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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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8가지의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우리에게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한 조남주 작가의 신간도서다.

처음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봤을 때도 어쩜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알까 싶었는데 이 짧은 이야기들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생생함이, 그리고 평범함이 느껴진다. 엄마이자 딸이자 손녀인 내가 이 책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었다.

 

치매 할머니 금주 언니를 보며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랐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손자 승훈은 우리 오빠였다. 작가 초아와 은사님 혜원 그리고 우리의 학창 시절 모두가 공감하는 학생주임도 그렇다

어쩜 여자라는 존재들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 힘들게 살며 버티고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했을까?

이야기 속의 여인들도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이름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인정받지 못하고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무척 치열하다.

 

한 편 한 편이 모두 소중한 이야기다. 이야기 속 삶들이 하나하나 모두 그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한 가지 무척 맘에 들었던 점은 여인들의 삶이 치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열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미스김도 그랬고 현남오빠에게 편지를 보낸 나도 그랬다. 그리고 손자 안 봐준다며 당당하게 오로라를 보러 떠난 지혜 엄마인 나도 그랬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찝찝함이 아닌 후련함과 시원함이 가슴속에 남았던 것 같다.

 

72세 아버지의 가출로 인하여 다 같이 모인 집에서 청국장을 먹으며 떠올리는 남매들의 각기 다른 기억들이 재미있다. 막내딸 시집가기 전까지 지켜주신다더니 못 참고 나가버린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아버지도 본인이 살아있음을 간간이 카드 메시지로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버지는 가출 후 행복할까?

승훈은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는 삶인지 해답을 찾았을까? 미스김이 알고 있던 건 어떤 것들이었을까? 나에게 [새의 선물]을 빌려준 사람은 그럼 누구였을까? 현남오빠는 그 후에도 순종적인 여자를 찾아 결혼할까? 오로라는 얼마나 멋있을까? 요즘 아이들의 사랑은 마스크를 타고 오는 것일까?

 

 

내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쓰여있어서 작정하고 감정이입해서 온갖 생각을 하고 의문을 가지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누군가는 아니 모두들 소리 내어 말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인상 깊은 문장

 

 

동주야.” “동주라고 불러 주니까 좋다.” p.19

 

그러나 나는 내 경험과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p.79

 

하나만 묻자. 너 나 사랑은 하니?” “가족이 화목하면 됐지 꼭 사랑까지 해야겠어?” p.127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190

 

내가 끼니로 빵에 잼을 다 먹는다. 수십 년을 아침은 무조건 밥, 국인 줄 알았는데. 이래서 사람은 늙을수록 젊은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살아야 해. 나도 안 그랬으면 이 맛을 모르고 죽을 뻔했잖니.” p.207

 

그랬겠지, 무려 20년 전에.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해해 줘야 한다,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다, 그러는 사람이 됐어. 여자애들이 성적 떨어뜨리려고 남자애를 꼬신다, 그런 한심한 소리 나 하는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p.293

 

마스크였다. KF94 중형 마스크 다섯 개. 서연은 청혼반지라도 받은 듯 손이 떨렸다. p.318

 

 

*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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