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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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우의 집'은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가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또래 아이들과 늘 어울려 다니며 뛰어놀았던 제가 살던 그 동네는 삼벌레 고개로 따지면 중턱 마을쯤 되었으려나요?

어린 제 기억에 동네 아줌마들은 늘 모여서 밤을 까는 부업을 하거나 늘 모임을 했었고, 여자아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나 공놀이를 하며 늘 같이 어울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계모임을 하는 순분이네의 모습이나 스파이 놀이를 하는 원이와 은철이의 일상이 낯설지 않더군요.

순분이네로 세 들어 이사 온 영, 원이네 네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고 시기하는 삼벌레 고개 기존 여인네들의 모습을 보며 같은 여자들의 질투가 가장 무섭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봅니다.

책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새댁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뎅사먹을 돈도 아끼는 새댁과, 원이에게 오백 나한의 이야기를 해주는 새댁, 자존심이 센 것 같지만 필요할 땐 자존심 굽히며 돈을 빌리러 갈 줄 아는 새댁의 모습들을 보며 그 시절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책의 초반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렇듯 편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우리 시대가, 대한민국이 어떻게 민중들을 큰소리를 내지 못하게 압박했었는지 실상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지요.

아이들의 스파이 놀이와 간첩이라고 잡혀간 원의 아버지가 묘하게 오버랩 되기도 하였습니다.

일곱 살 동갑내기 원이와 은철의 시선으로 소설을 따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6살 많은 형과 언니를 가진 둘은 둘만의 놀이들을 시작하며 쿵짝이 잘 맞는 단짝이 됩니다.

좋은 간첩과 나쁜 간첩을 나누고 동네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며 이름을 알아내러 다니고 벽돌을 갈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새댁에게 효자 효녀 이야기를 들으며 은철이 품은 의문을 읽고 있자니 이 녀석 무척 똘똘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월남 고아라 친정도 친척도 없는 새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효자 효녀 애기를 알고 있었다. 새댁의 애기를 듣고 있노라면, 효자 효녀의 부모는 병에 걸리기도 잘했고 죽기도 잘했다. 효자 효녀는 부모가 병에 걸리면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고, 병으로 죽으면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것을 슬퍼해 부쩍 수척해지곤 했다. 어떤 아기 효자는 애통해하며 젖을 먹지 않기도 했고, 어떤 소년 효자는 까무러쳤다 깨어나기를 반복한 끝에 부모 뒤를 따라 죽기도 했다. 요행히 살아난 이들도 나라에서 큰 상을 내리려 하면 한결같이 두 손을 내저으며 부디 거두어달라고 울부짖는 공통점이 있었다. ----P135~136


너무 똘똘하지 않습니까? 효자 효녀 애기의 포인트는 저것입니다! 지극한 효성에 자신은 다 내버리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 이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는 은철입니다.


그러나 은철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 밝혔다는 점이었다. 한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 하고, 가을에 앵두가 먹고 싶다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 식탐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떤 효자는 병든 부모가 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 자기 허벅지 살을 손바닥만 하게 잘라 맛난 양념을 하여 너비아니로 구워 올렸다 하고, 어떤 효자는 병든 부모가 소나 돼지도 아니고 콕 집어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개를 잡으러 나섰다고 마침 큰 개를 물고 가는 호랑이를 만나자 호랑이에게 개 대신 내 몸뚱이를 뜯어먹고 개는 제발 나 달라고 몸부림을 쳤다고도 했다. 물론 살을 도려낸 효자의 허벅지는 금세 씻은 듯이 나았고, 호랑이 앞에서 몸부림침 효자는 심한 몸부림에 놀란 호랑이가 개를 떨구고 도망가는 바람에 개를 메고와 부모에게 삶아 먹여 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하였다고 했다. 그런 애기를 들을 때마다 은철은 덜컥 겁이 났다. ---P136~137



게다가 식탐 많은 부모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는 자신의 아버지인 만춘의 식탐이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옛 효자와 자신을 동일시 시켜 간과 창자의 분배를 걱정하는 모습이 너무 깜찍할 정도였답니다.

이렇듯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삼벌레 고개의 하루하루는 마냥 즐겁고 일종의 해프닝 같기만 합니다.

영을 좋아하는 금철이는 안 맞기만 하면 하루가 행복했을 테고 엄마가 돈을 꾸러 다니는 중에도 예쁜 단추를 얻고 맛난 국수를 먹어서 원이는 행복합니다. 물론 다 토해버리긴 했지만요.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방식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던 사내아이와 동생의 다리를 다치게 해 불안함에 떠는 금철이도 한명입니다.

저는 권여선 작가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디테일한 묘사와 아이들의 놀이, 그리고 동네의 풍경들이 글로써 읽어진다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서 책을 통해 추억여행이 가능했습니다.

셋방 살던 통기타 치며 쉰내 풍기던 총각도 있었고요, 은행 놀이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도 몰랐고요, 붉은 벽돌을 갈아 가루 내서 소꿉놀이하던 모습도 보이구요.

글만으로 일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필력에 놀랐고 그만큼 즐거운 독서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리커버 된 표지가 너무 세련돼서 14년 발매 책자인지도 저는 몰랐어요.

영과 원의 아버지의 내용이 조금 더 자세히 나왔으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웠겠지만 그 부분은 제가 따로 찾아보고 공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내 자존심 지키고 내 배곯는 것보다 아이들과 가족이 더 중요한 어머님들이 많겠지요.

순분과 새댁의 삶을 살펴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 속 그들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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