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가 기나긴 하늘을 날아가니

차가운 물에 그림자가 잠기네.

기러기는 자취를 남길 뜻이 없고,

물은 그림자를 남겨 둘 마음이 없네

     남종선의 선사 천의의회-

 

꽃은 꽃이 아니고

안개는 안개가 아니다.

깊은 밤에 왔다가

날이 밝으면 떠난다.

봄날의 꿈처럼 잠깐 왔다가

아침의 구름처럼 흔적없이 떠난다.

       백거이-

 

종일토록 봄을 찾아 나섰지만

봄은 보이지 않고

짚신이 다 닳도록

고개 마루의 구름 사이를 다녔네.

집으로 돌아와서

스스로 매화를 잡고 냄새를 맡으니

봄이 가지 끝에 있은 지 오래되었네.

 

 

원풍 6년 10월 12일 밤, 옷을 벗고 잠을 자려는데 달빛이 집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흔쾌히 일어나 거닐다가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내 승천사로 가서 장회민을 찾았다.

장회민도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서 함께 정원을 거닐었다.

정원 아래는 마치 물이 차 있는 듯 환하게 밝았고

물 속의 마름풀은 서로 얽힌 듯 했는데, 아마도 대나무와 측백나무 그림자였을 것이다.

어느 밤인들 달이 없겠는가?

어느 곳엔들 대나무와 측백 나무가 없겠는가?

하지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동파 <승천사의 밤놀이를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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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달은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평화롭고 한가하군요...
기러기가 기나긴 하늘을 날아가니

차가운 물에 그림자가 잠기네.

모를 뿐입니다.


혜덕화 2007-02-0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밤인들 달이 없으랴만은 잠 못 들고 함께 만날 친구가 있는 소동파는 행복한 사람이었겠지요. 평생을 유배당하고 살았지만, 시로 마음 실을 수 있고, 그 시를 알아주는 벗들이 있었으니.....

서재의꿈 2007-02-0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너무나 좋아 지인들에게 선물을 많이 했었어요.
이 책을 옮긴이가 아주 건강이 안 좋으셨는데 그런 와중에서 이 책을 펴내신 것 같다고 , 옮긴이의 절친한 친구분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많은 지혜가 담긴 좋은 글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그 분에게, 저는 이 책을 들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온답니다.
개인적으로 소동파의 시를 좋아하는데요. 禪詩도 좋고,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차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차인으로서 소동파가 지은 茶詩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혜덕화님이 올리신 글을 대하니 정말이지 욕심 내지않고 담백하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혜덕화 2007-02-0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꿈님, 난이 꽃이 피었습니다. 7송이 중에 5송이가 피었는데, 거실 중간쯤 가면 난향이 얼마나 좋은지, 아주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좋은 시도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겠지요.