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작가 신작 맛보기
장미의 왕자 ㅡ은 희경
그 수첩을 내가 읽게 된 게 우연일까 . 나에게 보내는 인생의
암시 같은건 아닐까 . 운명이란 비정하고 무자비하지만 늘
전령을 먼저 보내 경고를 할 만큼은 용의주도하다고 어릴 때
부터 나는 종종 생각해왔다 . 그 메시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방심하는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집행해버
린다 .
나는 경고를 받아들이는 의미로 카운터 아래 칸에 놓아두었던
숄더백을 꺼내 그 안에 수첩을 집어넣었다 .
ㅡ
정적 속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닫히고 막히고 정지되고 그
리고 뿌옇게 흐려져 있다 . 내 심장만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빠르고 활기차게 뛴다 . 갑자기 어떤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
본다 . 아무것도 없다 .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네모난 흰 종이
는 그녀의 수첩에 끼워져 있던 명함이 분명하다 .
ㅡ본문중에서 ㅡ
은희경 [ 중국식 룰렛 ] 중 < 장미의 왕자 >편 .
창비 ㅡ단편하게 책읽는 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