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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2 ㅣ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평점 :
스파이를 주제로 한다고 하면 뭔가 스릴 넘치고 긴장감에 손에 땀이 흠뻑 적셔져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을 갖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존 르카레의 소설은 확실히 그런 긴박감이나 스피디한 액션신이 난무하는 스파이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뭔가 고상하고 우아하고 좀 더 월급쟁이 느낌의 정보요원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더욱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정보력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강대국에서 스파이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 아닐까?
실마리 하나만으로 끈질기게 추적하고, 집요하게 쫓아가며, 엄청난 돈이 오가고 심장이 쫄깃해져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돼서 일관된 무표정으로 현장을 누비는 스파이의 세계를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오너러블 스쿨보이 두 번째 이야기가 막이 오르고, 기자인 척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며 온갖 정보를 끌어모으고 현장에서 두발로 뛰는 제리의 활약이 드디어 시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1권의 표지엔 안경이, 2권의 표지엔 신발이 그려져 있는데 읽기 전엔 어떤 의미인지 모르다가 읽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두뇌파 스마일리의 안경과 발로 뛰는 제리의 신발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라는 개인적인 해석 정도로 말이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세세하게 설명되는 것도 존 르카레의 스타일인듯하다.
뭐랄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중요한 인물처럼 느껴지진다고 할까? 뭔가 나중에 어떤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데 작가는 무척 정성 들여 인물들을 설명해 준다.
돈 세탁이 되어 홍콩으로 흘러들어간 거액의 비자금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역추적하던 제리는 리카르도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고 돌아오는 길에 동양식 수법으로 차는 폭발했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갈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하다.
제리가 집착하는 여인 리지는 스파이의 곁에 있는 미모의 본드걸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뭔가 여우 같지도 팜므파탈의 느낌도 아닌 그냥 삶에 지쳐있는 여인의 느낌으로 내게는 다가왔다. 자신의 삶에 그리고 그녀를 지나간 남자들에게 지쳐버린 여인으로 말이다.
넬슨에게 집착하는 드레이크 코, 리지에게 집착하는 제리,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의 대의를 위해 이용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이어지며 씁쓸하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해지면서 회의감에 젖어드는 제리의 모습도 뭔가 뭉클하고 말이다.
1970년대에 쓰였으니 50여 년이 지난 소설이다.
이념, 사상을 포함해 그 시절과는 많은 것들이 변한 지금 읽어도 뭔가 사람에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첩보소설이다. 스파이라는 세상을 겉에서 바라보는 게 아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소설[오너러블 스쿨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