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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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일본의 선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때는 불교도 전국에서 각자로 그 깨우침의 의미가 다른 전쟁의 한복판 이기도했다.

내가 불교에 대한 인상을 정한 것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를 보고 막연하게

불교란, 고행, 고통을 잘 견디는 수행이라고.. 저런 것 이구나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책 속에서 [석가모니]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앉아 죽음을 맞

는데 그 죽음이란 뼈만 앙상한 것이였음에도 [해탈]이라 하여서 더욱 그랬지만

영화였나 드라마였나 그 뜨거운 불꽃을 살 위에 올려 놓고 견디는 걸 보며, 참

어렵게도 종교를 사는 구나 했었다. 돈을 주고 산다는게 아닌, 몸으로 세월로

산다는 그 의미 말이다.

 

뭐, 나야  카톨릭 세례자지만 마음은 빈(꼭) 절에 가 있는 , 좀 웃긴 사람인지라...

불교라는 것, 제대로 교리로 받아서 신앙을 알게 되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기초의 단계를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막연하게 알던 불교의 깨달음이란 것을

그것에 이르기 위해 나누어진 각 종파가 있다는 것 역시 이 책으로 알게 된 셈

이라고 해야겠다. 조계종이니 하는 건 알지만..그건 그냥 말만 아는 거였다.

 

감리교와 장로교 복음성교와 이런 교회들이 나눠져 있듯이 불교에도 그 가르침

에 여러 파가 존재한다는 게 참 신기하였다. 깨달음이란 때가되면 배가 고프듯

그냥 절로 오는 것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야 물론 절에 사니, 절로 오는 게

아주 그른 것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나, 참선을 통해

서, 수행하고 정진하라 말을 한다.책이야 읽었으니 스님들이 산방에서 세월을

어찌 보내는지야 알지만 자세한 가르침은 따로 없다. 내가 배움에 들겠다고 해

반야심경을 들 것도 아니고 해서 버릴 것 없는 말인 줄로만 알지, 어찌 해탈에

이르는 가는 알 수없는 노릇, 그런데 그러한 불교의 한 세계를 확 열어 뵈 준 것

이 바로 이 [철서의 우리] 가 되겠다.이 말이다.

 

1950년대 를 배경으로 도쿄 한 명혜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괴이한 살인

사건들 그 이면엔 바로 불교의 교파들이 밥그릇 싸움이랄 수있는 시궁창 같은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니 그들이 스님인가, 쥐로 화한 철서들인가, 우리안에서

저들끼리 아우성 치는 것이 , 요란하니......머릿 속엔 그간 나름의 세월 동안에

터득한 도력으로 마경이 그득해서 자만하기를 서로 자신의 가르침에 방식이 선

에 닿아 있다 우기는 형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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