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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평점 :
시티 오브 걸스는 비비안이 그의 딸 안젤라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제 어머니도 돌아가셨으니 비비안 당신이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이야기 해달라는 그의 딸 안젤라.
처음부터 안젤라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책이 거의 끝나 갈 즈음에야 이 둘의 정체를 알려준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비비안의 인생을 그녀가 열아홉 살 시절일 때부터 차근차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알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인 비비안은 부잣집의 조신한 숙녀로 자라길 바랐던 부모의 바람대로 바사 여자대학교를 입학해서 다닌다. 하지만 비비안은 학교생활이나 학업에 전혀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전 과목낙제를 해 (362명 중 361등) 결국 학교와 부모에게 쫓겨나다시피 뉴욕의 페그 고모에게 가게 된다.
비비안은 조신한 숙녀가 아닌 있는 집 불량한 딸이었던 것이다. 모범생 오빠와는 늘 비교당하며 살아왔고 그나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모리스 할머니에게 배운 바느질과 재봉틀을 이용해 옷을 만드는 것뿐이다
뉴욕에 도착해 페그고모의 릴리 플레이하우스 3층에서 지내게 된 비비안은 1940년대의 뉴욕에서의 생활에 푹 빠지게 된다
동갑내기 친구 셀리아와 함께 첫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장난감 사듯 놀이처럼 해버리고 말았지만 어찌 되었든 지나가버렸다. 비비안의 처음은 끝났다.
그 해 여름은 밤마다 술을 마시고, 남자를 찾고, 남자를 만나고, 경험하는 그런 나날이 반복되었고 그런 크고 작은 모든 방황들을 셀리아와 함께 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에드나와 아서가 릴리 플레이 하우스에 왔다.
에드나를 만나기 전에는 섹시한 셀리아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에드나, 그녀의 멋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아우라 같은 것이었을까? 에드나에게 푹 빠진 비비안은 멋진 바지와 재킷 그리고 쇼트커트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른스러운 여성의 멋짐이 폭발하는 에드나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재킷이 잘 어울리는 아담한 사이즈의 멋진 중년 여성이라니.. 대충 이미지가 상상이 되었다.
그녀의 멋진 소품과 의상들에 홀딱 빠졌을 19살의 비비안도 함께..
에드나의 등장과 동시에 그녀에게 빠져버린 비비안처럼 나도 함께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멋진 중년 여성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 쇼핑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 에드나처럼, 어떻게 저런 생각을... 너무 멋져~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에드나였는지 모르겠다.
페그는 에드나가 릴리에 머무는 동안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을만한 공연을 제작하기로 하고 그 공연이 바로 '시티 오브 걸스'다
대본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결국 공연 준비에 전남편 빌리까지 합세하게 되고 비비안은 공연 의상을 담당하게 된다.
안 풀리던 대본도 빌리의 손이 닿으니 일주일 만에 재미있는 코미디 공연이 완성되었다. 신은 빌리에게 돈과 외모와 재능을 몰아주셨나 보다. 성실함만 빼놓고..
빌리와 함께 하자 공연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오디션을 진행하고 남자 주인공도 뽑는다.
드디어 막이 오른 ‘시티 오브 걸스’
빌리가 불러 모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공연의 평을 경쟁하듯 신문에 써올렸고 흥행은 대 성공이다
그리고 그날 밤... 일은 벌어지고 말았고 비비안은 그토록 사랑했던 그와 에드나에게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좋아하고 따랐던 에드나의 비수가 되어 날아온 한마디
"넌 뻔한 여자야. 넌 특별할 수 없어, 넌 흥미롭지 않아.“
너무나 우아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에드나는 그렇게 비비안을 부모 곁으로 보내버렸다.
그녀의 1년간의 시골 생활과 전 약혼자 짐 라슨이 함께한 그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결말까지 전쟁이 그들의 사랑과 삶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비비안의 약혼녀였던 짐 라슨은 예의 바르고 좋은 남자일 줄 알았는데 도망갈 구실을, 그럴듯한 이유를 찾고 있었고 전쟁을 이용할 줄 아는 남자였다.
비비안의 처녀성에 놀라고 자신은 괜찮다며 달래주는 척하더니, 괜찮다더니 겉과 속이 다른 남자였다니..
그런데 비비안의 후련해하던 속마음이 내게는 더 와닿았다. 짐 라슨과 전쟁이 자신을 구원했다며 오히려 결혼을 피해가는 행운을 자신이 얻게 되었다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가 왜 우리는 눈앞에 아픔과 타인의 시선들만 신경 쓰고 사는 걸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비안은 성장하고 있었다.. 성숙한 한 명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비안을 찾아온 페그 고모와 다시 시작된 뉴욕 생활
많은 걸 약속하지만 서면 약속은 절대 안 하는 빌리는 모든 걸 가지고 떠났고 비비안은 페그와 해군 공창에서 공연을 하며 올리브의 말이 맞았음을 실감하며 살아간다.
살다 보니 그것이 가장 값비싼 교훈이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우리는, 비밀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치유되지 않은 오랜 상처로 이루어진 몸뚱이로 이 세상을 부유하게 된다.
그 모든 고통에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단다. P.425
전쟁이 끝난 후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릴리 하우스도 무너졌고 비비안은 마조리와 함께 웨딩드레스 사업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
고객을 상대하고 늘 새로운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생활이 불안한 신부들을 안심시키며 비비안은 결혼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섹스 라이프를 예전처럼 즐겼으며, 나름 달라졌다면 유부남과는 절대 관계하지 않는다는 그녀만의 규칙은 세워놓고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이다.
비비안의 인생에서 그녀를 구원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짐 라슨과의 파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이슨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계속 궁금한 것들이 생긴다.
페그와 빌리 그리고 올리브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까?
빌리는 능력 있지만 자기 멋대로에 즐거움만 쫓는 남자인데다 페그를 돌보지도 않고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는 세상 나쁜 남편이었을 것 같고 올리브는 너무 헌신적이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올리브가 질색할까?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싶었는데..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비비안의 첫 남자친구라고 해야 하나 그와의 연애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을 때 에드나의 한마디..
더 쉽게 설명해 줄게, 비비안.
최악이었던 내 전 남편, 그 끔찍했던 감독이 내게 늘 했던 말이 있어.'
원하는 대로 살아. 하지만 공연을 망치기만 해봐.'" P.248
너무 멋진 에드나가 짧은 출연이 나는 내내 아쉬웠다,
세월이 흘러 빌리도 죽고, 비비안의 아버지도 죽고, 그렇게 궁금해했던 셀리아의 모습은 스치듯 한번 볼 수 있을 뿐이었고, 그리고 페그도 죽게 된다.
이쯤 되면 도대체 안젤라가 누구의 딸인지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안젤라가 누구이길래 비비안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이렇게 다 해주는 것일까?
책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밝혀지지 않다가 마지막까지 읽어야 그녀가 누군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무척 즐겁고 흥미롭게 1940년대를, 그 시절의 뉴욕을 살아간 비비안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서나가는 삶을 살아간 그녀를 통해 어느 시대에서든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편하지 못했음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하다.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시대를 보고 사람을 보고 변화를 보게 된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그 시절엔 왜 그렇게 큰 문제처럼 느껴졌었는지.. 이 책을 보며 나의 20대를 다시 한번 추억하고 그리워해 보게 되었다.
뭘 하고 싶냐고? 바로 이런 걸 하고 싶지!
배우들과 마티니를 마시고, 브로드웨이 가십을 주워듣고,
여자처럼 보이는 남자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거!
사람들의 대단한 섹스 라이프에 대해 전부 알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작 이렇게 말했다.
"좀 둘러봐야죠! 뉴욕을 즐기고 싶어요!" ...... P.53
하지만 에드나가 타고난 최고의 재능은 바로 따뜻함이었다.
에드나는 눈앞의 모든 것에 기뻐했고 그래서 사람들도 그 기쁨을 누리려고 그녀 곁에 있고 싶어 했다.
보통은 무서운 표정인 올리브도 에드나 앞에서는 흔치 않게 즐겁고 기쁜 표정으로 변했다. ..... P.143
"절대 대충 만든 싸구려 장갑은 사면 안 돼. 돈은 그렇게 아끼는 게 아니야.
장갑을 사야 할 일이 생기면, 한 짝을 택시에 두고 내렸을 때 얼마나 상심할지 생각해 봐.
그럴 것 같지 않으면 사지 않는 거야.
너무 아름다워 잃어버리면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은 장갑만 사렴." ...... P.155
"미묘한 문제란다, 비비안.
너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되겠지만 그 미묘함이 사실 전부야.
널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지금 배워 놓는 게 나을 거다.
대부분의 결혼 생활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고 그저 연옥과 같은 애매한 상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존중받아야 하고. 빌리와 페그는 서로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어. ..... P.215
더 쉽게 설명해 줄게, 비비안.
최악이었던 내 전 남편, 그 끔찍했던 감독이 내게 늘 했던 말이 있어. '
원하는 대로 살아. 하지만 공연을 망치기만 해봐.'" ...... P.248
"내가 지갑이 터지도록 돈을 채워줄게." ..... P.269
"기억해요. 관객들은 오늘 밤 여러분을 미워하려고 온 게 아니라 사랑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페그와 나는 온갖 관객을 위해 수천 편의 공연을 함께 만들었어요.
덕분에 관객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알지. 관객들은 배우들을 사랑하고 싶어 해요.
자, 그러니 케케묵은 조언을 하나 합시다.
여러분이 먼저 관객들을 사랑하면 관객들도 당연히 여러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무대로 올라가 관객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푸세요." ..... P.273
살다 보니 그것이 가장 값비싼 교훈이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우리는, 비밀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치유되지 않은 오랜 상처로 이루어진 몸뚱이로 이 세상을 부유하게 된다.
그 모든 고통에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단다. ..... P.425
"너무 지쳐서 그래, 비비안. 하지만 저 아이를 너무 사랑해.
가끔은 그래서 내가 부서져버릴 것 같아. 이게 아이들의 비열한 계략일까?
이렇게 엄마들이 자기 삶을 망치게 만들어버리나? 너무너무 사랑하게 만들어서?" ..... P.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