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놓아라."
스님이 강보에 싸인 아기를 데려다 키운지 몇년이 흐른 후, 아이와 함께 겨울을 나기 위해 탁발을 나가게 된다.
스님은 씻어서 물을 빼려고 엎어 놓았던 옹기를 뒤집어놓아라고 이르며 절을 나선다.
밤 늦게 절에 돌아오니 아이는 잠들어 있다.
새벽녘 뒤집어진 옹기를 보고 스님은 깜짝 놀란다.
위아래를 바꾸어 뒤집어 놓아라고 했는데 아이는 양말 뒤집듯 옹기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것을 보고 스님은 예전에 자신의 스승께서 일러주신 말을 생각해낸다.
"마음에 털끝만한 의심도 없으면 무슨 일이든 다 이루어지리라"고 하시던 말씀을.
아이의 때묻지 않은 마음이 일으켜놓은 일을 보며, 스님은 오늘도 또 탁발을 나가리라 생각한다.
아이에겐 놀란 기색없이 침을 꿀꺽 삼키며 이른다.
"아침 햇살 오르거든, 저 옹기를 다시 뒤집어놓아라"고
몇 해 전에 이 글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내 마음엔 의심이 가득했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 비약아닌가?, 그래 동화니까......'
하지만 이 번에 다시 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를 놓으면 우주 법계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체험하게 된 것 같아서 예전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은 사라졌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생각하고 계산하고 의도하고 계획해봐야 내 생각의 범위를 못벗어나고 살게된다.
하지만 마음 속에 의심을 탁 놓아버리고 나자,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던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부처님의 가피를 체험하게 되었다. "상"을 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맛을 보게 된 것 같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라고
내가 비록 수양산은 못되더라도 나무 한 그루만의 그늘이라도 드리울 수 있다면
내가 받은 넘치는 복을 회향 잘 하며 살고 싶다.
ps;어제 절하면서 파란 여우님의 책이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마음 속에서 감사의 말이 저절로 나왔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여우님의 책이 많이 많이 읽혀지기를, 여우님의 책 읽은 공덕이 많은 중생에게 회향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