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교에 대한 인상을 정한 것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를 보고 막연하게
불교란, 고행, 고통을 잘 견디는 수행이라고.. 저런 것 이구나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책 속에서 [석가모니]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앉아 죽음을 맞
는데 그 죽음이란 뼈만 앙상한 것이였음에도 [해탈]이라 하여서 더욱 그랬지만
영화였나 드라마였나 그 뜨거운 불꽃을 살 위에 올려 놓고 견디는 걸 보며, 참
어렵게도 종교를 사는 구나 했었다. 돈을 주고 산다는게 아닌, 몸으로 세월로
산다는 그 의미 말이다.
뭐, 나야 카톨릭 세례자지만 마음은 빈(꼭) 절에 가 있는 , 좀 웃긴 사람인지라...
불교라는 것, 제대로 교리로 받아서 신앙을 알게 되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기초의 단계를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막연하게 알던 불교의 깨달음이란 것을
그것에 이르기 위해 나누어진 각 종파가 있다는 것 역시 이 책으로 알게 된 셈
이라고 해야겠다. 조계종이니 하는 건 알지만..그건 그냥 말만 아는 거였다.
감리교와 장로교 복음성교와 이런 교회들이 나눠져 있듯이 불교에도 그 가르침
에 여러 파가 존재한다는 게 참 신기하였다. 깨달음이란 때가되면 배가 고프듯
그냥 절로 오는 것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야 물론 절에 사니, 절로 오는 게
아주 그른 것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나, 참선을 통해
서, 수행하고 정진하라 말을 한다.책이야 읽었으니 스님들이 산방에서 세월을
어찌 보내는지야 알지만 자세한 가르침은 따로 없다. 내가 배움에 들겠다고 해
반야심경을 들 것도 아니고 해서 버릴 것 없는 말인 줄로만 알지, 어찌 해탈에
이르는 가는 알 수없는 노릇, 그런데 그러한 불교의 한 세계를 확 열어 뵈 준 것
이 바로 이 [철서의 우리] 가 되겠다.이 말이다.
1950년대 를 배경으로 도쿄 한 명혜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괴이한 살인
사건들 그 이면엔 바로 불교의 교파들이 밥그릇 싸움이랄 수있는 시궁창 같은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니 그들이 스님인가, 쥐로 화한 철서들인가, 우리안에서
저들끼리 아우성 치는 것이 , 요란하니......머릿 속엔 그간 나름의 세월 동안에
터득한 도력으로 마경이 그득해서 자만하기를 서로 자신의 가르침에 방식이 선
에 닿아 있다 우기는 형국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