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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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먼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많은 이야기에 늘 헷갈렸었다.

결혼을 해라, 애도 낳아봐라, 하다가 어느 순간은 그냥 혼자 살아라~, 결혼을 뭐하려고 하느냐, 라며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의 충고가 오히려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행복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잘했다 싶기도 하고, 잘못된 결정 같기도 한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리라.

불확실한 미래지만 그래도 남들에게는 행복하게 보이고 싶은 본능이 크게 작용했는지 마구마구 시댁 흉을 보다가도 마무리는 그래도 난 행복하다로 끝이 나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왜 그렇게 사는지 몰랐었다.

[석류의 씨] 작가 이디스 워튼은 순수의 시대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섬세한 감정 표현과 시대별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이 무척 인상 깊었다. 편지, 빗장 지른 문, 석류의 씨, 하녀의 종 이렇게 4편의 단편이 실린 [석류의 씨]는 '여성과 공포'라는 주제로 출간된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중 한 권인데 한가지 주제로 묶어서 발표하는 시즌제 도서라니 더욱 흥미가 생긴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여성들의 선택과 후회, 갈등, 그리고 허세까지 모든 감정들이 그려져 있어 왜 첫 시리즈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편 지]

제발 그 남자를 버리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라고~~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다.

2년째 가정교사로 일하는 리지 웨스트는 빈센트 디어링 씨의 딸인 줄리엣을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찾았을 뿐인데 갑자기 입맞춤이라니 이런 초스피드 전개 보소~~라며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고구마가 목구멍에 얹힌듯한 이 기분을 어찌해야 할지...

헤어지고 만나고 하면서 쌓인 감정을 사랑으로 느껴서 결혼까지 한 것인지, 못 했던 걸 해냈다는 정복감같은 걸 느낀 것인지, 실망을 해도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나로서는 절대 이해가 안 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궁금해하며 따라갔던 단편이다.

[빗장 지른 문]

휴버트 그래니스는 희곡을 쓰고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간절함을 가지고 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삶은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하고 지루함뿐이라 지치고 짜증만 난다.

뜬금없이 본인의 지난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 그래니스는 믿어주지 않는 이들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고, 삶을 그만 끝내고 싶지만 또 죽을 용기는 없어서 남의 손을 빌리고자 한다.

지루한 삶을 벗어나 감옥으로 도망가고 싶은 건지 왜 자꾸 자신의 죄를 믿어달라고 하는 걸까.

자신의 삶은 실패했다 생각하고, 간절함을 뛰어넘어 집착같이 느껴지는 희곡도 마음 같지 않은데 유일하게 성공한 일이 살인이라서 그렇게 증명하고 싶어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석류의 씨]

샬럿 애슈비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케네스 애슈비와 결혼 후 몇 달에 걸쳐 집을 바꿔나갔다.

샬럿은 그를 무척 사랑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그 회색 봉투의 편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뭔가 불안해진다.

그 회색 봉투를 보고 달라진 남편의 시선이나 하얗게 질려 당황하는 표정과 두통들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린 것일까?

발신인은 분명 여자인 듯하고 남편의 과거의 인연인듯해서 샬럿은 더욱 불안하다.

불안이 그녀에게 의심을 갖게 하고 결국 샬럿은 케네스의 편지를 뜯어보자고 마음먹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

숨어있다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는 케네스의 행동을 관찰하다 못 참고 따져 묻기 시작하고 남편은 편지를 보여주기는커녕 누가 보낸 것인지조차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후 지옥에 갇혀있다가 제우스와의 서약을 깨고 먹은 유일한 음식이 석류 씨 몇 알이다.

왜 이 단편의 제목이 석류의 씨였을까? 금단의 열매 같은 느낌이었을까?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거나 뜯어보지 말아야 할 편지를 뜯는 것처럼 말이다.

계속 대답을 피하는 남편과 뭔가 알면서도 말을 돌리는 시어머니는 왜 그러는 것인지​ 읽는 내내 답답함이 목을 뚫고 올라올 뻔했다

[하녀의 종]

장티푸스를 앓고 난 후 쇠약해진 몸은 점점 더 살이 빠지고 직업을 구하기도 힘이 들어 생계가 걱정이었는데 내 사정을 들은 레일턴 부인이 조카딸인 브림프턴 부인을 소개해 준다.

크고 음침한 집에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인 주인이라니 썩 좋은 일자리는 아닌들 해도 나는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찜찜한 마음이 크지만 우선 출발하고 가서 생각하자!

괜히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저택은 예상보다 괜찮았고 요리사와 하인들은 유쾌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여인이 자꾸 내 눈에만 보이기 시작한데다 하인을 부르는 안주인은 벨을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집안의 가장인 브림프턴씨를 좋아하는 이들은 없지만 부인의 독서 짝꿍인 랜퍼드씨는 모두가 좋아한다.

일은 힘들지 않았고 마님과 하인들 모두 친절했지만 뭔가 계속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도대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왜 그러는 것일까?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고 활기를 잃어간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공포스럽고 신비한 분위기의 낭만주의 소설 양식 중 하나인 고딕소설은 18~19세기에 유행하였다. 뭔가 기괴한 분위기의 이야기들이 독자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으스스 한 공포를 선물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책 [석류의 씨]는 고딕소설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결론이 어떻게 되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왜 이러는지 등장인물의 속내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4편의 단편을 읽는 동안 수백 번 명치가 꽉 막히고 목구멍이 답답하고 두통까지 힘들었다.

재미가 없단 말이 아니다.

이디스 워튼의 섬세한 필력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끝까지 덮지 못하게 하지만 내 상상력이 한계가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가 이해도 안 되고 뒷장면이 상상도 되지 않아서 더 안달내하며 읽었던 것 같다. 두려움의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읽게 만드는게 더 대단하지 않은가?

모두 다른 색깔의 공포물을 쭈욱 읽어갈 수 있게 쓴 작가 이디스 워튼의 단편 모음집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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