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정 부모님을 뵈러갔다.
아버지께서 영 말씀이 없으셨다.
하도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동생 있는 곳에 갈까요?" 했더니 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어젠 늦어서 안되겠고,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충 집을 치우고 부모님을 모시고 정관 추모 공원에 다녀왔다.
사먹는 음식 맛없다고 엄마가 밥과 열무 김치, 무 장아찌, 깻잎을 양념해서 찐 것, 무 나물, 생선 찐 것 등을 챙겨오셨다.
동생을 보고, 동생 이름으로 화분에 글을 써서 예쁘게 놓아 두고 밖에서 앉아 밥을 나눠 먹었다.
담백한 밥과 나물이 참 맛있었다.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추모 공원에 들어가면 작고 예쁜 화분들이 군데 군데 아주 많이 놓여있다.
자세히 보면 화분마다 사연이 있고, 고인의 가족들이 남기고 간 글귀들이 적혀 있다.
구구 절절 사연도 많지만, 어느 한 화분엔 "엄마, 보고 싶다"라는 말만 적혀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콱 막힌 듯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어떤 말이 저 말을 대신할 수 있을까?
세시간의 소풍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 엄마는 내내 아쉬운 지 아버지께, 다음엔 우리 둘만 버스타고 와서 하루 종일 앉았다 가자고 하신다.
보고 오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을 내려 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혼자 울었다. 가끔씩 억지로 막아 놓은 둑이 터지듯 슬픔이 터져버려서 도저히 통제가 안되는 때가 있다. 혼자 운전해 오는 동안, 중환자실에서 면회가 끝났다는 간호사의 말에 상심하던 동생의 눈빛이 떠올라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가족끼리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가로등이 켜지는 어스름의 하늘을 보다가도, 이 세상의 저 많은 불 빛 속에 동생의 자리는 없는 거구나, 싶어 혼자 눈물을 삼킨다.
우리 서로 만나 얼굴을 볼 때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지만, 혼자 흘리는 눈물을 누군들 모를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데, 부모님이 흘리는 눈물과, 어린 딸 둘을 데리고 살아가야 할 올케가 혼자 흘리는 눈물에 비하면 내 슬픔이 그들의 슬픔을 안다고 할 수나 있을까.
대오야, 너는 잘 있지?
이건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일 뿐, 너는 정말 잘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