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하고 나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간절히 빌 것이 있어 들고 갔던 마음도 절을 하는 동안은 모두 사라진다.

힘들어서 그냥 나가버릴까, 남은 500배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까 하는  마음, 따뜻한 방에서 그냥 잠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순간도 넘기고 나면 순간일 뿐이다.

10분에 100배를 한다.

2500배에서 2700배 사이에는 10분이 천년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1000배 하고 30분 쉬고, 800배, 600배, 400배, 200배 순으로 30분씩 쉬어가면서 하는 데도 늘 2500배는 고비다.

하지만 마의 고비를 넘기고 3000배를 회향 할 때는 늘 그렇듯이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만 남는다.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함께 해 준 도반에게 감사의 마음이 더 많이 든다.

힘들 때마다 오늘 처음 온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서 나를 더 돌아보게 되고, 병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아우성이 엄살임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으로, 죽음으로, 이별로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스스로 원해서 온 절도 다 못해낸다면 중생의 고통을 덜어달라는 기도는 단지 공염불일 뿐이다.

이번 토요일 기도는 참 힘들었다.

힘들지 않은 삼천배가 어디 있을까만은 비오는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고 와서인지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 40여명이 가기로 했던 기도를 많이 취소하는 바람에 봉고 한대와 승용차 한대로만 가면 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대영암 보살은 내가 차를 몰고 오는 바람에 봉고 한대에 나가는 차비가 30여만원 절약되었다고 고맙다고 하시지만 내 차에 탄 도반이 없었다면 정말 차를 돌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여러번 있었다.

다행히 칠서 휴게소를 지나고부터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처음의 긴장이 많이 사라졌지만, 장대같은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운전하기는 처음이라, 이것도 기도의 한 과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을 하다가 힘들면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고행주의자인가?

아니다. 오히려 몸의 안락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한달에 한 번 오는 기도를 매 번 이렇게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의 괴로움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린다는 것. 시간은 천리마처럼 달려간다지만, 토요일 오후 그 천리마를 TV를 보며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위안이든, 몸의 건강이든 간에 온 몸으로 시간의 흐름을 체득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일요일.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고 천천히 규정 속도를 지키며 비에 씻긴 산천을 보며 돌아오는 길은 가볍고 행복했다. 무사히 나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 8년 된 가족, 누비라에게도 내리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차도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면서.

동생이 병을 털고 일어나 부처님 정법에 귀의해서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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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08배도 너무 힘들었는데... 3천배라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맨날 '해야지...'하는 마음만 있고 정작 실천은 못하네요.

혜덕화 2006-05-0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을 웃게 해주는 사람이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절은 운동처럼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니랍니다._()_

로드무비 2006-05-0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합장하는 모습만 봐도 울컥하더라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혜덕화님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혜덕화 2006-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괴로움의 캠프에서 오늘도 아이들때문에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교사인것이 참 축복받은 일이라는 것을, 요즘 더 절실히 느낍니다. 동생도 하루하루가 축복임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