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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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2021년 코로나와 휴직 기간이 맞물리며 집안에서 생활하는 여유시간이 늘어나자 나는 책을 선택했더랬다. 그전까지만 해도 책은 시간을 내서 여유를 만들어야 함께할 수 있다 생각했었기에 '책이 좋아'라고 말은 하고 다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었다. 그러다 침대맡에도 책, 거실에도 책, TV를 보다가도 책을 볼 수 있게, 틈만 나면 책을 잡고 아무 데서나 읽을 수 있도록 주변을 책으로 쌓기 시작했다.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출할 때마저 책을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괜히 불안했다. 물론 그렇다고 많은 양을 읽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눈이 책을 따라가고 습관적으로 손이 책을 집을 수 있도록 내 생활패턴을 바꿔주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고, 내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걸 잘 못했었는데 그들의 생각도 그럴 수 있다며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살짝 낯설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친구 삼으면서 스스로의 변화를 느끼게 되자 더 빠져들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도 읽고, 신간도서들도 읽고, 상 받은 책들도 읽으며 무언가 마구잡이인듯하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독서습관을 찾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글의 유형, 내 가슴을 때리던 글귀들을 간직하게 되면서 작가들에 의해 드러나는 새로운 사고방식들이나 지식들도 알아가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는 그렇게 찾게 된 나의 최애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대문호의 글을 내가 판단하다니 주제넘었지만 나는 유독 헤르만 헤세의 글이 좋았다. 그의 신념과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생생하게 묘사된 글들을 읽다 보면 뭔가 사랑과 평화가 내 맘에서 뿜뿜 솟아나는 느낌이랄까?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가슴속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라 내게는 헤세의 글이 성경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가 그만의 감성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는 사실 만으로 말 다 한 책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이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의 개정판으로 그의 책과 독서에 대한 생각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재를 청소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책을 소장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헤세에 빗대어보기도 하고,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하여,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의식을 확장시켜주는 세계문학과 교양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택해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그 깊고 넒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총체와 더불어 활발하게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 삶이 그저 최소한의 생리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닐진대,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다. 독서로 정신을 '풀어놓기'보다는 오히려 집중해야 하며, 허탄한 삶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거짓 위로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독서는 우리 삶에 더 높고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 p.142

고개를 끄덕끄덕, 공감백배~~라며 읽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엉덩이가 너무 가볍고, 필력이라곤 없으니 절대 이렇게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좋은 책 많이 읽고 살자며 다짐한다. 특별히 나에게 와닿는 작품들을 찾아 따라가는 것, 각자의 길을 찾아 사랑 가득 걸어가는 것, 억지로 끌려서가 아닌 내가 원하고 끌리는 책을 읽는 것 등 다양한 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헤세가 너무 친절하다. 오랜 세월 책을 벗 삼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고, 책을 사는 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받은 듯해 괜히 기분이 좋다. 그저 책을 구입해서 소장하고 읽었을 뿐인데 출판계에 큰 획을 긋는 업적을 이룬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는 글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훌륭한 작품들을 골라 읽을 줄 아는 진정한 교양인'이라고 헤르만 헤세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뿌듯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책 속에서 헤세가 추천해 주는 책들이 꽤 많다.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최대한 멋지고 완벽한 전집을 들여놓으라 하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죄와 벌], [백치]는 꼭 챙기라면서도 밀턴의 [실낙원]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패스하라고도 한다. 미국 문학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 하나 정도와 스페인의 [돈키호테]도 꼭 있어야 한다고 한다. [걸리버 여행기]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에 대해서는 아일랜드의 천재라 칭송하며 입수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모으라고도 한다.

여전히 나는 넷플릭스로 못다 본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하지만 책에 대한 욕심도 버릴 수가 없다. 계속 사서 모으고 읽으며 책장을 이고지고 살겠지만 다른 거 없었다.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여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야기 나누는 게 좋고, 책과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즐겁다. 앞으로도 이렇게 책과 함께 살아가겠지 생각한다.

헤세 특유의 은유와 아름다운 문장들로 책을 이야기하고, 번역과 소장 욕구에 대해서, 원문으로 보면 더욱 좋을 이야기들과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 쏟아내고 있다.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과 소장하고 싶은 책이 많아지는 신기한 '책이라는 세계'다. 수준 높은 독서능력을 지니고 양서를 골라볼 줄 아는 사람이든, 아니면 나처럼 무조건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책을 좋아하는 책쟁이들이라면 많이 공감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으니 꼭 한 번씩 읽어보길 감히 추천해 본다. 모두의 삶이 조금씩 변화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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