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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신경숙 작가의 책은 무척 오랜만이다
내 기억으로 '모르는 여인들' 이후 처음인듯한데 거의 10년 만인가?
'엄마를 부탁해'도 좋았는데 이제 아버지라니 얼마나 내 눈물을 빼려고 하는 것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엄마와 아빠라는 존재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린 나는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솟구쳤다.
병원에 입원하러 집을 나서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남색 점퍼만 기억에 남아 있는 아버지는 딸이 쓰다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집으로 보내면 다 챙겨서 보관하고, 키우다 보낸 애완동물(개, 고양이, 앵무새 등)도 돌봐주고, 자녀들의 학사모 사진에 집착한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내 눈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아버지도 눈물이 많아졌다.
아 버 지......... 그냥 맘이 짠하고 우리 아빠가 저렇게 작은 분이셨나 싶은 생각이 들어 요즘엔 뒷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꼭 팔짱을 끼고 옆에 서서 걷는다.
- 나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p.69
-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p.70
- 아버지는 어느 날의 바람 소리, 어느 날의 전쟁, 어느 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 날의 폭설,
어느 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p.76
어린 시절 눈망울이 똘망 똘망 했던 귀엽던 이삭이가 농사를 밥벌이 삼으면서 많아진 백로도 싫고, 개체 수가 늘어나 농사를 망치는 생명들이 밉기만 하다고 하소연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그 앞에서 여유 부리며 낭만을 생각했던 헌이는 괜히 부끄럽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이야기를 무척 현실감 있게 들려주던 고모를, 아버지를 닮은 여동생을 유난히 이뻐했던 8년 전에 돌아가신 고모를 찾는다. 갑자기 아버지는 왜 고모를 찾으실까 싶어 놀랐지만 티는 내지 않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새벽 집에 들렀던, 죽기 전까지 모든 결정은 아버지의 편에 섰던 고모와 아버지는 둘만의 유대감이 있었겠지.
모시고 간 병원에서 '자꾸 왜 물으요?' 라면서도 대답을 다 하시던 아버지, 자식들 몰래 홀로 치매 검사를 받아봤다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눈물이 났다.
열다섯에 송아지를 키우며 코뚜레를 처음 걸었을 때의 이야기, 전쟁을 겪으며 징집되지 않기 위해 오른쪽 검지를 잃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냥 눈물이 흘렀다. 그깟 선크림이 뭐라고.. 내 아들의 얼굴에만 선크림을 챙겨 발라준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라 내가 아버지의 선크림을 챙겨본 적이 있던가 싶어 또 한 번 뭉클했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책 속에 여동생과의 대화중 '아버지들은 다 그런데.. 엄마라서 그랬을 거야'라는 말이 너무 와닿아 가슴팍에 박힌다.
별것 아닌 듯 툭 뱉은 말일 텐데 아버지들은, 엄마라서 다 그런 거란 말이 왜 그리도 애달프게 하는지..

리비아에서 근무한 큰 오빠와 주고받은, 맞춤법은 다 틀리고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아버지의 글이, 처음엔 짧게 쓰다가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책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아들이 엄마 왜 울어? 슬퍼?라고 옆에서 안절부절못한다
같은 자식이고 형제 남매지만 서로도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결혼하며 소 일곱 마리를 사주었던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괜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을 터. 그 시절 장남이란 아버지와 친구처럼 한 집안을 함께 끌어가는 가장이었다. 그 무게를 동생들한테까지 주고 싶진 않아 말하지 않았겠지.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에게 미안해하고, 장남은 부담을 느끼면서도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할 도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 가족의 굴레와 무게가 어느 정도일지 나는 잘 모르지만 그 시절엔 모두 다 그랬었지라는 생각으로 넘겨짚어본다
첫째의 가족에 대한 부담, 둘째의 빠른 눈치, 셋째의 철없는 반항과 효심, 넷째의 관망, 다섯째 이삐의 가족 사랑과 챙김, 막내의 아버지 사랑이 모두 다르듯이 기억도 모두 다를 터.
아버지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둘째의 이야기는 큰 형과는 다른 또 다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고, 정다래 여사의 여섯 아이의 아버지이자 남편에 대한 기억은 정이고 사랑이고 원망이다
모두가 다른 시점과 추억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지만 결국에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과 후회가 함께한다.
나이 든 아버지가 계시는 집은 어쩌면 돌아가야 할 곳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삶에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었다. 아버지가 바로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자식들을 건사하는, 자식들 걱정 끼치기 싫어 아픈 것도 병원 다니는 것도 비밀로 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삶이 너무 애처롭다. 무엇이 아버지를 잠 못 드게 하는 것인지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의 뇌는 무엇을 추억하고 생각하는 것인지 우울감까지 겪고 있을 아버지가 마음 쓰인다.
글을 읽는 내내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가, 외할아버지도 생각났다가 한다.
그 시절 가정을 책임지며 살아온 가장이자 아버지인 그들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다가 나어릴 적엔 어땠었는지 추억했다가 하며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콧등이 찡하고 눈은 시큰거리고 마음은 무겁다.
한참을 그 여운에 힘들어하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광주에 계식 친정엄마와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나는 늦지 않았기를, 부모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기를 빌어보았다.
살아냈다는 아버지처럼 나도 자식 덕분에 살아내게 될까? 이 책은 화자가 나였고 모든 자식들일 거라 생각한다.
독자를 이렇게 빠져들고 감정이입이 되도록 소재에 글을 쓰는 작가님이 대단하다 다시 느껴졌다.
이 책은 사랑이고 후회고 눈물이다. 아버지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가 보고 싶은, 부모가 그리운 모든 이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