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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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기를 쓰나요? Do you keep journalS?

스스로에게 솔직한 편인가요? Are you honest with yourself?

 

이 책은 총 열한 개의 일기로 쓰여 있다

일기라고 되어 있지만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글 같은 형식이다

 

극도로 현실적인 사람인 의사 남편은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아프지 않고 그냥 약간 히스테리를 부릴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직 휴식만이 나를 낫게 할 거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존은 그게 자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가 있을 때라도 스스로를 제어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너무 피곤한 거야. P.31

 

나는 신중하고 다정한 남편이 나의 모든 것을 보호해 주는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그리고 한 글자도 끄적이지 못하게 하는 그 때문에 답답하다. 신경쇠약일 뿐이라고 남편은 나의 증상을 무시하지만 나는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의욕도 없다

새로 이사한 집의 벽지가 나를 잡아먹는 것 같다. 처음엔 바꿔주겠다던 남편이 이제는 이겨내라 한다.

남편은 실리적인 사람이다. 짧게 살 집에 돈을 쓰는 선택은 하지 않겠다 한다. 내가 이 집에서 건강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전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생각대로 결정하고 일을 밀고 나간다

 

벽지가 나를 쳐다봐. 마치 제가 내게 미치는 악영향을 모두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벽지 무늬에는 반복되는 부분이 마치 눈동자 같아.

징그럽게 뒤집힌 둥글넓적한 눈이 모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축 늘어진 채로 나를 노려봐. 끊임없이 계속되는 그 무례한 눈빛에 나는 몹시 화가 나. 맹랑하게 부릅뜬 눈은 온 천지에 있어. 위로, 아래로, 사방으로,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이고 기어 다녀. 두 폭의 벽지가 만나 어긋나는 곳이 있는데, 그 선을 따라 위로, 아래로 움직이는 거야.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보다 약간 높이 있는 상태로 말이야. 무생물에서 이토록 풍부한 표정을 본 적이 없어. 그들이 얼마만큼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잖아! p.48

 

책에 묘사된 글을 보면서 마치 내가 신경쇠약에 걸린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벽지에 대한 시선과 감정들이 무척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0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는 글을 읽고서 무척 피곤하다. 그리고 우리 집 벽지에 무늬가 없는 것에 정말 감사해했다.

누렇고 비가 오는 날에는 눅눅한 악취까지 나는 그 누런 벽지를 통해 작가는 점점 심해지는 증상을 시간순으로 나열해놓았다.

특히 마지막 열한 번째 일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 책은 수년간 자신을 괴롭히던 불안과 신경쇠약으로 전문가를 찾아간 저자가 전문가로부터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고 두뇌활동을 제한하라는 처방을 받고 그 말대로 살다 오히려 더 망가져가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안되겠다 싶어 그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게 되며 좋아지는 걸 느끼자 쓰기 시작한 글이다

 

[파멸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것을 기뻐하며 [누런 벽지]를 썼습니다.]

 

이 글이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문학의 힘을 보여준 좋은 예시로 평가받고 누군가 작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구해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작가를 진단한 그 전문의도 이 글을 읽고 신경쇠약을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기 시작하였다니 정말 놀라운 성과가 아닐까?

 

그 시대 여성의 인권이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아내와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소통했다면, 아내가 원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들어주었다면, 아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못내 안타까웠다.

현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런 벽지에게 삼켜질지 모르니 말이다

 

* 해당 도서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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