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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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아아 아~울고 싶지만 울지 않을래 울지 않을래 힘차게 살아야 해]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 머리 앤 괴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어릴 적에 만화영화를 보며, 주제가를 따라 부르면서도 항상 궁금했었다.

내가 좋아하던 개구리 왕눈이, 들장미 소녀 캔디, 소공녀 세라, 빨강 머리 앤 등 모든 만화영화의 주제가 가사들이 울면 안 되고, 웃어야만 하고, 실패 따위 두려워하지 않으며,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한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나도 씩씩하게 살아야지 생각하며 가슴속에 조그마한 다짐들을 새겨 넣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왜 울면, 좌절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고 좌절할 만한 상황에서도 울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들이 신기했고, 힘든 문제들에 닥친다면 다 포기하고 도망갈 것 같은데 만화 속 주인공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게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모르는 바보 같아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난다.

낙천적인 것과 낙관적인 것은 유의어로 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결이 다르다.

주관적인 내 생각을 바탕으로 표현하자면 낙천적이라는 것은 타고난 성향을, 낙관적이라는 것은 살면서 배우고 경험하며 생겨난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책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속 주인공 캉디드는 낙천적인 성격에 낙관주의를 배워 자신의 삶에 입힌 사람 같았다. 책을 읽으며 어쩜 한 사람에게 이런 몹쓸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게다가 어떻게 금세 그런 일들을 잊고 지금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 어이도 없었고 이 정도면 바보 천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마 무시한 사건들에 막 화를 내다가 풍자소설임을 다시 한번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는데, 잔인한 일들이 벌어짐에도 순박함의 대명사 캉디드는 그런 일들도 최선일 것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퀴네공드와의 입맞춤 한 번에 낙원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고, 불가리아 군대에 납치당해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의 괴로운 일들을 당하고, 그렇게 믿고 따르던 팡글로스도 어이없게 교수형에 처한 데다, 어럽게 다시 만난 퀴네공드와의 결혼도 맘대로 되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돌았으며, 퀴네공드 오빠의 방해를 헤쳐나가면서 결국 결혼에 성공하지만 그 결혼생활마저 행복하지가 않다. 이 정도면 신이 캉디드를 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든 생을 살아가던 그도 결국 낙관주의를 조금씩 버리게 된다.

리스본 대지진이나 종교재판과 같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쓰여서인지 시궁창같이 더럽고 잔인한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한 나라의 공주였던 노파의 불행과, 배를 갈리고도 살아나 지난한 삶을 이어갔던 퀴네공드의 이야기를 보며 여성들의 삶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물건처럼 대하고, 사회적 위치라고 할 것도 없이 여성들을 하찮게 여겼던 그 시대가 소름 끼쳤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나는 등장인물들과 철학적인 고민을 계속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들의 주변인들을 통해 다양한 상황과, 생각의 변화, 철학적 견해들을 이야기하는 볼테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무엇이 맞고 틀린 지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낙관주의를 일관하며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고 믿었기에 그 험난한 일들도 버틸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틀리다 할 수 없고, 조금 더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틀리다 할 수 없겠다.

볼테르는 무척 가볍고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그 내용은 한없이 무겁고 철학적이다.

그는 캉디드와 마르틴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세상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고,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는 낙관주의도 함께 가져야 함을, 무엇이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문득 요즘 시대에 판치는 가짜 뉴스가 떠올랐다. 스스로 분별력을 키워 절대적으로 믿지 않고 골라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을, 그 시대나 지금의 독자들에게 볼테르는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260여 년 전의 작품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생각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하는 점들이 내가 고전문학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 책은 그러한 고전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처음 읽는 볼테르였지만 그의 철학과 풍자적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넓힐 수 있어 즐거운 독서였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이렇게 또 한 권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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