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내내 비가 오고 추워서, 백련암엔 이제 목련이 피어있고 철쭉은 봉오리만 맺혀 있다. 철쭉제로  절에서는 맛있는 쑥떡을 해 두었는데도 꽃이 피지 않아서 마당이 조용했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면 사물과 인과의 부침과 질곡을 비추되 따라가지는 않는다고 청안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 하면서 그 말씀을 떠올렸다. 슬퍼하되 상하지 말고, 기쁜일에 즐거워하되 빠지지 말라던 서장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젊은 생목숨을 바닷물에 수장시키고 슬퍼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4월은 내내 참담하고 우울했다.  세상엔 지치도록 슬프고 아픈 사람이 많은데, 햇살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할 수 있나, 믿을 수 없는 오월이 오고 꽃들은 지천으로 피어 삶의 무상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갈 수록 할 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고 읽고 싶은 책도 없고 그냥 가만히 물 흐르듯 일상을 보냈다. 

 부엌 살림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하고, 듣고 싶은 강의를 듣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백팔배를 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사월이 겨우겨우 지나갔다. 

가끔씩 동생을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거실에 걸린 "無一物"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법정 스님의 글에서 다시 찾으면서 보낸 사월. 

그리고 오월이다. 

신문엔 구제역과 선거와 사대강 이야기로 아우성이지만 철쭉이 피고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지는 오월에 조카는 군입대를 했다. 

함께 입대한 모든 우리 아들들이 무사히 부모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내내 백련암 햇살과 바람이 함께 해주어 감사한 삼천배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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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0-05-1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혜덕화님. 잘 지내시나요?
전 며칠전 다니는 절에 가서 1년연등 달고왔어요. 제겐 여전히 3천배는 커녕, 108배도 힘겹습니다. 불심의 문제일까요? 체력의 문제일까요? ^^

혜덕화 2010-05-11 20: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야클님.
아기는 잘 자라고 있지요?
휴일에 아기 하루 보는 것이 삼천배 못지 않은 체력을 요한답니다.^^
아기와 아내에게 부처님 같은 사랑으로 대한다면, 굳이 절에 갈 필요도 없겠지요. 아기에게도 님의 가정에도 무량대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