가는 드뷔시의 달빛.

혹시나 보일까 나가본 베란다로는

오늘의 달빛이 미치지 못한다 .

안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닐테니

내일의 소원 중에서 하나를

미리 당겨 빌어보는 밤 .

아 , 아 , 딱 그만 사는 것도  좋겠어.

내가 없어도 이야기들은 어차피 계속일텐데

그 호기심에 하루하룰 미루며 연명하는게

그래, 무슨 의미가 있지 ?

널 낳고 죽을 수 있어서 기뻐 울었다는

영화 속 어미처럼 , 내 마음도 그리 흥건한가?

차갑게 느껴지는 달일때도 살아와 놓고

새삼 온기가 느껴지는 드뷔시의 달빛에

이상토록 마음은 차게 식는다 .

의미따윈 모르고 돌고 있을 달 .

이러고도 살아야하나 의미를 괜히 달에

물어보는 오늘의 하찮음 .

사는게 무료한 모양이다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표시는 이성복 시인의 싯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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