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만화책을 보다 '이슬비'라는 이름에 꽂힌 적이 있었다.

'아 나도 같은 성인데 저런 이름을 가졌다면 저 만화의 주인공처럼 여리여리하고 긴 생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아빠한테 왜 내 이름은 이렇게 흔하디흔한 이름으로 지은 거냐며 생떼를 쓰기도 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단 말이 있으니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왠지 나랑은 안 어울렸을 이름인데 사춘기 시절 그때는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이름 중 하나였다.

이 책 [가벼운 마음]의 주인공 뤼시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으려나?

뤼시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바꿔가며 가출을 하고 어른들을 속이던 어린 시절과, 기숙학교에서 성녀와 마녀가 공존하는 중학교 시절을 보낸다.

그녀의 첫 남자 로망은 있는 집안의 법학도였고, 그가 뤼시를 만나는 건 미래의 공증인이 될 아들의 스쳐 지나갈 바람 정도라 쉽게 생각하는 그의 부모들의 눈빛까지 읽어내는 뤼시가 안쓰러웠다. 결혼을 감방이라 표현하는 뤼시의 엄마도, 웨딩드레스도 없이 시청에서 3초 만에 끝나버린 로망과의 결혼도, 그리고 이제는 마담 케르보크가 돼버린 뤼시의 이름도 모두 그녀 인생의 한 부분이다.

로망과의 결혼생활, 식어가는 애정, 그리고 뤼시의 바람과 그 사실을 안 이후로의 로망의 글이 변하는 과정까지 3년의 기다림은 무척 긴 시간이다.

티타티티타티, 타타티타타티. 남은 건 캐리어 3개, 가방 2개뿐이다. 그녀의 삶에서 결혼은 한 번이면 충분했고, 뭔가 홀가분하고 가볍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뤼시를 상상해 본다. 파국으로 치닫는 연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뤼시의 모습을 말이다.

주인공 뤼시를 제멋대로인 자유영혼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렇게 자기 맘대로 다하고 살아도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가, 자신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꾼다거나, 결혼이나 인간관계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그녀가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 타인의 생각보다 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만 읽다가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시인이 쓰는 소설은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할지 기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시작부터 글들이 춤을 춘다. 소설의 문장들을 이렇게 곱씹어가며 다시 읽어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가장 위대한 기술은 거리두기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불타오르고, 너무 멀면 얼어붙는다.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유지하는 법을 법을 배워야 한다. 그건 현실 속의 모든 배움처럼 비용을 치러야만 배울 수 있다. 알기 위해서는 대가를 내야 한다. p.145

너무 공감하는 문장 중 하나였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의 기술이라는 건 절대 그냥 배울 수 없는 스킬이니까 말이다. 이걸 세 살 반 때 알아버렸다는 뤼시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것도 시간을 읽는 법을 배우다 깨달았다니 말 다 했지 뭔가.

역시나 크리스티앙 보뱅의 감성은 날 다시 한번 푹 빠져들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고, 그의 글은 한 번 읽는 걸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늑대와 첫사랑에 빠지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소녀의 이야기 [가벼운 마음]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는 넘쳐나지만 오늘도 발전하고 있을 나를 위해서, 누구보다 즐거울 나를 위해서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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