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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51
박진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익명에서, 익명에게
박진성
왜 여기 있니 얼마나
찾았는데
네 목소리만 들리더구나
내 귀로 분명 들었는데
너는 그냥 종이들이구나
숨은 것과 없는 것을 골몰하다가
나는
어느 밤이 되었는데
너는 그걸 과일이라 부르는구나
오래전에 나는 죽었는데
너는 손목을 잡고 싶다는구나
네가 흘리고 간
그림자는 성대만 가졌구나
나는 기차가 되었는데 너는 그걸
아르헨티나라고 말하는구나
좁은 방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너는 오빠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웃는구나
팔레스타인 여자를 언니로 바꾸는 기술을
네게서 배운다
우리는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푸른
공기였지만
아파트 복도의 새벽 두시였지만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안 보이는 폭력들에 대해서
더 안보이는 죽음들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지
선언문이 되는 순간 목소리를 잃을까봐
너는 두려워했다 사랑하는 방식은 도시의 숲에서 배울 것,
아니다 사랑은 배우는 게 아니다
나무의 목소리를 나무에게 돌려주는 게 사랑이라고
너는 말했지
그렇다면 나는 내
귀를 걸어둘게
바람에 빵집에 거대한 크레인의 공중에
그리고 네가 쓰지 못한 문장들에
떠도는 귀들을 걸어둘게
목소리들의
주인은,
움직임라고 해둘게
p . 10 , 11
박진성 시집 ㅡ식물의 밤 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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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귀들을 걸어 놓겠데 ... 풍문으로, 멀리 떠도는 소문으로
라도
그대 소식 한자락 듣겠다는 말처럼 따듯하네 ...
내 귀를 얼마든 걸어 놓겠다니 ...
다 못한 말이나 속엣말들을 위해 문장이라고
했지만
편지같이 ... 기다리는 마음 . 쫑긋하고 세운 오롯한 마음
예쁘구나 . 참 ...어떤 얼굴인지는 몰라도 그 귀 참 잘
생겼겠네
그런 말 하는 고 입도 참 예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