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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평점 :
요리코의 불행의 시작인 줄 알았던 도라 아저씨는 그녀의 삶에서 나타나는 불행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사건은 요리코가 살면서 받게 되는 모든 부당함들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물론 그땐 몰랐겠지만...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의 요리코와 현재의 요리코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변하게 된 건지 말이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는 순간 요리코의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은 바로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났던 친오빠 아라타였다.
과거 요리코의 오빠가 죽었다 살아왔는데 차라리 죽어버리지 왜 살아난 거니라고 속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앞에서 쓸모없는 것은 죽어야 한단다. 불고기 전골을 마지막 식사로 떠나며 아빠가 남긴 트럼프 카드를 그냥 가지고 놀았는데... 내 추리똥촉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너희는 앞으로도 아빠 때문에 힘든 일을 많이 겪을 거야.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라. 그것들은 절대 평범한 일들이 아니라는걸. 아주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들이지. 너희는 아직 아빠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런 일들이 닥쳐도 절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P.55
읽다 보니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들 투성인데 그걸 당연시하고 살아가는 요리코의 이야기에 자꾸 화가 난다.
가해자의 가족인 아오이와 피해자 중 하나인 요리코의 만남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밀어붙이고 남은 안중에 없는 독고다이 아오이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삶의 희망 따윈 버린 지 오래된 요리코의 만남 후 둘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사건을 조사하러 다닌다.
악질 엄마와 정신병 딸의 이야기가 어떤 흡입력이 있길래 요리코가 남의 집까지 들어가서 읽게 만드는 건지 궁금해져서 나도 읽고 싶어졌다.
요리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이 소설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되면서도 소설 속 소설이라 힘들겠구나 생각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별책부록 [악질 엄마 vs 정병 딸]이 실려있다. 진짜 작가님이 내 마음을 읽으신건가 꼭 읽어보고 싶다 생각한 연재소설을 부록으로 넣어주시다니! 정말 오승호 작가님 센스 너무 사랑한다.
아빠가 떠나는 날 주었던 트럼프 카드의 비밀, 사유리와 지팡이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탈출을 계획하는 요리코 일행의 이야기도 조금씩 밝혀진다.
오빠 아라타의 결정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 와중에 분노를 조금씩 알아가는 요리코와 리쓰카 그리고 이럴 리 없다고 백부를 믿고 따랐다는 마사에의 독백이 정말 충격의 연속이다. 게다가 마사에의 정체를 알게 되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툭 던지듯 반전이라니... 미쳤다 진짜. 또 한 번 경악과 충격이다.
연재소설의 00 00 00이라는 여섯 글자는 요리코와 리쓰카에게 희망이었고, 통증이 돌아오고 아프면 분하다는 걸 알게 된 요리코는 복수를 계획한다.
이 책은 내가 처음 읽는 오승호 작가님의 책이다. 블랙스완이나 하얀 충동을 관심만 주고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작가님 정말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듯이 불행과 부당함 같은 어둠들을 이야기한다.
살짝 유머도 섞어가면서 말이다. 이런 슬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듯한 글로 읽다 보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던 나 자신을 콩~ 쥐어박고 싶을 정도다.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스토리와 위트 있는 문장들이 독자들은 즐겁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들이 아니다.
통증 스위치를 끌 수 있다는 요리코, 일반적인 상식들이 이해되지 않는 요리코, 가족에 대한 사랑 따윈 없는, 늘 폭력이 일상이었던 요리코의 삶이 너무 처절하다.
종교, 이단, 가스라이팅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줄줄 이어진다.
마음이 여리고 정신 상태가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철저히 짓밟고 이용하고 내다 버린다.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거니까...
길들인다는 표현을 어린 왕자에서 처음 알게 된 나로서는 이로카와의 길들임에 치가 떨린다.
정상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엄마는 악질 엄마였고 요리코는 정신병 딸이었다.
요리코가 그렇게 연재소설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감정이입과 공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요리코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과 법률들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함을 알려준 지팡이 할아버지의 존재는 실로 대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 띠지에 적혀있던 충격 경악 통쾌라는 문장이 너무 와닿았다.
그런데 조금 더 통쾌했으면 좋겠다. 요리코가 더 분노를 느끼고 더 많이 복수해 주면 좋겠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배려를 배워버린 요리코는 돌아서버린다. 이런!!!
나는 아직 덜 배운 사람이라 용서보다는 복수에 꽂혀있나 보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뒷이야기가 또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고, [악질 엄마 VS 정병 딸]도 소설로 나오길 바라며 외전과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잔뜩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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