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목에 둘렀던 워낭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 

죽기 전에 일평생 코에 매고 있던 고삐를 끊어주던 할아버지의 손 

"우리 늙은 노인네들 겨울 나라고 나뭇짐을 저렇게 가득 해놓고 간다"고 죽어가는 소를 향해 안타까워 하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팔아" "안팔아" "웃어" 등등 짧게 끊어지며 소리치던 노인들의 대화.  

소를 먹이기 위해 불편한 다리로 기어 다니며 꼴을 베던 할아버지의 모습. 

"아이구 내 팔자야"를 입에 달고 사시던 할머니. 

할머니의 온갖 잔소리엔 들은 척도 않다가, 소가 엄매 하고 울면 금방 소에게로 달려가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지은 농사를 추수해서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서 보내던 모습.

어느 것 하나도 마음에 담기지 않은 것이 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사치가 검소함를 비웃고 게으름이 부지런함을 냉소하고, 돈이 지상 최대의 가치인 양  미친듯 달려가는 열에 들떤 우리 이마에 서늘한 수건이 하나 놓이는 기분이었다. 

달고 맵고 짜고 신 인스턴트 음식을 가득  물고 있는 입 속에 청량한 오이 한 입, 칡뿌리를 씹으면 향기가 입 안에 가득하듯  그야말로 무공해 영화를 한 편 봤다. 

사이코 패스에 대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어 인간 생명의 가치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 하나의 가치만도 못한 것 같은 세상에, 소와 사십년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서로 헌신하며 사는 모습이 아름답고 안타까웠다. 

저렇게 힘들여서 사는 것이,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내는 것일까?  

아무런 나레이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일 하고 꼴 먹이고 일 하는 장면의 영화가 이렇게 큰 감동을 주기까지는 영화 제작자의 정성도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별 기대 없이 보러간 영화였는데, 그 동안 봐온 수많은 영화가 그저 배우들의 <꾸밈>을 최대한 꾸밈같지 않게 보여준 것이라면 이 영화야말로 <참>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삶은 각기 다르고  그 나름대로의 향기와 눈물과 한숨과 기쁨이 있겠지만 시골에서 살아보지 않아 잘 알지 못했던 노부부의 삶을 통해 우리가 벗어난 지 불과 몇십년도 되지 않은 우리 부모님의 힘든 삶의 모습도 겹쳐졌다. 

겨우 한 달에 몇십만원씩 용돈 주는 것으로 자식 도리를 다하며 산다고 할 수 있는지, 지금도 늙은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사시는 부모님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지금은 여든이 넘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장수하시며 살기를,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시골집을 찾아가서 노부부의 고요한 삶을 흔들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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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2-0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는 노부부에게 가족이죠. 멀리있는 자식들에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꿈벅꿈벅 소 눈동자를 보면서 하셨을겁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버린 것, 잊고 살면서 허둥지둥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삶 속에는 눅눅한 찌꺼기만 폐기처분용으로 기다리지요. 오늘 날이 하도 좋아 복순이를 데불고 고개너머 청보리밭에 다녀왔어요. 봄이 거기 있더군요. 혜덕화님이 보시면 무지 좋아하셨을겁니다.

혜덕화 2009-02-01 21:06   좋아요 0 | URL
여우님의 청보리밭 사진이 좋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봄이 거기 있군요.

사진을 보다가 어제 본 영화를 생각합니다.
<일하는 소>는 사라지고 <먹는 소>를 더 많이 키우는 농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미친소 물러가라" 한미 FTA 반대 시위대 앞을 마흔 살의 늙은 소가 일흔 아홉의 할아버지를 실고 읍내로 나오는 장면에서 우리는 웃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할머니께서 일소 만드는 장면이 EBS에선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소는 타고나면서부터 일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 영화에서도 젊은 소가 일을 못배워서 쫓겨나 앉은 장면에서도 우리는 웃었습니다.
실컷 웃었는데도 영화는 슬펐습니다.
할아버지가 너무 힘들게 일을 하셔서,
소의 눈물이 마음 아파서,
소가 내는 소리에 아픈 할아버지의 작은 눈이 떠지던 장면에서 사랑하는 사람인들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다 늙어 뼈가 드러나고 살이 썩어가는 소와 역시 뼈가 앙상한 할아버지의 동행이 삶을 정직하게 엄살부리지 않고 살아낸 사람의 너무도 정직한 결론 같아서....
이 영화를 보고 동물 학대니 뭐니 떠들어대는 것은 오히려 할아버지와 소의 동행을 소파에 드러누워 편안하게 시청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동물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여우님이 보셨다면 도시에서 자란 저의 감상적인 내용의 글이 아닌, 살아있는 글이 나왔겠지요?
여우님의 사진과 어제 본 영화가 겹쳐져 댓글이 길어졌네요.
매화가 벌써 피었다니, 여우님의 몸에도 마음에도 비어버린 통장(?)에도 봄꽃처럼 무량 대복이 가득차길 바랍니다._()_

Mephistopheles 2009-02-0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봉 15일만에 5만 돌파했다는군요.^^ 많이 봐서 이런 좋은 영상물 만드는 분들이 다른 작품 만드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혜덕화 2009-02-02 10:02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동안 봐왔던 영화가 다 가짜로 느껴질만큼 제겐 신선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막연히 나이 들면 농사짓고 살거라고 우리 부부는 늘 이야기하지만 저렇게 정직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기도 하구요. 그저 텃밭 가꾸는 정도는 하고 살게 되겠지요. 영화를 만드신 분의 인터뷰를 어딘가에서 봤는데, 이런 영화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많은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메피님의 차 사고난 글 읽고 댓글도 못 달고 '그만하기 다행이다' 생각했었습니다. 저도 작년 5월에 새차 뽑아서 사고가 났는데, 흙벽을 들이 받아서 그나마 앞범퍼만 새로 교체했답니다. 사고날 당시에 저는 후진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사고가 나려고 그랬는지 브레이크 대신 엑셀레이트를 밟아 앞의 흙벽에 차의 앞부분이 거의 들어가 버렸거든요. 후진했으면 내가 이자리에 살아있을까 싶을 만큼 아찔합니다. 높이 2미터 정도의 축대 아래로 과속 패달을 잘 못 밟았으면 어땠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답니다.
사고는 순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찔한 순간에도 나를 거두어주는 따뜻한 손이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메피님의 사고를 읽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답니다.^^
메피님에게도 수호천사가 있나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

yong lee 2009-03-1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다운 세상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질투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혜덕화 2009-03-17 21:06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은 해인사 백련암에 다녀왔습니다.
맑고 차가운 주말이었지만, 산사의 봄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님의 마음에 평온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