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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평점 :
평전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비범하고 무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단어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생과 업적 그리고 그 삶에 대한 평가까지 내용에 들어가다 보니 뭔가 저자의 주관적인 입장이 많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또한 그렇다. 평전 작가로 유명한 츠바이크가 유난히 발자크의 평전에 가장 큰 공을 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얼마나 발자크를 애정 하는지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여느 평전들처럼 지루하고 딱딱하기보다는, 발자크의 매력이 듬뿍 느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마치 내 눈앞에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며 재미있게 전달해 주는 이야기꾼을 한 명 만난 기분이랄까?
전에 읽은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또한 저자가 발자크를 30년 동안 연구하고 쓴 책이라고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책도 츠바이크가 아끼고,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지 않으면 발자크의 삶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내지 못했으리라.
이 책은 발자크의 전 생애를 총 6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는데 발자크의 어린 시절, 작업하는 발자크, 그가 삶으로 쓴 소설, 소설가로서 발자크의 영광과 비참함, 마지막 환상의 시간, 그리고 그의 최후로 나누어 자세히 알려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 생계를 위한 글쓰기, 사랑꾼의 면모, 귀족에 대한 집착, 한스카 부인을 향한 17년간의 사랑과 결혼, 제네바에서의 추억, 그리고 그의 작품들... 발자크 삶의 모든 것이 한편의 소설과 같다.
나이차 많이 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 망상 주의자인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아들을 괴롭히는 역할을 놓지 않았는데, 발자크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조금은 상상이 가는 부분이었다.
발자크 창작의 원동력은 영원한 빚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생계를 위해서 싸구려 소설을 쓰고 자유를 얻으려고 사업을 일으켰다가 몽땅 망하기도 했다. 빚을 갚고, 삶의 안정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작가라는데 어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발자크에게 펜과 종이, 그리고 커피는 분신과도 같은 것들로서 커피가 식도를 타고 위로 넘어가야 그의 몸뚱이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에게 커피가 검은 석유였다는 비유가 정말 찰떡이지 싶다.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글을 썼다는 발자크는 5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끝마치게 되는데 그의 짧은 수명은 글을 쓰기 위해 매일 마시던 많은 양의 커피와 과도한 노동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발자크는 베르니 부인과의 사랑을 시작으로 점점 여자들을 알아가며 남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서른을 바라보던 그가 다브란테스 공작부인과 짧게 사귀고, 또 다른 여인 쥘마 카로의 진정성 있는 조언에 늘 감사하며 그녀와의 우정을 이어나간다. 천재성이 넘쳐나지만 속물근성을 억누르지 못했던 발자크는 귀족 숭배병을 버리지 못했고, 더 높은 세계로 올라서기 위한 갈망이 평생 그 자신을 괴롭게 했다. 발자크와 카스트리 부인과의 만남, 그의 낭비벽과 허세 가득한 생활들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돈과 커피 허세 많은 인간 발자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어갔다. 위인이라 느껴지기보다는 너무 현실적이라 내 주변에 있을 것만 같아서 더욱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전에 읽었던 발자크 책이 그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 거라면 이 책은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 보인다. 발자크의 작품이 무척 많은데 아직 못 읽어본 게 태반이라 여유 있을 때마다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그의 삶과, 인간적인 매력에 깊이 빠질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알쓸인잡의 김영하 작가가 그토록 사랑한 작가가 왜 오노레 드 발자크인지, 왜 강력 추천인지 읽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