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그의 전작으로 읽은 『별명의 달인』이란 책에서  만난 【바소콘티누오】가 아직 생생하다 .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D장조의 여운이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걷던 언 눈이 곳곳에 있던 귀갓길에 두 그림자를 비추던 나트륨 주황의 가로등 불빛들이 ...근 이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잘 맞춘 간수로 만든 담백하고 깨끗한 두부처럼 따끈 따끈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

 

가족사를 다루는 작가들은 많고 많지만 나는 구효서 작가를 빼고 갈 수없다고 생각한다 . 【도라지꽃 누님】에서 【모란꽃】에서 그가 누이들을 상대로 글을 낼때 느낀 감정은 , 밍밍한 두부가 뭔 깊은 맛을 내겠나 싶겠지만 제대로 만든 두부란 별 조리가 없이도 그 자체로 따듯하며 신선한 요리가 된다는 걸 알게 해주었던 것처럼 .

 

 

한 마디로 간이 잘 밴 요리같이 어느 귀퉁일 지나도 옛집의 감나무처럼 생각이 나니까 ...

그러나 잘 받은 상차림과 음악들의 여운이란게 대게 그렇 듯 분명한 선에서의 끝이란 게 없다 . 그저 진행형의 무엇일 뿐이다 . 소금가마니를 마침 좋은 위치에 놓고 오래 오래 간수를 내듯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인 공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지 , 그게 뭐라고 확실한 모습으로 표현되어지진 않는 것처럼 , 이 소설이 또 그렇게 내게 한 맛의 세계로 언어적 표현의 끝을 보여주었다 .

주먹두부처럼 와당무늬를 찍어낸 반듯반듯한 두부가 아닌 거친 베에 짠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먹두부가 나는 생각이 났다 .

 

 

아흔 일곱의 천수를 누린 어머니의 마흔 다섯 나이에 얻은 막내둥이 아들로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폭력적인 아버지보다 더 이해 어려운 무엇으로 , 주인공은 평생 다른이의 씨로 형제자매들과는 달라 (다를 것이라는)그 처지를 눈치 받으며 살아왔는데 , 어머니가 죽고 나서 누구에게도 물을 수없는 사실을 외종형이 남긴 어머니가 보던 책이라는 것에서 찾으려 한다 .

가늠이 안되는 부모는 대체 어떤 부모일까 ...

 

 

나는 최근에 한 이웃분이 자신의 어머닐 소개하며 생에 가장 멋진 분이고 그런 분의 자식임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얘길해 무척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

 

 

존경과 외경을 받는 부모의 자리 , 거기에 주인공은 키르케고르의 저서 「공포와 전율」을 펼쳐보면서 토정비결도 아닌 「금옥연」이나 「동정추월」 , 「김인향전」 도 아닌 저 키르케고르에서 놀란다 . 더욱이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보던 철없던 시절의 밑줄 친 부분들이 어머니가 연필로 줄 쳐 놓은 것들과 묘하게 겹친다는 걸 느끼면서 서책의 주인이름(자신의 생부라고 추측들을 하는) 이 박힌 책을 곱씹는 순간들과 자신의 피는 그저 어머니의 아들일 밖에 없음을 깨닫는 순간까지를 그려낸다 .  

 

 

그 어머니 생애의 폭력은 가혹하니... 가혹하다 , 가혹할 수밖에 라는 어떤 시인의 싯귀만 떠올릴 정도의 삶이었는데도 다행이 말년이 곱고 고와서 두부같이 정갈하였다 . 어머니의 그 두부로 자식들을 키우며 소리없이 참고 인내한 간수같은 인생 . 소금가마니가 녹아 주저 앉아도 그 소금창고 속 존재가 내내 생생하듯  어머니란 존재는 폭력에 저항없던 어머니의 삶과 소금이란 희생의 결과물임을 그저 짐작만 해 볼 뿐이다 . 그럴 듯한 말로 멋지게 해석되어지진 않으나 좋은 문장에 밑줄에 절로 쳐지 듯 그런 거였다고 ...

 

 

작가가 보고 또 구현해 보이려 한 소금 가마니의 생 ㅡ 감히 그 속에 나는 들어가 오래 앉아 있을 수나 있을지 , 겨우 짠 눈물만을 이해하는 내가 ... 그래서 한 없이 내가 작아지는 단편이었고 , 또 역시 어느 귀퉁일 돌아 만나는 감나무의 까치밥처럼 문득문득 내 삶을 깨치겠지 .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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