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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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명사] : 1.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네이버어학사전]

그렇다면 비순수는 섞임이 있고 못된 생각이 있단 뜻이 될까?

제목이 순수와 비순수인 책이다. 뭔가 극단적일 것 같고 순수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책의 첫 머리에 이 책의 원제는 '이 쾌락들...'이었고 그 제목을 순수와 비순수로 바꾼 것이라 한다.

콜레트의 첫 남편은 그녀의 글만을 사랑했고 작가로 성장한 시기인 30대에 만났던 사람들과 인터뷰 같기도 한 그들과의 이야기가 이 책으로 엮어졌다

"관능에 관한 인류의 보물 같은 지식에 내가 개인적으로 기여하고 싶어."

개인적으로 샤를로트와 돈 후안이라 불린 다미앵과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아편굴 속 사람들을 보며 모두 나쁜 짓을 하는 곳에서 나만 안 한다면,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 곳에서 나만 제정신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본다. 20대 시절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꼭 한 명씩은 술 안 마시고 맨 정신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맨정신에 술 취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재미있었을까라는 옆길로 빠지는 나의 생각들.

샤를로트의 젊은 애인인 '나의 소년'을 보며 저건 사랑인지 모성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감정의 상태를 알기가 어렵다. 샤를로트는 자유란 좋은 거지만 자신은 자유의 몸이 아니라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의 소년과 쾌락의 시간도 보내고 하고 싶은 거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유의 몸은 아니라니...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안 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 뭐 이런 건가?

뭔가 그들의 세계를 내가 모두 알고 이해하기는 솔직히 어려웠다.

잘생긴 외모에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고 운동으로 단련된 몸매에 예의 바른 행동으로 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자인 다미앵 역시도 거드름을 피우고 여자를 많이 만났다는 경험담을 허세 부리듯 떠벌리는 그냥 평범한 남자다.

화자와 거침없이 편안하게 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남자들. 그 남자들의 성개방성이 불편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들의 여자에 대한 편견과 시선은 불편하다.

"이리 오세요, 진짜 당신을 찾게 해 줄게요..."

"나는 이거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에요!"

"나에게 없는 건 찾는다고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p.98

동성애, 성 정체성, 자웅동체라는 단어들..

사람들은 모두 양성의 특징을 모두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성이 가진 남성성, 남성이 가진 여성성들이 겉으로 표출되지 않을 뿐 밖으로 표현하는 성특징만 한 가지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남성성은 언제 튀어나오더라?

큰 소리를 지를 때,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뜬금없이 나오는 용기 있는 목소리나 아들을 혼낼 때??

내가 여성적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성적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데...

좋고 나쁘고 와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각각의 특성일 뿐.

그들을 나의 괴물들이라 부르던 콜레트는 이렇게 말한다

"괴물들이여, 날 혼자 두지 말아요... 당신들에게 다만 혼자 있는 두려움만을 고백하겠어요. 당신들은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든든한 분들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괴물들'이라 부른다면, 내게 부여된 이 이른바 정상적인 상황은 뭐라고 부를까요? 보세요, 벽에 비친, 두려움에 떠는 어깨의 그림자를, 넓은 등의 표정과 피가 몰린 목덜미를... 괴물들이여, 날 혼자 두지 말아요..." p.188

이 책은 대표적인 LGBT 문학작품으로 꼽힌다고 역자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중에 그들의 취향이나 정체성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성소수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틀리지 않았다고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이다.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이 책이 내게는 그녀의 첫 작품이다.

-사람들은 [순수와 비순수]가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임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작가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한 작품을 첫 작품으로 접한 나는 행운아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많은 생각들에 머리가 터져나갈 뻔했다.

콜레트는 그들의 다름과 겉모습이 아닌 속내와 상처와 상실감들에 집중해 글을 쓴 듯했고 나는 책을 통해 그들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따라갈 수 있었다. 역시 최고의 프랑스 작가란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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