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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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판 이은해라 불린다는 스미다 미요코가 주범인 아마가사키 사건을 알게 되었다.

2012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사건으로 주범이 고령의 여성이었고 많은 희생자들이 있어 화제가 되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희생자들이 모두 일가족인데다가 스미다 미요코 본인은 전혀 손을 쓰지 않고 타인의 손을 통해서만 살인을 실행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너는 나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해', '네가 애를 낳으면 나에게 줘야 해' 등 그녀는 여왕벌이었고 그녀의 패밀리에는 엄격한 서열이 존재했으며 그녀의 말을 아무도 거역하지 못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런 이상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이었을까? 가스라이팅? 공포? 세뇌? 괴롭힘? 조종??

그게 어떤 것이었든 가족에게 스며들어 모든 것을 빼앗고 무너뜨린 그녀는 악마가 아니었을까?

사립학교인 미쓰미네 고등학교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만큼 학기 중간에 전학 오기란 입학시험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전학생이라니 눈길 이 갈 수밖에 없다. 남색 차이나 칼라의 이가 고르지 못한 전학생 시라이시 가나메를 선생님의 부탁으로 떠맡듯이 학교를 안내하는 반장 미오는 칭찬받고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게 익숙한 모범생이고 이제는 착한척한다는 친구들의 말도 익숙하다. 미오의 안내를 침묵으로 일관되게 무시하던 시라이시가 딱 한마디 내뱉은 한마디는 "오늘 집에 가도 돼?"였다. 이게 자신의 집에 돌아가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는 말인 건지 설마 미오 집에 가도 되냐는 말인 건지 아리송하다.

전학생이 위험하다 느낀 미오는 선배와 상담을 하고 평소 멋지다 생각했던 선배와의 관계는 한 단계 발전하게 되는데....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첫인상만 보고 쉽게 판단할 수도 없으며 이웃, 동료, 가족, 친구 그 누구도 신뢰가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미스터리와 호러가 섞여있고 약간 퇴마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이상한 힘들이 나오진 않는 그런 일상 속 공포다.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구성원이 사라지면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로 채우고,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그들은 늘 우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일본에서는 타인에 대한 괴롭힘을 뜻하는 말을 '00하라'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세쿠하라, 파와하라, 마타하라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어봤을 테지만 콕 집어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운 불쾌감이나 공포를 '야미하라'라고 표현했고, 이 책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야미하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 속에서 우리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그들은 특별한 힘을 쓰지 않는다. 단지 말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속삭일 뿐이다.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 상담을 해주고, 내 편이라고 느끼게 해주면서 과한 친절을 베풀며 가면을 쓰고 가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주변에 스며든다. 초반에 이야기한 아마가사키 사건의 스미다 미요코나, 최근 우리나라의 이은해 사건, 그리고 이 책 야미하라의 그 가족들처럼 말이다.

책을 든 순간 놓지 못하고 한 번에 다 읽어 내렸다. 작가의 첫 장편 미스터리라는데 500페이지 가까운 책의 마지막까지 지루함이라곤 1도 없는 데다 일상 속 내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하니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요즘 이 책 야미하라를 만나보길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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