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바퀴벌레는 지구가 멸망해도 생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사라져도 바퀴벌레는 지구에 남아있겠구나 생각하며 씁쓸해했었다.
바퀴벌레가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데, 하물며 쥐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세상을 자기 발아래 놓으려 한다는 이야기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되어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혼자 별 상상을 다했더랬다.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가는 속도는 내 호기심만큼 빨랐고 역시나 2권 또한 많은 이야기와 함께 내 상상력을 불타오르게 했다.
2권은 명언 제조기 바스테트 엄마의 말로 시작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전조란다.]
모르는 것도 없고 생각의 깊이는 철학자 저리 가라 정도에다 통찰력까지 지닌 바스테트의 엄마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다 간 것일까? 궁금해졌다.
프리덤 타워의 인간이나 고양이 모두 희망을 잃고 마약에 빠져들게 되었고, 아들인 안젤로의 권유로 바스테트도 시도해 보게 되는데, 안되는 줄도 알고 마약의 단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점점 커지는 불안감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맞닥뜨리는 현실이 엉망이고 힘들어 현실도피를 선택한 방법은 역시나 대가가 따랐다. 구토와 환상 그리고 지독한 두통까지 ....
그리고 폴은 여전히 티무르와 쥐들의 상황을 알려오지만 그가 어떤 생각인지 의심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임신한 집사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하는 고양이라니 뭔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는데, 현실이 그대로 묻어나는 베르나르의 이야기들은 쉽게 말하는 듯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연애와 성격차이 임신과 낙태, 결혼과 결혼생활의 유지 그리고 이혼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게 말이다.
인간들은 바스테트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소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듯하면서도 무시하고 우습게 보았다. 그녀는 103번째 고양이 부족의 대표로 인정해달라 요구했고 약속도 받아냈지만 인간들은 그저 바스테트의 능력을 이용하기만 했고 그들의 삶에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인간들의 정치놀음에 바스테트가 놀아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실험동물로 살아온 티무르가 인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고, 그의 복수심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인간이라 좀 더 인간의 입장에서 책을 읽은 것일까? 티무르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문명]에 나왔던 돼지와 소들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단지 티무르의 감정이 사소한 원한이라기보단 좀 더 거대한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도만으로도 인간인 나의 한계인 듯 해서 무력감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