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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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살인.

두 가지 모두 살아가면서 경험할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뉴스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소재들로만 알고 지내며 관심도 없었다가 한 TV프로그램을 통한 미국의 마약 유입과 거기에 큰 영향을 끼친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내용은 실로 충격이었는데,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었다는 게, 아니 현실이 더 비참하고 괴로웠단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건 축구와 미남미녀, 남미의 열정과 위태로운 치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가 그들의 현실과 역사에 한발 자욱 정도만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는데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의 차이가 엄청나게 변화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남미 문학도 찾아보다 최근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발간된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라는 책을 나보다 더 책을 사랑하는 지인을 통해 선물 받아 읽게 되었다.

일반 책과는 다른 스타일의 전개와 이야기 흐름이 뭔가 할아버지가 '라떼는 말이야~~, 옛날엔 이랬었어."라며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서 괜히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잘나가던 시절, 자신의 젊은 시절, 그땐 그랬지 ~라며 추억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인 나 '페르난도'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그가 내 아이라 부르며 사랑한 알렉시스와의 이야기는 좋은 시절이라기보다 너무 처절하고 아픈 이야기였다.

마약왕이 무법자로 군림하던 시절의 청부 살인자 '시카리오'는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었겠지만,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 정부에 의해 살해된 이후에는 그마저도 벌이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돈벌이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그것도 한참 어린 10대 소년들이 하는데,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처럼 총알을 사서 그냥 죽인다. 택시 기사가 라디오를 끄지 않아서, 길 가다 어깨가 부딪쳐서, 검문하려는 군인들도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진 않다. 사람의 목숨에 가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나'와 알렉시스가 개를 하천에서 구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힘들게 물에서 건져주고 보니 엉덩이 쪽을 많이 다친 개는 희망이 없어 보였고 '나'는 그 개를 고통 속에 두지 말고 죽이라고 말했고 알렉시스는 죽일 수 없다며 애원하던 장면이었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이야기다.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알렉시스가 개를 죽일 수 없다며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 사람의 목숨과 개의 목숨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렉시스의 그 행동에서 아직 글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는 젊은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 같은 가치관 확립도 되지 않은 그 어린 소년들이 왜 이런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고 슬퍼서 한참을 울었다.




작가가 '나'를 통해 이야기하는 콜롬비아는 길 가다가 사람이 죽거나 누군가의 살인 현장을 목격해도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 치안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하루하루 살아내기 벅찬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 말이다. 사이사이 작가의 신랄하고 냉정한 풍자와 일차원적이라 느낄 만큼 단순해서 슬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유머가 콜롬비아의 현실을 더 와닿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범죄로부터 경찰들이 시민을 지켜주고, 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도덕적인 잣대가 확고한 그런 곳인데 무법지대와 같은 콜롬비아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인지 책으로나마 조금씩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소설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독자마다 다른 평과 감동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남자와의 사랑이 불편할 수도 있을 테고, 영화보다 비참한 현실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질 수도 있고, 화자의 말투가 다른 책들과 달라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마음과 생각이 움직임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새로움을 발견했고, 불편함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았고, 비참한 현실에 눈을 가리기보다 좀 더 정확히 알고 한걸음 더 다가가기를 택했다. 그리고 너무 무더워 에어컨 없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요즘 우리나라보다 서늘한 날씨의 콜롬비아를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더 다양한 종류의 남미 문학을 접하고 싶다는 희망도 생겼다.

나처럼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더없이 좋을 책, 새로운 화법과 작가의 유머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책, 다가오는 무더운 여름을 조금은 시원하게 보낼 수 있기에 제격인 책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과감하게 추천해 본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완독한 독자들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그녀 지인 선물도서입니다]

책 속 인상 깊은 문장


▶ 내 인생의 줄거리는 부조리한 책과 같아. 그러니까 먼저 나와야 할 것이 나중에 나오지.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이미 쓰여 있었어. 나는 단지 우유부단하게 한 장 한 장씩 실천에 옮기고 있었을 뿐이야. p.23

▶ 콜럼비아의 법은 불처벌이 원칙이고, 범죄자이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은 바로 대통령이야. p.27

▶ 그들은 죽인다는 동사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 대신 동의어를 사용하지. 그들은 수많은 동의어를 사용해서 그 말을 해. p.36

▶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야! 무언가를 촬영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카메라를 훔쳐 가버려. 그렇지 않으면, 콜롬비아에서 무슨 영화를 만들어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은 영원히 떼어 놓은 당상이거든! p.87

▶ "각자 자신의 별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넌 몇 개의 별빛을 껐을까? 네가 가는 속도로 너는 하늘을 죽일 거야." p.102

▶ "조심해! 페르난도!" p.119

▶ 가난의 유전자는 그것보다 더 심해, 더 지독해. 10000명중에서 9999명이 확실하게 자기 아이들에게 전해져. 여러분은 그런 나쁜 유전자가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유전되는 것에 동의해? p.155

▶ 그때서야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있던 걸 깨달았어. 그건 내가 한량없이 피곤해 잇으며, 명예 따위는 눈곱만큼도 중요하지 않고, 나한테는 무처벌이나 처벌이 똑같은 것이며, 복수는 내 나이에 하기에 너무나 큰 짐이라는 사실이었어.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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