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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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길 >ㅡ 장석남

밤길을 걷는다 
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그러하다가
새벽달이 뜨면 올올이
풀리는 빛에 걸음은 걸려라 
걸려 넘어져라
넘어져 무릎에 철철 피가 넘치고
핏속에 파란 별빛들과 여러 날 시각을 달리해서 뜨
던 달
셋방과 가난한 식탁
옹색한 여관 잠과 마주치는 눈길들의
망초꽃 같은 세미나
꼬부라져 사라졌던 또다른 길들 피어날 것이다
환하고 축축하게 웃으면서 이곳이군
내가 닿은 곳은 이곳이군
조금은 쓰라리겠지
내가 밤길을 걸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 날이 와서 침침하게 앉아
밤길응 걸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겠지
그것이 다 우리들의 연애였으니

p .30 /31

장석남 시집 ㅡ《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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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ㅡ노래 "서툰시"

https://youtu.be/ja4D8uddp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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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무렵 산책 

밤의 길은 낮의 환한 길보다 더 익숙하다 
논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밤 사이 부지런한 거미의
울타리를 예고치 못하게 망가뜨릴때 
내 살갗에도 거미의 아픈 마음 만큼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들 처럼 피가 맺힌다 
도르르 맺힌 밤의 피들을 스윽 닦아 내면서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
어차피 아침이면 사라졌을 것들 아니냐
찰박찰박 논을 넘쳐 흐른 포장 길을 적시는 물길을
길이 낸 상처같다고 여기며
나는 길의 피조차 밟으며 거침이 없이 걷는다
멀리 돌아 오는 길엔 동녘의 산등성이가
비스듬하게 창백한 미소로 배웅을 한다 
이 밤 길도 오늘은 안녕 하다
잘 들어가라고 논밭 사이 개구리들 
와글와글 노래해준다 
매일 새벽 4시 50분 성경 말씀을 들으며 운동하는 이는
내가 돌아 오기전에 운동을 마치고 가버렸다 . 
발 걸음도 씩씩하게 돌아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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