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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 - 지속 가능을 위한 비거니즘 에세이
손수현.신승은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3월
평점 :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고기를 좋아한다.
비건, 채식주의 이런 건 생각지도 않으며 살아온 육식 인생 40여 년이다.
식당가서도 잘 안 사 먹고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을 정도로 대식가들이라 주말마다 집에서는 고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고양이 주인님들과 함께하게 되면서 뭔가 괜히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돼지, 닭, 소, 고양이 모두 동물이라 묶어서 생각하다가 고양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소, 돼지, 닭은 가족이 아니라서 먹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에 고기 먹는 우리를 바라보는 레오, 코코의 눈빛에서 원망을 읽어내기도 했던 것 같다.
[고기 먹고 온 사람 손~ 동물 먹고 온 사람 손~] 들어보라는 책 속의 에피소드가 왠지 가슴에 쿵 하고 와닿았다.
고기라고 생각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동물이라고 하니까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은 뭐지? 싶어서 말이다.
나란 사람은 가슴은 채식인데 입과 뇌는 육식이다. 심장이 입맛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어 뭔가 본능적으로 사는 동물 같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소하고, 심심하고 촉촉한 맛을 가진 두부는 우리 아들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한창 자라는 시기에 소고기를 안 먹어서 철분이 모자랄까 걱정하며 키웠는데 뒤돌아보니 부족한 영양소의 빈자리를 두부가 채워주고 있었던 것 같다. 빈혈도 없이, 울 아들을 건강히 잘 자라게 해준 고마운 음식 중 하나가 두부인데 나는 맛이 없고, 밍밍하고 텁텁한 식감인 두부를 싫어한다.
언젠가 먹어보았던 콩고기도 너무 맛없었던 기억이 뇌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선지 내게 채식은 그냥 싫은 것이었다.
느리게 조리하는 음식들, 탈까 신경 쓰며 뒤집어주고 곁을 떠나지 않고 요리해야 하는 음식들 대신 빠르게 완성되는 비조리식품이랑 완제품을 구입해서 먹기가 더 편했다. 내게는 남이 해준 음식들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명절마다 우리 집은 상에 올리려고 하는 음식이 아닌 온전히 식구들이 그냥 먹으려고 늘 배추전을 부쳤다.
큰 배추를 한 잎씩 떼어내고 부침가루를 개어놓은 물에 담갔다가 구워내는 건데 어찌 보면 아무 맛도 없을지 모르는 그 부침이 나는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었다. 한 번씩 생각이 나서 나 혼자 부쳐먹으면 절대 그때의 맛이 나질 않는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야'라는 말이 왜 난 배추전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걸까?
큰 배추를 한 잎씩 떼어내고 부침가루를 개어놓은 물에 담갔다가 구워내는 건데 어찌 보면 아무 맛도 없을지 모르는 그 부침이 나는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었다. 한 번씩 생각이 나서 나 혼자 부쳐먹으면 절대 그때의 맛이 나질 않는다.
손수현과 신승은은 이 책에서 그냥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의 관점이 아닌 왜 자신들이 비건을 하고 있는지 삶의 방향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가고 잡게 된 건지에 대해서 편안하게 말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덕분에 채식을 시작하고 단계를 거쳐 비건이 되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그녀들의 손이 보이지 않지만 내게도 조금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비건의 음식과 자신들의 밥상을 소개하려고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들의 생각과 삶 속으로 범위가 넓혀졌고 먹고사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녀들의 고민을 조금이지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건을 시작한 동기는 어찌 되었든 간에 이후 생각과 삶의 방향과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도 변화하는 걸 직접 느끼게 된 그녀들이 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도 그녀들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 명이 되었으니 어쩌면 그녀들은 성공한 글쓰기를 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단지 먹는 건데.. 이렇게 철학과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다가 읽는 동안 조금씩 깊게 생각하는 내 모습이 새로워지는 책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