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안 쓰고, 얻어 쓰고, 더위와 추위도 견디면서 소소한 물건에 갑부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엄마와 하나미가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물론 집주인 아줌마와 그의 아들 겐토도 하나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타 학교 교복을 얻어온 집주인 아줌마와 착시현상을 이용하자며 계속 움직이며 다니면 된다는 엄마의 유머에 엄청 웃었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씁쓸함이 여운처럼 남았다.
“엄마도 다 늘어난 팬티를 어떻게든 달래가며 끝까지 입다가 드디어 때가 돼서 새 팬티를 입으면 진짜 기분이 째진다니까. 정신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야. 그럴 때 역시 돈이란 참 감사하다고 절실하게 생각해.----P.15
하나미는 중학교 입학 후 처음 사귄 새 친구 오하라 사치코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하나미가 사치코의 집에 가져가려던 엄마가 아껴둔 쿠키와 금잔화 다발에도 엄마와 집주인 아줌마의 변변찮아도 마음이라는 둘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통용된다는 점에 무엇에 홀린듯 다른 말에도 적용해보았다.
이런한 현실에 짜증도 낼 법한데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하나미의 성격이 너무 어른스러워 조금 어리게 굴어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안쓰럽기까지 했다. 상황이 어려워 더 어른스럽게 빨리 커버린 거겠지 싶어서 말이다.
사치코의 집에 도착해 온갖 부를 눈으로 보게 된 하나미에게 사치코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 할머니용 사진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사치코를 보며 부자라서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과 둘이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그림도 그려졌다.
겐토와 야스타카의 이야기는 스포가 될지 모르니 따로 내용을 적지 않겠지만 그 둘의 그 시절 감정이 온통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듯해 먹먹했다.
드디어 나타난 엄마의 엄마는 해골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와 모녀 일상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해버렸다.
엄마의 무서운 엄마는 어쩜 저리 뻔뻔할까? 하지만 또 그들 나름의 사연이 있었고 관계마다 감정선은 절절했다. 그리고 하나미 인생의 중요한 장면마다 나오는 기도 선생님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끼친 영향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번째 단편 신이시여 헬프는 일찌감치 신의 아들로 살기를 결심한 하나미의 친구 이야기이다. 가족의 반대에도 흔들리지 않은 그였지만 오랫만에 만난 하나미에게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렇게 사제의 길을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마지막 오 마이 브라더는 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형과 패러렐 월드에 사는 듯한 형에 대한 이야기.. 과연 기도 선생님의 형은 이 세계에 다시 나타날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18세 고등학생이다.
18세라니, 내 나이 절반도 안 되는 나이의 작가가 어쩜 감정을 이렇게 글로 편안하게 적을 수 있는지 놀라울뿐이었다. 꾸미지 않고 심플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감정들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어렵게 돌려 말하지 않는 대화들이 내내 가슴을 후빈다.
담담하고 편안하게 상황별 정리가 무척 단순한 듯한데 각 등장인물의 감정들은 너무 뚜렷해서 오히려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였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탈고를 크리스마스 칠면조라 비유한다. 궁지에 몰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그녀가 궁지에 몰려 이 작품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엄마의 엄마는 순수한 하나미의 시선을 따라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16살 소녀가 되어있었다.
태양은 언제나 외톨이야 라고 말하는 하나미의 가슴 속에 할머니는 결국 어떤모습으로 남게 되었을까?
신이시여 헬프와 오 마이 브라더는 보너스 같은 느낌의 즐거운 단편이었다. 짧은 이야기들 속에 많은 감정을 즐겁게 녹여낸 작가의 능력에 놀라고 나도 모르게 울고 웃고 있는 모습에 한번 더 놀라게 되는 작품이었다.
엄마와 사춘기 딸이 이렇게 살갑게 지낼 수도 있구나 싶어 사춘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직접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