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비
김파 / 명문당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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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가 저항

 

날  밝기 전 새벽이었다

나의 소리가 날다가

돌벽에 부딪혀 강물에 떨어졌다

강바닥 조약돌로 숨쉬고 있는 의미를 누가 아는가

아이들 그물에 걸려든 잉어가

나의 비밀 진주로 토하고 있다

 

마른 하늘이 욕설 퍼붓고

흘러가는 뗏목들 속에서

가시 돋친 장미묶음 던져주고

죽은 돌멩이가 날아와 때린다

 

멍든 상처에 맺힌 이슬은

내 소리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눈물방울이 태양에 꽂혀

번짝이는 채광으로 눈 시릴 때

벌써 동방서점에서는

'소리'가 번갯불을 타고 있었다

 

p.42.43

 

 

언어 비결

 

나는 답답한 가슴 열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까만 미지의 가시에 찔려

응혈된 신음을 내뱉는다

사르트르와 아인슈타인 같은 선인들은

우주어를 몇 줄 번역했지만

그것조차 흙 속에 묻힌 사금파리다

 

풍우에 절은 허리를 가로타고 앉으니

태초에 추억을 숨쉬는 바다의 바위

바위는 말하고 있지만 귀에 담기지 않는 침묵의 언어

굴강한 존엄으로 바다의 포옹을 즐기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다는 파도의 철썩임으로

하늘을 갖고 싶다고 연모에 멍든

푸른 언어를 외치고 있는데

태양은 빛과 열로 시를 다듬어

만눌과 사랑을 대화하고 있다

 

물잎에 매달린 여린 이슬방울

하루살이보다 짧은 생이건만

눈부신 채광의 언어로 자랑한다,

작은 가슴이어도 우주를 담을 수 있다고

 

저기 하늘을 부채질하는 들나비

산곷 즐겨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밀어의 맛을 느낄 수 없다

참으로 모든 존재들은

자기 삶을 말하고 있어도

나는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비록 투명하시어

하느님 모습 뵈지 않지만

우주어의 백과사전 만드셨기에

모든 존재 속에 내배어

언어의 신경말초를 분포시켰으리라

존재언어의 비결

언제면 불처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을까

 

아마도 때와 함께 돌아가면 주인 되리라

다시금 흙으로 되돌아가야

나 역시 진실한 말로 되리라

 

p.47.48.49

 

 

나는 나 ,

겨우 하나 지탱하는 모자란 인간

나비 만큼의 인내심도 없는 ,

매미 만큼의 성량도 없는,

바다만큼의 넓은 무엇은 바다에

가서 청하라.

새삼 느낀다. 아주 부족한 내 마음을,

알량한 이해심을...

이 생은 그냥 이렇게 친구들로만 즐거이

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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