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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평점 :
꽤 가지런한 글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저 편지는 제게 온 편지 입니까? 짧은 찰나 잡아 채 주인 없을 편지(?) 를 내 것으로 낚아 버립니다.
편지
이곳은 오늘도 변함이 없어
태양이 치부처럼 벌겋게 뜨고 집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넋 놓고 살고 있습니다
탕진한 청춘의 기억이
간혹 머릿속에서 텅텅 울기도 합니다만
나는 씨익,
한번 웃으면
사나운 과거도 양처럼 순해지곤 합니다
요새는 많은 말들이 떠오릅니다,어젯밤엔
연속되는 실수는 치명적인 과오를
여러 번으로 나눠서 저지르는 것일 뿐,
이라고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적고 나서 씨익,
웃었습니다
언어의 형식은 평화로워
그 어떤 끔찍한 고백도 행복한 꿈을 빚어냅니다
어젯밤엔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행복한 꿈이었다 굳게 믿습니다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지만
이제 삶의 고통 또한 장르화하여
그 기승전결이 참으로 명백합니다
다만 어두움을 즐겨하기에
눈에 거슬리는 빛들에겐
좀 어두워질래? 타이르며
눈꺼플을 닫고 하루하루 지낸답니다
지금 이 순간 창밖에서
행복은 철 지난 플래카드처럼
사소하게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 아래 길들이 길의 본질을 망각하고
저렇게 복잡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의 페이지들이 구겨지면서
아이구야, 아픈 소리를 냅니다
심보선 詩
그의 시 p.134/135/136
꽤 가지런한 글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시인은 미상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가 r 에서
다소 할인된 금액으로 구해오고 다시 펴는 동안
그 미상인은 내가 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저 편지는 제게 온 편지 입니까?
짧은 찰나 잡아 채 주인 없을 편지,(?) 를
내 것으로 낚아 버립니다.
나는 오후에 늦게 늦게 늑장을 부려
윗층의 여인에 간단한 봉투를 건내었지요
하이얀 종이에 꺼묵한 글씨로
영수증 하고 쓰지 않았겠어요
실제 받은 것은 은행이지만 또 은행에서
은행으로 건너 갈 것이지만, 나의 이름을 써서
윗층여인의 이름자를 꼬박꼬박 집어넣어 가며
일련의 아라비아숫자들과 한글숫자들을 옮겨 적고
지난 5년을 윗층에서 날려준 개의 털과
이웃 집 누군가의 늦은 밤 코고는 소리마저
껴안은 듯 모두 같은 지붕아래가 아닌가
몇번씩 나의 천장을 확인하던 시간을
날짜와 년도와 이름과 금액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합니다
꽤 가지런한 글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윗층의 여인에 간단한 봉투를 건내었지요
날짜와 년도와 이름과 금액으로
영수증 하고 쓰지 않았겠어요
지난 5년을 정리합니다
슬픔도 없는 십오 초" 나 걸렸을 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