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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무늬 상자 ㅣ 특서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6월
평점 :
뭔가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면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괜히 애틋한 감성에 빠져들고 즐거워져 청소년 문학을 즐겨 읽는다.
사춘기 시절 학생들은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중고등학생들에게 어른들은 인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에 있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세상에 나와 맞닥뜨리는 현실은 너무 무섭고 막막한데 말이다.
[붉은 무늬 상자] 이 책에서는 자녀의 아토피, 왕따, 공인의 인성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책 속 학교 내 왕따로 인한 한 여고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옛말에 여러 사람이 한사람 바보 만들기는 쉽다는 말이 있는데 누명 씌우고 몰아세우면 죄가 없던 사람도 죄가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말일 터 여울이의 이야기가 딱 그런 셈이다.
딸아이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은사리로 이사를 오게 된 벼리의 가족, 그리고 산골의 '이다 학교'로 전학을 온 벼리, 어느 날 엄마와 발견한 나무로 뒤덮인 폐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다준다.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한 폐가에 엄마는 왜 갑자기 꽂힌 건지 벼리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혼자서는 결심한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하나하나 직접 집을 꾸미겠다는 엄마의 곁에서 사진을 찍으며 집의 변화를 블로그에 올리던 벼리는 붉은 무늬 상자를 하나 발견하게 되고 그 상자를 열면서 알게 되는 진실에 많은 고민이 시작된다.
엄마가 말해주는 이 집의 비밀 한 가지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란 말에 왜 그렇게 이 집을 고집하고 사려고 하는지 더욱 엄마가 이해되지 않지만 같은 처지라 생각하는 친구 세나와 함께 비밀들을 파헤치기로 한 벼리는 한껏 더 용감해지고 있었다.
붉은 무늬 상자의 주인은 강여울이라는 여고생이었고 벼리가 그 상자를 열면서 여울이의 이야기도 세상 밖으로 함께 나오게 된다. 그녀의 비극이 담긴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펼쳐보며 벼리와 세나는 그녀의 죽음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왜 여울이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주변의 그 누구도 도움이 될 수는 없었는지, 소문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진실이 드러나는데 늦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가해자들도 너무 뻔뻔한 얼굴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듯이 누군가는 용기를 내고, 또 누군가는 힘을 쏟아야 될 일이다.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서 엄마가 이 집을 고집했던 이유도 알게 되고, 그 집을 누구든 와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로 변화시킨 벼리의 가족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뭐든 엄마인 내 마음처럼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건강이라든지, 아이의 교우관계, 공부나 책 읽기 등등 무엇이든지 말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성공과 좌절 그리고 실패에 대한 모든 것들을 엄마인 내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벼리 엄마처럼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어른으로서 많이 들어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대, 30대를 지나 이제 40대를 살아가는 내가 용기를 낼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보았는데, 내 일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용기 낸 경험은 거진 없었지 싶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10대 소녀들이 얼마나 용감했는지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서야 깨닫다니 아직 '나도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수많은 어른들이 귀찮아하고, 외면하고, 침묵을 고집할 때, 그 아이들처럼 자신의 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행복이 넘실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작은 용기가 물거품으로 시작되어 큰 파도로 변하고, 커다란 바위를 힘껏 때릴 수 있도록 어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념들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